한국파트너십연구소, SE 트라우마 치유 워크숍 열어

▲ 11일 한국파트너십연구소가 주최한 SE 트라우마 치유 워크숍 마지막 날, 데니스 신부가 세션을 진행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트라우마는 마음과 영혼에만 그 흔적을 남길까. SE(Sometic Experiencing, 몸으로 체험하기)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브라질에서 SE로 트라우마 치유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유프라시아 니아키(Euphrasia Nyaki) 수녀(메리놀 수녀회)와 데니스 무어맨(Dennis Mooreman) 신부(메리놀 외방 선교회)가 한국파트너십연구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7월 1일, 9일, 16일 세 차례에 걸쳐 매번 4일 일정의 워크숍을 이끌었다. 1차와 3차 워크숍은 수도자 · 성직자들과, 2차는 노동운동 활동가와 해고 노동자, 고문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열렸다.

SE는 미국 정신의학전문의 피터 레빈(Peter Levine) 박사가 개발한 심리치유 방법으로 ‘몸은 치유를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을 기본 전제로 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생명이 위협을 받으면 본능적으로 싸우거나 도망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러나 추락사고, 자연재해, 폭력, 고문, 사고 등 감당하기 어려운 트라우마 상황에서 이런 두 방법이 불가능해지면 ‘얼어붙기’ 반응을 보인다.

이때의 에너지는 생존을 위한 것이어서 평소보다 매우 높은 수준인데 인간의 경우에는 이것이 방출되지 않고 몸 속 신경계 안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SE 전문가들은 이를 “자동차의 브레이크과 악셀을 동시에 밟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피터 레빈 박사는 야생동물은 자연스럽게 안전한 공간을 찾아 이 과도한 생존에너지를 해소하거나 방출하는 시간을 갖는데 반해, 인간은 합리적인 뇌의 통제 때문에 자연스러운 몸의 해소 방법을 억제하고 따라서 이 해소되지 않은 에너지가 몸, 정확하게는 신경계 안에 고착된다고 보았다.

SE의 핵심은 내담자들이 몸의 감각을 인식하면서 신경계 안에 갇힌 과도한 에너지를 방출하도록 돕는 것이다. 안전하다고 느끼면 몸은 신경계에 갇혔던 과도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편안하게 이완되면서 스스로를 조절한다. SE는 이런 방법으로 몸이 트라우마에 대한 면역력을 회복하고, 살아있는 감각과 회복력을 되찾도록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트라우마 치료에 널리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1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관에서 SE 트라우마 치유 워크숍이 열리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SE의 한 세션은 그라운딩(Grounding), 자원 찾기(Resourcing), 수위조절(Titration), 진자운동(Pendulation), 방출(Discharge), 제자리 찾기(Organization), 통합(Integration)의 순서로 진행된다.

SE 참가자들은 먼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찾아 발이 땅에 잘 닿을 수 있는 자세를 잡는다. 여기서 ‘안전한 공간’이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치료사가 안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발이 땅에 잘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몸이 땅과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데니스 신부는 “‘나는 안전하다’와 ‘나는 지지 받는다’, 이 두 가지 느낌이 없다면 트라우마 치유는 불가능하다”며 “그라운딩은 이런 안정감을 위한 출발점”이라 설명한다.

다음 작업은 내담자들이 자기만의 자원을 찾는 것(Resourcing)이다. ‘자원’이란 자신이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던 사람, 장소, 행동 등을 일컫는데, 이는 트라우마에 갇혀 맴도는 에너지를 밀어내기 위한 매우 중요한 도구다. 데니스 신부는 “트라우마는 우리를 잡아끄는 소용돌이 같은 것”이라 설명한다.

“어떤 이가 학대받는 경험을 가졌다면, 그는 계속 그 경험으로 돌아간다. 커다란 소용돌이인 것이다. 이는 한 인간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도록 잡아끈다. 좋은 자원을 상상하면 그 에너지로 트라우마 소용돌이를 한쪽으로 몰아낼 수 있다.”

기존의 치유방식이 “당신의 고통을 말해보라”며 트라우마를 꺼내어 다루었다면, SE는 좋은 에너지로 트라우마 소용돌이를 밀어내는 방법을 택한다. 따라서 SE는 모든 과정을 상대방의 경계를 존중하며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끄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른바 수위조절(Titration)이다. 세션 진행 중 참가자가 몸에서 힘들거나 불편함을 느낄 때 조금 더 머물게 하는 것이 수위를 높이는 일이라면, 자원을 더 가져오는 것은 수위를 낮추는 일이다.

