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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사는 면죄부와 같은 건가요?

기사승인 2014.06.03  16: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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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 영화 <레이닝 스톤>의 고해성사 장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시어 집전하실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을 앞두고 전국 열여섯 개 교구의 전대사 일정이 반포되었습니다. (이곳에 가시어 이번 전대사 반포의 의의와 다양한 정보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popekorea.catholic.or.kr/notice.asp?menunum=5806&act=r&seqid=145890
)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시복되실 124위와 관련된 성지를 순례하고, 각 교구에서 요구하는 지침을 수행하면 전대사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전대사가 뭔가 좋은 것이라는 느낌은 오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시겠다는 분들이 계셔서 설명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전대사(全大赦)는 대사(大赦)의 한 종류입니다. 대사는 은혜, 관용, 너그러움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 인둘젠시아(indulgentia)를 번역한 말입니다. 한자로도 크게 용서해 주는 것을 의미하니 잘 풀이된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하느님의 용서와 너그러운 마음을 뜻합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고해성사(고백성사)를 통해 하느님께 고백을 하면, 보속(補贖) 행위를 거쳐 죄에 따른 벌을 해소하게 됩니다. 보속은 참회를 통해 생겨난 결심 즉,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행위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죄를 용서받았으면 자동적으로 벌도 용서받는 거 아닌가?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벌 받기를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벌 받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딜레마를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교회는 고해성사를 통해 일정한 보속을 제안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적당한 보속은 죄를 멀리하겠노라는 개인의 결심을 다지고 마음의 멍에를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보속이 벌을 온전히 해소하는 데 적당했는지는 하느님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상에서 이루어진 보속 행위가, 만에 하나 좀 부족했다면 받아야 할 벌이 조금이라도 여전히 남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받아야 할 벌〔잠벌(暫罰) : 지옥에서 받는 영원한 벌과는 다른 한시적인 벌〕을 연옥에서 해소하게 됩니다. 대사가 필요한 순간이 이때입니다. 연옥에서 해야 할 이런 보속 행위를 면제해 주는 것이 대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사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전대사와 한대사(限大赦)가 그것입니다. 전대사는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면제해 주는 것이고 한대사는 그 벌의 일부를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대사나 한대사를 연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해 대신 받을 때 그것을 대원(代願, suffrage, 남을 위해 드리는 기도)이라고 합니다(가톨릭대사전 참조).

초기 교회에서는 죄인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기간이 길었다고 합니다. (죄의 경중에 따라 교회가 죄인에게 정해준 속죄 기간 중 일부를 면죄해 주는 것을 앞서 언급한 한대사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오늘날에는 사실상 쓰이지 않는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40일, 80일에서 길게는 몇 년 동안 속죄를 하도록 했지만 기간이 길었고, 그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벌을 사면 받을 수 없었기에 긴 속죄 기간은 실제로 신자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데 장애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주교들은 특별한 경우에 속죄 기간을 단축하여 주기도 했다는데, 이런 기간 단축이 대사의 배경이 됩니다. 중세에 와서 속죄 ‘기간 단축’이 아예 속죄 ‘사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속죄 사면이 중세 말에 남용되면서 소위 면죄부라고 알려진 증서까지 나돌게 된 것인데 교회가 이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것이 많은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면죄부는, 그것을 발급받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비가톨릭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잘못 사용되는 용어로 남아있는 듯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대사라는 말이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은 죄에 대한 벌을 사면해 주는 것(즉,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이지 죄 자체를 용서하는 효력을 지니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대사를 면죄부와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이후 트리엔트 공의회에 와서야 대사의 남용을 규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엄했던 보속들이 폐지되었고, 현대에 와서 교황 바오로 6세는 대사의 의미와 규정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사를 받기 위해 신자들이 해야 할 의무들 역시 완화되기에 이릅니다.

그 기본적인 규정은 이렇습니다. 대사를 받기 원하는 사람은 신자로서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고, 순례처로 지정된 성당을 방문하고, 교황이 요청하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달마다 교황님의 기도 지향이 바뀝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매일미사>의 목차 부분을 보시면 교황님의 기도 지향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속은 미사, 영성체, 기도, 극기, 희생 등으로 할 수 있지만, 죽은 후에는 연옥에서 그런 행위를 할 수 없기에 대사를 통해서만 면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 식으로 이해하면 교도소 복역 기간이 짧아진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얻게 된 대사를 죽은 연옥 영혼들에게 하루 한 번에 한하여 양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사를 양도함으로써 연옥 영혼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천주교 용어사전 참조).

이참에 교회상식 속풀이 ‘죽은 이들에게 기도 부탁하는 것은 미신?’ 편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벌을 면하기 위해서 대사를 받는 것보다는 이웃 영혼의 구원을 돕고자 하는 것이 더 긍정적으로 보속 행위를 이해하는 시각으로 보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벌에 대해 느끼는 긴장과 두려움은 사라져 갈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박종인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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