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지난 7월 세계청년대회 참석차 브라질에 갔더니 제가 방문했던 지역은 모두, 그곳의 수호성인(혹은 주보성인)을 성모님으로 모셔놓고 신앙의 모범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성모님과 관련한 기적 이야기가 다양한 버전으로 전해져 오고, 전통적으로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고 하더군요. 최초로 남미 출신으로 뽑힌 우리의 교황님 프란치스코도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기를 전세계 신자들에게 권고하고 계십니다.

따지고 보면, 광복절과 성모 승천 대축일이 만나고 있기에 우리나라도 성모님과 운명적으로 엮여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호성인이 성모님이시란 건 대부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씀 드리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와 남편 분 되시는 요셉 성인이 우리나라의 수호성인이십니다.

그러니까 광복절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한국 교회의 설립과 관계있습니다.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는 조선에 입국한 후, 1838년 12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축일 12월 8일)를 조선교구 주보로 정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교구는 북경교구 주보인 ‘성 요셉’(축일 3월 19일)을 이미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던 상태였고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앵베르 주교의 요청을 받아들여 1841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성 요셉과 함께 조선교회의 공동 주보로 모시도록 허가함으로써 거룩한 부부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 되신 겁니다.

요셉 성인께 대한 공경도 나름 열심이지만, 상대적으로 희미해 보이는 것은 워낙에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 가톨릭교회 안에서 강하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 오르비에토 대성당에서. (사진 / 김용길)

그래서 성모님과 관련된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축일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세 봤습니다. 한 해에 열 번이 있더군요.

하나, 천주의 모친이신 성 마리아 대축일 (1월 1일, 새해를 성모님과 함께 여는 셈입니다.)
둘,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 (성모영보 축일, 3월 25일, 이날 잉태하셔서 아홉 달 뒤인 12월 25일에 예수님을 낳으십니다.)
셋,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 (5월 31일)
넷, 성모 승천 대축일 (8월 15일)
다섯,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8월 22일,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에 나오듯이 성모님께 천상 모후의 관이 씌워짐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에서 8일째 되는 날, 즉 8일 축제가 이날 마무리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섯,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9월 8일)
일곱, 고통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9월 15일)
여덟, 묵주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0월 7일)
아홉,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11월 21일)
열,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12월 8일, 위의 성모님 탄신 축일에서 아홉 달 전입니다. 성모님도 아홉 달 꽉 채우고 태어나신 걸로 교회가 셈한 겁니다.)

여기에 토요일은 오래 전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날입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필요에 따라 성모님을 위한 신심미사가 봉헌됩니다. 그러니 위에 열거한 성모님 축일, 기념일 외에도 성모님을 기념하는 날은 수시로 마련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빠리에서 한 해 동안 같은 공동체에 머물렀던 랄로라는 애칭의 칠레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랄로 신부님은 토요일 미사 후에 꼭 우리 공동체 경당 안의 성모님 앞에 가서 성모님 관련 노래를 부르고 미사를 마치곤 했습니다.

전례사전에 따르면, 토요일이 성모님과 관련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모두 달아난 상태였지만, 성모님은 끝까지 십자가를 지키신 분이셨고, 그래서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의 지혜가 쉬셨다고 합니다. ‘쉬셨다’라는 말에서 당시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유래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신자들 중에 어떤 분은 성모님 축일이 너무 많고, 마리아 공경이 좀 과하다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뭘 잘 모르시는 개신교 신자들은 이런 것을 내세워 가톨릭이 ‘마리아교’라는 오해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정리하자면,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행위는 이분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 열거한 열 번의 날짜 외에 일상적으로 성모신심미사가 늘 봉헌될 수 있다는 사실은 신자들이 일상에서 그만큼 더 깨어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저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소년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었고, 대학에 와서는 소년 레지오 단장으로 활동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만큼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친 때가 없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부끄러운 까닭은 요즘에는 그때의 열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주요 기도 지향은 ‘세계평화’였고, 고3 때는 ‘대입’이었죠. 대학을 꼭 가야했던 까닭은 교사였던 부친의 체면 때문이 아니라, 공부 잘한다고 소문났던 이웃 여고 학생을 짝사랑하는데, 대학에 가야 연애를 할 수 있다는 단순무식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성모님과 순간순간 함께 기도했습니다. 2학년까지 놀았기에, 과연 재수를 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나 학력고사의 성적이 모의고사를 능가하는 성적으로 나오더군요. 그런데 당시 고만고만한 성적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경쟁률 때문에 치열한 눈치 보기를 통해, 어느 학교 어느 과에 넣느냐가 당락을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대학에 붙은 것은 성모님의 기도 덕이라고 아직까지 믿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원서를 넣고 갑자기 겨울 감기인지 몸살인지 쓰러져 누워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살그머니 제 방문을 여시고는 “얘, 너 학교 붙었어” 그래서 “아직 발표도 안 났는데 어찌 아셔?” 여쭈었더니…… 어머니 왈 “방송 보니까 너네 과 미달이야.” 아, 성모님!

참고로, 제가 지망한 학과는 눈치 보기의 산물이 아님을 밝힙니다. 아무튼 저는 다시 고등학교 시절의 간절함을 가지고 다시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고자 합니다. 묵주기도는 아주 소중한 기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성모님과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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