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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의 위계질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기사승인 2014.03.05  16: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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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지인 중에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요즘 교황님의 행보에 신선한 기분을 느끼시는 한 분이 물어왔습니다. 가톨릭의 위계질서는 어쩌다 생겨났는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 부제, 평신도 등으로 구분되는 가톨릭교회 내의 ‘서열’에 관한 기원을 말씀드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위계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협조자로 사도들을 모으셨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위계제도에서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그룹을 우리는 성직자들(Clergy)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성품성사(신품성사)를 통해 선별됩니다. 가톨릭 성직자단은 주교, 사제, 부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교계(hierarchy)’라고도 말합니다. 기원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마지막까지 지속될 교회를 세우시고, 사도들에게 사람들을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리는 특별한 권한과 임무를 부여하신 데 있습니다. 이 사목 권한이 후계자들에게 계승되어 온 것입니다(교회헌장 18항 참조).

전승에 따르면 사도 중에 요한이 가장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 그가 죽고 난 후, 2세기에는 더 이상 사도들이 없고 사도들로부터 권한을 계승받은 이들만이 교회를 이끌게 되었기에 사실상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교계는 그때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사도로부터 권한을 이어받은 이들이 각 지역의 목자로서 교회를 이끌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14-17절)을 보면 사도들이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안수를 하여 성령을 청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오늘날의 주교서품식이라 하겠습니다. 티모테오 1서 3장에서도 초세기 교회 내에 조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지난 2월 5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서품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입장하는 주교단 ⓒ한수진 기자

가톨릭교회의 위계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매우 간단히 설명하고 끝내자니 좀 심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더불어 이왕 말 나온 김에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서 각 직분에 대해 설명을 덧붙여 보겠습니다.

우선, 주교〔Bishop, 그리스어 에피스코포스(episkopos)〕. ‘감독하는 자’, ‘관리자’, ‘지도자’, ‘감독하는 관리’ 등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감독’이라고 나옵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0장 28절에는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감독이란 낱말이 주교라고 번역된 것입니다.

신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주교가 혼자 사목을 할 수 있었지만, 점점 더 신자들이 늘어나고 따라서 사목 지역이 넓어지면서 협력자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곧 사제(흔히 신부라고 불립니다)들입니다.

사제〔Priest,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루스(Presbyterious)〕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원로”라는 단어가 그 기원이 됩니다. 사제들은 주교를 도와 성사를 집행하는데 견진과 성품성사에 대한 권한은 없습니다. 종종 주교의 위임을 받아 견진성사를 집행할 수는 있지만 성품성사는 주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제〔Deacon, 그리스어 디아코노스(diakonos)〕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을 도울 일곱 명의 봉사자(디아코노스)를 임명하였습니다(사도 6,5). 그들이 그 후 부제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디아코노스는 ‘일꾼’, ‘행정가’라는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부제는 사제와 함께 주교의 협력자로 활동합니다. 초세기의 교회에서는 주교의 곁에서 일을 돕는 봉사자 역할이 강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사제들이 사목을 주도하는 것과는 달리, 주교나 사제의 위임을 받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직접적인 봉사, 본당에서 전례 활동에 중점을 두고 활동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주도하고 복음을 읽고 강론을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방) 가톨릭교회에서 부제는 성체성사가 아닌 예식, 즉 세례식, 혼배예식, 장례식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또 영성체, 병자성체 등의 직무도 수행합니다. 반면에 동방 가톨릭교회에서는 오로지 독서자의 역할만 수행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직자단과는 구별되는 평신도(laity)가 있습니다. 평신도는 서품되지 않았거나, 수도회에 소속된 회원, 즉 수도자가 아닌 모든 가톨릭 신자를 일컫습니다. 교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신자들입니다. 교회 내에서 평신도의 역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는 사제들의 지도를 받는 수동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공의회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교회 내에서 전례에 참여하고 나아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능동적인 역할이 부각되었습니다. 평신도 개개인의 영적으로 충실한 생활로부터 시작되어 교회 내외부에서 봉사하는 평신도들의 이러한 역할을 ‘평신도 사도직’이라고 합니다. 평신도 사도직은 그 누구에게서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 부여받은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미사에 참석해 기도하는 신자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자료사진)

지금까지 훑어본 것이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위계의 틀입니다. 그럼 교황, 추기경, 대주교, 수도자들은 어디 갔느냐 하실 분들도 계시겠군요.

역할 상 교황, 추기경, 대주교는 주교의 부류에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교황은 모든 주교들의 수장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사도들의 우두머리이기도 했기 때문에,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황은 로마 교회의 주교이면서 동시에,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단의 단장이기도 한 것입니다.

추기경〔라틴어 카르디날리스(Cardinalis)〕은 일반적으로 교황 바로 다음의 고위 성직으로 여겨집니다. 추기경의 호칭은 5세기에 처음 나타났으며, 어원상 ‘중심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중추라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점차 로마에 있는 스물여섯 개 주요 성당의 수석사제와 로마 관구에 속한 여섯 개 교구의 주교들을 일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가 교황 선출을 추기경들에게 맡기는 교령을 선포하면서, 추기경들은 다른 주교들이 가지지 않는 권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로마 주교(교황)는 다른 도시에서 주교를 선출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선출되었다고 합니다. 즉 로마의 성직자들이 선거인단이고 이웃 지역의 주교들이 회의의 의장과 선거의 판정관 역할을 하고 일반인들이 찬성이나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오늘날 추기경의 주된 소임은 교황이 사망했을 때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것과, 교회의 중대한 사항에 대해 추기경 회의를 통해, 혹은 개인적으로 교황을 보필합니다. 참고로 로마 교구 내에서 추기경은 주교급, 사제급, 부제급 추기경의 세 위계로 나뉩니다. 옛날에는 주교급 추기경직을 받을 때만 주교서품이 의무였고 사제급과 부제급의 경우에는 주교품을 받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그러니까 이때에는 주교가 아니더라도 추기경이 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현대에 와서 1962년에 교황 요한 23세가 추기경이면 모두 의무적으로 주교품을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즘은 ‘추기경이면 주교’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아무튼 바티칸에 가면 교황님 옆에서 부제 복사 서는 분도 추기경일 수 있으니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대주교는 아주 간단히 말해서, 대교구로 분류된 지역을 다스리는 주교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 광주 · 대구, 세 개 교구가 대교구로 분류되며, 이 교구를 맡는 주교는 자동적으로 대주교가 됩니다.

수도자는 수도회에 소속된 이들입니다. 신분상 성직자일 수도 있고 평신도일 수도 있습니다만,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로서 다른 형태의 삶과는 구분됩니다. 그들은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적 권고를 서약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살아갑니다. 수도자들은 신분적 성격상 교회의 위계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특수 집단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어째 질문에 대한 답보다 사족이 더 길어졌습니다만, 부디 속풀이하셨기를 바랍니다.

사족 한 번 더.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다시 사순 시기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 시기 동안 무엇을 끊어볼까 하시는 분이 적잖게 계실 듯한데, 무엇을 좀 더 열심히 해볼까로 질문을 바꿔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무엇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보다 무엇을 더 하겠다고 하는 게 마음이 좀 편하지 않나요? 과식을 안 하겠다보다는 자선을 좀 더 하겠다. 술을 끊겠다보다는 기도를 좀 더 하겠다. 텔레비전을 안 보겠다보다는 독서를 좀 더 하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런 것 말고, 사순 시기를 경건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사는 법 알고 계신 분은 그 지혜를 공유해 주세요.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박종인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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