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 - 김근수]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시작된 지 벌써 50년이 지났다. 시대 변화의 속도가 빠른 현대에서 50년은 옛날 100년보다 더 기나긴 시간으로 여겨진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과를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찾는 분위기가 무르익은 오늘이다. 교황 프란치스코 시대에 적어도 제3차 바티칸 공의회의 소집이 선포되기를 나는 바란다.

지난 50여 년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해석과 적용을 둘러싸고 가톨릭교회에 크게 두 흐름이 있었다. 공의회의 결의를 어떻게든 저지하려는 입장과 그 정신을 실현하려는 입장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시대에 가톨릭교회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 시절에 교회 내 보수적 그룹은 새로운 공의회 소집을 끈질기게 요구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76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존할 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되살리자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3차 바티칸 공의회를 일단 소집이라도 하면 후임 교황이 공의회를 취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과 많았지만, 약점도 많았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새로운 공의회가 왜 필요한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계승할지 단절할지 가톨릭교회는 태도를 확실히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교황 회칙이나 문서 등으로 계승한다 해놓고 사실상 외면하는 태도를 반성하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공의회가 지금 시급한가? 그렇다. 개혁적인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 시기는 교회개혁을 위해 놓칠 수 없는 드문 기회다. 만일 다음 교황이 다시 보수적인 흐름을 보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톨릭교회는 한없는 자괴감에 빠져 갈 길 모르고 헤맬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의 닫혔던 창문을 현대세계에 활짝 열어놓았다. 시대의 문제를 경청하고 인간의 고뇌에 귀 기울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가톨릭교회의 무기력을 체험한 아픔을 기억하였다. 이웃 종교와의 대화에도 앞장섰다. 유다교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여주었다.

ⓒ김용길

많은 개혁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약점도 드러났다. 돈이 없고 교통이 불편한 탓에 유럽 이외 주교들은 공의회에 드물게 참석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유럽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주도한 유럽 공의회나 마찬가지였다. 유럽 이외 교회는 들러리 신세에 다름없었다.

주교의 권리가 강화되어 마치 주교들을 위한 공의회 같았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지만, 평신도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존재로 취급되었다. 교회의 가난 문제는 공의회에서 논의 자체가 아예 금지되었다. 가톨릭교회가 가난한 적이 역사상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 후 등장한 가톨릭 교리서나 개정 교회법은 공의회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가톨릭교회 신자의 절반 이상이 유럽 밖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주도권은 유럽 교회가 행사하고 있다. 교황청 고위직은 대부분 유럽인들 차지다. 주교나 추기경 숫자는 신도 수에 비례하지 않고 있다.

세상은 신자유주의 흐름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영향력은 더 강화되었다. 가난한 제3세계 사정은 더 악화되었다. 이슬람교는 아프리카에서 신도 수를 늘리고 있다. 가톨릭교회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주장은 커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가톨릭교회를 떠나고 있다. 성서 정신과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 가톨릭교회 교계제도에 대한 의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교 제도 개혁부터 여성사제까지…
새 공의회는 교회 내부 개혁에 힘써야

새로운 공의회는 어떤 문제를 다루어야 할까? 우선 가톨릭교회 내부 개혁에 애써야 하겠다. 주교 제도 개혁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주제다. 무한권력에 무책임이 특징인 주교 제도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주교의 제1 임무는 신앙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교회의 재산관리로 바뀐 것 같다.

주교 선출, 임기, 권한, 소환 등 논의할 부분이 많다. 교구 신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주교 임명 방식은 고쳐야 한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교구를 개인기업처럼 운영하는 주교를 신자들이 소환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주교의 임명과 퇴임에 평신도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

주교의 권한을 크게 줄여야 한다. 주교는 독재자가 아니다. 고대 전제정치를 본뜬 가톨릭교회의 교계제도는 현대 민주주의 원리를 배우고 적용하도록 애써야 한다. 현재 가톨릭 교계제도는 성서 정신에 어긋나는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교회의 가난 문제도 논의되어야 한다. 헌금, 재산 운영에서 성직자는 손을 떼고 평신도에게 관리를 맡기는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 돈 관리는 성직자가 할 일이 아니다.

사제독신제 문제는 지역 교회 사정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여성사제 문제도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 여성사제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지난 시절 가톨릭교회의 잘못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성사제를 거부할 아무런 신학적 근거도 없다. 사제독신제나 여성사제는 변할 수 없는 교리 문제가 아니라 변화 가능한 교회법 문제다. 평신도의 권한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 내부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로 해방신학의 등장을 꼽아야 하겠다. 해방신학은 사실상 최초로 유럽 밖에서 탄생한 신학이다. 가난한 사람을 핵심으로 하는 신학이 탄생한 것은 그리스도교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해방신학은 새로운 공의회에 활기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 신학계는 성직자에서 평신도로 그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평신도 신학자들이 새 공의회에서 크게 활약할 것이다. 여성신학자들도 크게 늘어났다. 여성이 공의회에 참여하는 최초의 역사가 곧 다가올 것이다. 성직자인 신학자들이 주교들을 보좌하는 전통적인 공의회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21세기는 평신도의 시대다.

새로운 공의회는 유럽 밖의 교회도 활발히 참여하는 최초의 ‘세계 공의회’가 될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교회의 목소리가 역사상 최초로 들리는 공의회가 될 것이다. 평신도 신학자와 여성들도 참여하는 최초의 공의회가 될 것이다. 유럽에서 탄생하지 않은 해방신학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공의회가 될 것이다.

교회는 교회 밖의 세상과 대화해야 한다. 불의, 가난, 정치적 억압, 국가의 횡포, 빈부 격차, 군비 확장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웃 종교와 대화, 교회일치, 현대학문과 대화에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먼저 교회 안의 세상과 대화해야 한다. 교회를 곧 성직자로 동일시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 ‘세상’이 누군지 알기나 할까. 성직자 중심주의는 가톨릭교회가 가진 3가지 유혹 중 하나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적하였다. 교회는 평신도, 여성, 가난한 사람과 우선 대화해야 한다. 성직자가 교회의 집주인이고 평신도는 세 들어 사는 사람인가. 성직자는 1등급이고 평신도는 2등급인가. 가난한 사람들이나 여성은 교회 안에서 버림받은 존재인가. 예수가 탄식할 일이다.

가톨릭교회는 2000년 동안 성직자를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래서는 안 된다. 교회 구성원인 하느님 백성 모두를 골고루 존중하는 교회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늙은 남자 성직자들의 권력 놀이터가 아니다. 교회의 중심은 성직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라는 진리를 교회가 몸소 보여주길 바란다.

새 공의회가 가톨릭교회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리라고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작은 몸부림이라도 공의회가 보여주길 바란다. 제3차 바티칸 공의회가 어서 소집되면 좋겠다.
 

 
김근수 (요셉)
연세대 철학과, 독일 마인츠대학교 가톨릭신학과 졸업. 로메로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의 UCA 대학교에서 혼 소브리노에게 해방신학을 배웠다. 성서신학의 연구성과와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탕으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마르코 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 : 세상의 고통을 없애는 저항의 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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