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신부]

사제서품식 미사에 참석해보신 분들은 기억이 나실 겁니다. 성인호칭기도가 끝나면 주교님은 사제품 후보자들을 거룩하게 해달라고 성령을 청하는 기도를 한 후, 그들에게 한 명 한 명 안수를 합니다. 그러면 이어서 함께 한 사제들도 모두 사제품을 받는 이들에게 안수를 합니다. 이때 가장 먼저 안수한 주교님은 오른 손을 들고, 모든 사제들이 안수를 마칠 때까지 제대 가운데 서 계십니다. 다른 사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명씩 주교님의 주변을 메우며 새로이 사제가 될 이들을 향해 오른손을 든 채 서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제들의 안수가 끝나면 주교는 사제서품기도를 바치는데, 이때까지 오른손을 들고 있게 됩니다.

서품식에 가서 대부분 신자에게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후보자들이 바닥에 부복하는 장면이고, 저는 이것에 덧붙여 또 하나의 장관이 안수와 손을 든 채로 사제단이 주교 주변으로 모이는 장면을 꼽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자리를 잘못 잡으면 오른 팔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며칠 전 참석했던 사제 서품식에서, 결국 운에 달린 것이었겠지만, 주교님에 이어 거의 맨 처음으로 안수를 하게 되는 '봉변'을 당한 것입니다. 함께 하셨던 사제들 이백여 명의 안수가 다 끝날 때까지 오른손을 펴들고 있자니 마치 모세가 아말렉과 싸우는 이스라엘의 군사를 응원하고 있는 모습(탈출 17,11)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오른손은 왜 계속 들고 있었던 걸까요?

▲ 사제서품 후보자들은 주교와 사제단 전체의 안수를 받는다.(지금여기 자료사진)

가톨릭 교회에는 성사 외에 준성사(準聖事)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사는 잘 아시다시피, 세례, 성체, 고백(화해), 견진, 혼인, 성품, 병자 성사, 이렇게 일곱 개의 성사가 있습니다. 준성사라는 것은 성사와 비슷한 듯 하지만, 축복(강복, 축성), 축원, 봉헌, 구마 등으로 언제나 기도가 포함되며, 흔히 안수, 십자 성호, 성수 뿌림 같은 일정한 표징이 따릅니다. 축성과 축복은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구분됩니다. 일단 다른 낱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축성은 "봉헌하여 성스럽게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 콘세크라시오(consecratio)를, 축복은 "좋은 말을 하다"는 의미의 베네딕시오(benedictio)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축성은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미사 때마다 우리는 이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성품성사, 주교품 예식, 성당 축성 등에서 축성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이나 사물이 축성의 대상입니다.

축복도 사람이나 사물 모두에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안수를 하든지, 성물 등에 십자표를 하면서 하느님께서 은총과 복을 내려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수를 조금 더 설명하자면, 세례 지원자에게서 악마를 내쫓을 때, 사죄를 할 때, 병자, 견진, 신품성사 때 안수를 합니다. 손을 얹는 동작은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위한 축성과 거룩한 권능을 전수하는 표지가 됩니다. 서품식과 관련해서 보면, 하느님의 성령이 선발된 존재를 세상에서 분리시켜 그에게 직무를 수행할 권위와 능력을 수여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른손을 계속 들고 있었던 것은 안수에 이은 이 축복의 행위가 계속 진행 중에 있다는 있음을 표시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저는 오른팔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새로 사제로 날 이들이 그리스도의 삶에 전적으로 투신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축성과 축복은 모두 성직자들만 할 수 있다고 알고 계신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축성은 성격상 성직자들에게만 권한이 있습니다. 설명드렸다시피 성체와 성혈을 위한 축성은 사제들이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축복은 평신도들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준성사들은 적어도 특수한 사정에서 직권자의 판단에 따라 적절한 자격을 갖춘 평신도들이 집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 79항). 평신도들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받은 보편 사제직에 근거해서 축복할 수 있으며, 축복예식서에 평신도를 위한 예식과 형식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여 보면, 지역 주교는 경당을 축성(축복)하고, 사제, 부제, 시종직과 독서직을 가진 이들은 공동체 생활과 관련된 축복을 하며, 부모는 가정생활과 관련된 축복을 하는 셈입니다(참조, <전례사전>, 주비언 피터 랑 지음, 박요한 영식 신부 옮김, 가톨릭 출판사). 주교의 협조자로서 사제들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할 수 있습니다. 견진성사도 주교의 위임을 받으면 집행할 수 있습니다. 이때 견진 후보자들을 축성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가족, 이웃들에게 더 많이 축복해주는 한 주간 되시길 빕니다. 저는 이어지는 서품식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축복을 좀 더 잘하기 위해서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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