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화물여객선 ‘세월호’의 침몰은 우리 사회가 키워온 생명경시풍조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으로 역사 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제대로 된 구조 작업(인양 작업이 아닌, 여전히 생존해 있을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는 반드시 낱낱이 밝혀내야 할 것이지만, 위기에 빠진 생명 앞에서 드러난 그런 태도의 배경에는 물신숭배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배 안의 여객을 선장도 행해사도 책임지지 않았고, 사태 수습에 있어서 이 나라 대표 이하 정부의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것을 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배 안에 남겨진 아이들이 있는데 먼저 탈출하게 된 것에 너무 깊이 상심한 나머지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 선생님의 사연은 모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느끼는 미안함에 기대서 상상해보면, 교감 선생님에게 배 안에 아이들을 남겨뒀다는 것에 대한 회한을 견디며 남은 생을 산다는 것은 분명 지독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정말이지 죽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슬픔과 좌절 말입니다.

그런데, 단원고 교감 선생님만이 아니라 많은 무고한 이들, 특별히 왕따를 당했던 아이들, 이유 없이 폭력적인 해고를 당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선택한 죽음은 과연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 걱정하는 신자 분들이 계신가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사안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을 온전히는 알 수 없다 해도 돌아가신 교감 선생님을 이해하듯 그들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 나약했다는 평가는 하지 말아야 할 말 중에 하나입니다. 평가는 하느님이 하실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하느님이 그들의 고통을 들으셨을 것이고, 그분의 자비가 빛을 발할 순간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하느님께서 닦아 주실 것이고, 그들을 걱정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서 헤아리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약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좀 더 관대하게 우리의 한계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각 사람이 고통을 이겨내는 정도는 모두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단순히 육체적 건강만 가지고 말할 수도, 정신의 건강만을 가지고 말할 수도 없는 법입니다. 육체와 정신 중에 어느 것이 먼저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고려해야 합니다.

심각하게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질 때, 정신적인 장애를 경험하게 됩니다. 반대로 정신적인 충격에 빠져 건강이 심하게 훼손되기도 합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육체적 고통을 당할 때는 스스로 육체에 해를 가할 수 없지만, 육체적으로는 움직일 수 있는데 정신적인 균형을 잃은 상태라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심한 좌절과 죄책감으로 깊은 우울감에 빠지고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통제력을 잃고 스스로 육체에 해를 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에는 정신신체의학(psychosomatic)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희랍어가 지닌 뜻대로 정신(psyché)과 육체(soma)의 연관성을 다루는 의학입니다. 아마도 이 분야의 관점이 정신적 고통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혹은 육체적 건강을 잃게 되면 정신적으로 어떤 타격을 입는지)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부연하기는 불가능합니다만,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이도 역시 아픈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꼭 신체의 어떤 기관이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만을 병들었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어떤 이는 장수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사고나 병으로 일찍 이 세상을 떠납니다. 죽음을 선택한 이들도 아파서 숨진 이들입니다. 그 영혼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느님,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춰 주소서.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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