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얼마 전에 절친한 신부님 한 분이 이 문제에 대해 상의를 해 오셨어요. 그분이 맞이한 사안은 이런 경우 유아세례를 줄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세례를 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사람들이 어떤 답을 할지는 설문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일반적인 답을 먼저 헤아려 본다면, “누구나 세례를 받을 수 있으니 주는 것이 옳다”가 아닐까 어림합니다. 그런데 좀 더 상황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청하는 이가 영아나 유아의 나이를 벗어난 8세 이상의 사람인 경우와, 그 이전의 나이인 영유아에게 부모가 세례를 청하는 경우를 나눠 볼 수 있습니다.

8세 이상의 누군가가 세례를 받겠다고 찾아오면 본당 사제는 예비자 교리반으로 인도할 것이며 일정 기간의 교육이 끝나면 세례를 줄 것입니다. (*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은 저 같은 사제는 이래서 본당 신부님을 잘 알아놔야 합니다. 세례는 제가 줄 수 있어도 세례대장과 교적 발급과 같은 행정업무는 모두 지역 성당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미취학 아동 연령대의 영유아세례는 부모의 신앙을 보고 그것에 기대어 세례를 줄지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아기가 스스로 성령에 감도되어 본당 신부님을 찾아온 경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의 요청이 있을 때, 교리교육 일단 건너뛰고 세례가 이뤄지며, 교리는 나중에 첫영성체 교리를 통해 일정기간을 교육받게 되는 것이지요.

위의 두 경우는 모두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이제, 문제는 제 친구 신부의 경우처럼, 부모가 어느 쪽도 신앙인이 아닌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기에게는 세례를 달라고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경우입니다. 유아세례는 부모의 믿음을 보고 준다는 전제를 떠올리면, 답은 줄 수 없다가 되겠죠.

하지만 좀 더 현명한 답은 ‘본당 신부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기 부모와 면담을 통해 부모를 신앙으로 유도하여, 아기의 세례는 일단 연기한 채, 부모가 교리를 듣도록 하고, 교육을 마치는 시점에서 부모와 아기가 함께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혹은, 아기의 생명이 위독하여 일단 아기가 먼저 세례를 받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아기에게 먼저 세례를 주고, 부모는 예비자 교육을 통해 신앙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본당 신부가 그 부모를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고, 이들에게 교리교육을 해 줄 여건이 된다면 더 좋겠지요.

이런 상황 판단이 모두 본당 담당 사제가 하기 나름이기에, 부모가 어느 쪽도 신자가 아닌 상황에서 아기의 세례는 본당 사제의 재량에 달렸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 하나 더 내 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경우가 없겠지만, 세상의 여러 문화가 섞여 있는 프랑스 빠리 북쪽, 쌩-드니 교구에서 일어난 사례입니다. 부모가 모두 이슬람 신자였는데, 이 부부가 아기를 데리고 가톨릭 성당에 찾아와 아기에게 세례를 달라고 청했습니다. 온화한 본당 사제는 부모가 모두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유아세례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정중히 설명하면서, 무슨 이유로 세례를 달라고 청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부부는 자신들도 하느님(알라)을 믿는 사람들이며, 세례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즉 하느님의 축복으로 보여서 세례를 청한다고 했답니다. (아! 놀라워라.)

면담이 끝난 후 그 본당 사제가 그들의 아기에게 세례를 줬을까요?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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