내담자가 자원을 떠올리며 편안해지면 치료사는 “아까 그 트라우마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달라”며 트라우마 소용돌이에 접근한다. 접근했다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것이 진자운동(Pendulation)이다. 이 과정을 반복할 때, 에너지의 방출(Discharge)이 일어난다. 방출은 몸의 떨림일 수도, 울음일 수도 있고 기침이나 트림의 형태일 수도 있다. 치료자는 이 모든 방출을 환영해주고 몸의 반응과 내담자가 분리되지 않도록, 계속 그 반응에 집중한다.

이렇게 갇혔던 에너지가 방출되면 몸이 움직이면서 원래의 자세, 본연의 자세를 찾는다. 이것을 제자리 찾기(Organization)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통합(Integration)이란, 에너지가 방출된 후의 자세에 익숙해져 좀 더 머물러 있도록 돕는 것이다.

▲ 데니스 신부(왼쪽)와 유프라시아 수녀 ⓒ문양효숙 기자

SE는 트라우마를 꺼내는 과정에서 다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을 경계한다. 데니스 신부는 “에너지를 한꺼번에 방출하면 그것이 다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에너지를 조금씩 자연스럽게 방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것이 기존 치료법과 SE가 가장 다른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SE 과정에서 치료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존(Presence), 관찰(Observation), 공명(Resonance), 교육(Education) 네 가지다. 유프라시아 수녀는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해 그 자리에 온전히 머물러 주는 것이 현존”이라 말한다.

“만약 치료사가 ‘이 사람을 도와야 하는데 어떡하지?’ 하고 걱정한다면 온전히 머무는 게 아니다. 편안해야 한다. 내 몸이 완전히 편안해지면 그제야 내담자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관찰(Observation)할 수 있다. 손이 떨리는지 발이 떨리는지, 숨이 깊어지는지 얕아지는지 이런 미세한 움직임까지 알아차릴 수 있다.”

공명이란 내담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상담가가 느끼는 것이다. 유프라시아 수녀는 “이것은 공감, 자비, 연민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공명은 에너지의 진동, 혹은 떨림이다. 내담자의 분노나 슬픔의 에너지가 치료사 몸 안의 에너지와 만나는 것이다. ‘저 사람 왠지 싫다’라고 느낄 때가 있다. 실은 내 안의 에너지가 그 사람과 공명한 것인데, 머리는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저 사람은 싫다’고 판단 내린다. 그러니 그 사람 탓이 아니다. 내 안에 그 에너지가 없었다면 공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몸의 미세한 반응들은 내담자뿐 아니라 치료사에게도 일어난다. 치료사가 고요히 현존하며 이런 반응들을 느끼고 가게 할 수(let go) 있으면, 내담자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공명에 의해, SE 모든 세션에서 내담자와 치료사는 서로 치유할 수 있다.

▲ SE의 과정을 설명하는 유프라시아 수녀 ⓒ문양효숙 기자

유프라시아 수녀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면 부정적 에너지 공명이 점점 줄어들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고, 평화의 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평화로운 기운을 가진 이들과 공명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끝으로 교육이란, 내담자가 깨닫지 못했던 어떤 것을 상기시키는 작업이다. 데니스 신부는 “교육보다는 ‘알아차림’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고 설명했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신경계가 그 에너지를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담자들은 그것이 지금 일어난 일인 듯 말한다. 따라서 치료사는 내담자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그것은 지나간 일이며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유프라시아 수녀는 “교육은 각자 삶의 경험에서 배운 걸 사용할 수도 있지만, 치료사가 온 영혼을 활짝 열고 있으면 성령님께서, 온 우주가 도와주실 것”이라면서 SE가 “부드럽고 민감하며 과학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치유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 표현예술치료학과 김나영 교수는 “SE가 몸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심리치료는 치료가 됐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데 SE는 몸, 특히 자율신경과 뇌에 집중하기 때문에 변화의 척도를 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간은 진화하면서 이성, 수치심, 평가 등으로 자유로운 몸의 반응을 억압했다”며 ”SE는 그런 억압을 해소시킴으로 두려움이나 공포로 생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억압의 해소가 이성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라면서 “내 손이 흔들리네, 지금 몸의 감각이 어떠네, 하는 것은 대뇌가 있어야 인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SE는 몸의 움직임과 인지능력을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체중심치료에서 말하는 신체는 ‘궁극적인 전체성’이라 설명했다.

“신체는 정신과 분리된 몸이 아니라 통합성을 지닌 인간 존재를 말한다. 심리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치료되는 것이다. 만약 ‘나는 치료됐다’고 선언할 때, 행동 패턴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전체성을 가진 치료라 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이어서 김 교수는 “우리 사회는 감정이나 느낌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럽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학습시켜왔다”며 “그러니 쉽지는 않겠지만 자기 감각이나 감정을 잘 드러내도록 교육될 필요가 있다.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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