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여의도에 있는 성모병원은 저희 수도회 형제들이 병(病)과 사(死)에 관한 일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많은 도움을 주는 곳입니다. 예전에 입회 동기 배○○ 형제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진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는데, 접수대에서는 우리의 신분을 잘 아는지 진료표 뒤에 ‘배○○ 수사님’이라고 친절히 호칭까지 붙여 나오더랍니다.

배 수사는 의사 선생님의 진찰이 끝난 뒤 처방전을 받아들고, 약을 조제하기 위해 동네 약국을 찾았지요. 약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배○○ 수사관님~ 배○○ 수사관님~!” “앗! 저 말입니까?” 하고 화들짝 놀라 일어섰는데, 약국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기를 쳐다봐서 몸이 더 아파왔다고 합니다.

‘수녀’라는 호칭은 신자건 비신자건 대부분 사람이 아는 낱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수녀님들이 입는 수도복이 시각적으로 그만큼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겼다고 여겨집니다. 반면 제 동기 형제의 경험처럼, ‘수사’는 ‘수사관’과 헷갈릴 정도로 여전히 낯선 호칭으로 보입니다. 남자 수도자들이 외부활동을 할 때 수도복을 입고 움직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인지도에서 떨어진다고 진단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 빼고) 눈치 채셨겠지만, ‘수사’는 ‘남자 수도자’를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여자 수도자가 ‘수녀’니까 남자 수도자는 ‘수남’이 되어야 하는데 부를 때 좀 어색했나 봅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키 차이 때문에 시각적 특징이 두드러졌던 듀엣 ‘서수남과 하청일’이라는 가수 분들이 계셨습니다. 키가 큰 서수남 씨와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하청일 씨, 둘이서 함께 짝을 이뤘던 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남’은 서수남 씨 이전부터 이미 적잖은 사람들이 고유명사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남자 수도자들은 수남 대신에 다른 낱말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여자 수도자는 수녀, 남자 수도자는 수남 대신에 수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자’는 남녀 수도자 모두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관상생활을 하는 수도회의 남자 수도자를 특별히 수도승(monk)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낱말에 관한 설명은 이쯤 해두고, 수도자는 교회법을 통해 볼 때, 어떤 수도회에 회원으로 소속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수도자들은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마친 뒤, 기본적으로 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수도회에 따라 이 세 가지 서약 외에 덧붙여지는 서원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같이 수도회 소속이면서 사제품을 받아 사제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불려야 할까요? 사실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저를 수사로 알고 부르셨던 분들이 종종 깜짝 놀라며 알아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을 수사님이라고 불렀다고 말입니다.

앞으로는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제 기본 신분은, 예수회라는 수도회 소속 회원이기에 수사가 맞습니다. 거기에 기능상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기에 신부라고 불리는 것도 맞고요. 그러니 저와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일종의 이중신분을 띤다고 할 수 있는데, 따라서 정식 호칭은 ‘수사 신부(수도 사제)’가 됩니다.

제가 아는 한, 몇몇 남자 수도회는 서로를 다 같이 ‘형제’라고 부르며, 외부에 나가서도 공식적으로는 ‘수사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제품을 준비하던 시기에 여러 모임을 통해 알게 됐던 학생들 중에는 여전히 저를 그냥 ‘수사님’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수도회 소속 사제가 이중신분(수도자와 사제)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교구 소속 사제는 그냥 ‘신부’라고 불립니다. 교구 사제들은 지리적인 교회 행정 단위인 교구에 소속되어 담당 주교의 명을 따르며(순명), 정결하게 살아가겠다(정결/독신)는 서약을 합니다. 청빈 서약을 하지 않는 점에서 수도 서원과는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수도회 소속 사제들과는 달리 수도회에 소속된 수도자이면서도 서품을 받지 않은 형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전문적으로 이 분들을 ‘평수사’라고 부릅니다. 즉, 사제품 준비 중에 있는 ‘연학수사(혹은 수학수사)’가 아니라 평생을 ‘수사’라는 단일 신분으로 살아가고자 결정한 형제들입니다.

예전에는 수도회 안에서 주로 집안 살림 외에는 중요직에서 제외되거나 필요한 교육을 못 받는 등 신분상의 구분이 빚어낸 ‘차별적’ 대우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수사’가 되기 위해서는 더 커다란 성덕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통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미사를 제외한) 좀 더 다양한 일에 투신할 수 있고, 수도원 공동체 내에서 신분을 구분한 대우를 받는 일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수사님들이 외부에서 활동할 때 종종 체험하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우연히 벌어진 영적인 대화 중에 신자 분들이 자꾸 “신부님”이라고 불러서 그냥 수사라고 하면, “그러시군요. 그럼 신부님은 어디 계시나요?” 하는 식의 상황이랍니다. 혹은 같은 말을 해도 신자 분들이 사제들의 말에 더 무게를 둘 때, 동료 수사님들은 기운이 빠진다고 합니다.

공부 덜 하고 일찌감치 사목 현장으로 나가 신나게 사람들과 어울려 볼 생각으로 잠시 평수사를 꿈꿨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배들 중에 좋은 모범을 보여주신 분들이 있어서 더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회에 입회할 당시 제가 무엇을 바랐던가를 돌이켜 본 후, 아무래도 사제 성소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영화 <미션>(The Mission)에서 피리를 불며 원주민과 만나려 했던 가브리엘 신부, 동아시아로 복음을 전하러 떠났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신자들의 고백성사를 기가 막히게 들어줬던 쟝-마리 비안네 신부…. 이들처럼 멀리 해외로 선교를 떠나고 싶기도 했고, 마음 아픈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싶어 사제의 길을 생각했던 그때의 마음을 보니, 아무래도 성체성사와 고백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사제가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종 보통 오토 면허보다는 1종 보통 수동 면허가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차를 몰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세례 때, 왕직 · 예언직 · 사제직을 부여받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 모두에게 부여되는 보편적인 직분입니다. 세상을 위해 참으로 봉사했던 왕이신 ‘그리스도 왕’의 모습을 닮고,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과 공정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품위를 지니며, 지상과 하늘을 연결해 주는 사제의 직분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세례 받은 우리 모두는 왕이요, 예언자이며, 사제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사제품을 받은 성직자와 수도자 · 평신도를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특수 사제직’을 ‘보편 사제직’과 구분하여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전자는 지역교회를 담당하는 주교의 협조자가 필요하게 되면서 생긴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초창기에는 주교가 혼자 지역교회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점 돌봐야 할 신자들과 지역 범위가 넓어지면서 혼자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주교의 협조자로 초대된 사람들은 주교가 위임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직분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 직분(특수 사제직)을 부여받은 이들의 모임을 ‘사제단’이라고 합니다.

반면 후자는 세례를 통해 존재론적으로 부여된 하느님 백성의 직분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특수 사제직을 부여받지 않은 모든 신자들이 포함됩니다. 이 중에서 수도자는 그리스도의 삶을 더욱 근본적으로 살아보고자 투신한 사람들로서 일반적인 평신도와 구분됩니다.

그러니까 실생활에서 우리는 ‘사제단’에 포함된 이들을 사제 혹은 신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제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봉사를 지금도 끊임없이 구현하는 이들입니다. 수도자들은 온전히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자 투신하였고, 공동체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구현해 내는 이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 분들은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청컨대) 열심히 살고, 좀 더 가난해지며, 거룩해지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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