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꽃동네는 새로운 장애인 복지의 걸림돌

‘구미판 도가니’ 사건은 장애인복지시설의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

이번에는 ‘구미판 도가니’ 사건이다. 검찰은 지난 8월 1일 수용 장애인들을 감금하는 등 가혹 행위를 하고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미시 옥성면 S장애인 복지시설 관계자 20명을 기소했다. 또 복지시설 허가 과정에서 공무원 유착 비리 여부를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수용 장애인의 버릇을 고친다며 양팔을 뒤로한 채 손발을 묶고 기저귀를 채운 뒤 나흘 동안 방에 감금하고 설탕물 외에는 식사를 전혀 주지 않는 등 가혹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장애인에게는 10차례 이상 알몸 상태로 입, 손발을 도복 끈이나 수건, 압박붕대, 스카치테이프 등으로 묶어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가혹행위를 했다. 심지어 장애인들을 막노동 현장으로 내몬 뒤 받아온 일당을 챙기는 등 노동 착취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회가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으로 충격과 분노에 빠져있다. 그런데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부랑자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에 세웠던 대규모 수용시설에서 수십 년 째 빚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사건에는 왜 무관심한가. 형제복지원에서만 확인된 공식 사망자 수가 551명이다.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 1975∼1987년까지 일어난 대형 인권 유린사건 - 편집자)

그 중에도 더 큰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 장애인 수용시설의 인권유린이다. 수용 장애인들 스스로가 자기 표현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시설장과 직원들에게 그들이 저항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이다. 이번 ‘구미판 도가니’ 사건도 퇴직한 직원들에 의한 고발로 비로소 외부로 알려졌다는데 수용시설의 폐쇄성은 그것을 더욱 부채질한다. 또 지도점검을 하는 공무원들이 상납을 받으며 시설에 특혜를 주고 비리를 눈감아주는 유착관계로까지 진화하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 문제가 외부로 드러나기란 쉽지 않다.

이 시설은 장애인들을 내세워 국가와 지방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을 횡령했는데 시설규모가 그리 크지 않는데도 횡령 금액이 자그마치 6억 원이 넘는다.

물론 전국의 장애인 수용시설이 모두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용 장애인의 인권유린, 보조금 횡령, 공무원 유착 비리 등은 감시 감독의 미비,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복지는 뒷전이고 주머니 챙기기’에 더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할 정도다.

▲ ⓒ한상봉 기자
대어는 놓치고 잔챙이만 잡는 장애인복지시설 비리 수사

그나마 구미 사건은 규모가 큰 시설이 아니어서 적발됐지만 대규모 장애인 수용시설들은 비리 백화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관리 감독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꽃동네가 대표적이다. 꽃동네의 수용 인원만 4000명이다.
장애인복지 전문가들은 장애인복지시설 수용자들의 인간적 관리와 보호를 위해 시설을 소규모로 운영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수용자들의 인격권 보호와 사회통합을 위해 1999년 개정된 ‘사회복지법’은 복지시설의 최대 수용 인원을 3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꽃동네는 처음부터 기업형 대형 시설을 목표로 운영하였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역시 장애인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시설이 보호하는 장애인들에게 인간적 예우와 인격적 대우를 할 것을 권장하고 있지만 꽃동네에서는 강제노역과 무보수 노동에 장애인을 동원한 사실이 폭로되기도 하였다.

또 정신요양원 120명 중 시설 목적과 관련 없는 입소자가 전체의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시설에서 난동을 일으키는 경우 시설 중 오지에 있는 ‘귀양지’로 불리는 곳에 강제 입소시키거나, 폐쇄된 곳에 위치한 정신요양원은 봉사자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 없이 비전문 봉사자들이 관리를 맡아 약물의 과다 투여, 오남용의 우려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특히 꽃동네는 장애인 시설을 외부에서 관람객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개방하여 관람자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후원회원을 모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들은 사생활을 침해받고 개개인의 인권을 유린당하는 심한 모멸감과 낙인감(자신이 사회적 약자로 낙인이 찍혔다고 느껴 수치심을 갖는 것)을 갖게 된다. 이에 대해 장애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라고 요청하는 전문가들과 장애인들의 요구에 담당 수녀는 후원자가 줄어들어 수입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고 거절했다.

꽃동네는 지난 수십 년 간 연 100억 원 이상을 85만여 명의 후원자들로부터 모금하였고, 정부로부터 매년 수백 억 원의 지원금을 받아 왔다. 지금까지 꽃동네가 모금한 후원금과 정부지원금은 천문학적 금액이지만 그 사용 내역은 투명하지 않다.

오웅진 신부는 꽃동네가 복지재단 법인으로 인가받은 1984년부터 농지와 대지 임야 등을 사들이기 시작하여 현재 꽃동네 부지는 약 430만평으로 추정된다. 2009년 오웅진 신부를 대주주로 하는 영리법인 꽃동네 유한회사가 설립되는데, 결국 세금과 후원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유한회사로 이전시켜 횡령과 배임 행위를 완성한 꼴이 된다.

꽃동네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권력과 유착하여 음성과 가평 꽃동네에 1년에 수백억 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다른 기관에 비해 과다하게 받고 있다. 그래서 가평에 소재하는 작은예수회가 운영하는 장애인 보호단체는 지난 몇 년간 정부지원금이 없어서 시설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정부와 꽃동네, 청주교구 장봉훈 교구장에게 시정과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꽃동네는 정부지원금 사용에 대한 감사를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게다가 음성군의 복지예산 부담이 커 ‘음성을 사랑하는 모임’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아예 ‘수용인원 70%가 다른 시도 주민이고 1000명 이상 대규모 복지시설은 전액 국비 지원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뼈대로하는 일명 꽃동네법(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추진했다.

꽃동네는 설립 초기부터 권력층과 유착 관계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여느 복지시설처럼 말단 공무원들과의 유착 비리를 뛰어넘었다. 설립 초기인 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북한에 대한 사회복지의 우위를 선전하기 위해 꽃동네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면서 꽃동네는 행정적, 재정적 특혜를 무차별적으로 받았다.

물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오웅진 신부는 선거 때만 되면 특정 정당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불법 선거를 주도하였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꽃동네 투표에서 한 정당에 몰표가 나와 군수후보와 도의원 후보가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했는데, 수녀들의 대리 투표와 수사들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이 드러나 형사처벌을 받기도 하였다.

가톨릭 종교권력의 중심에 오웅진 신부가 자리 잡고 있다. 오웅진 신부는 그 당시 청주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추기경의 모친을 꽃동네에서 돌보면서 그를 ‘오웅진 찬양론자’로 만들었다. 꽃동네 회지 첫머리에서 오웅진 신부는 “나는 명망 있는 가톨릭 사제로 85만 표를 가진 꽃동네 회장이며 한국천주교 주교 모두가 자문위원으로 있는 천주교 사회복지 단체의 대표”라고 과시한다. 결국 오웅진 신부는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이용하여 누구로부터도 제재나 감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불법적인 대규모 복지시설의 제왕이 되었다.

꽃동네 문제는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접근하고 청산해야 할 ‘적폐’

이처럼 꽃동네는 오래 전부터 장애인 수용시설들의 세 가지 문제점으로 꼽혔던 수용 장애인 인권유린, 국고 보조금 횡령, 권력 유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시키지 않고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선진화는 연목구어일 따름이다.

지난 8월 5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최경환 부총리가 5년간 316조원을 투입하는 사회복지 기본계획을 보고하자 “복지전달체계로 인한 ‘혈세낭비’라는 말이 안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사회복지 기본계획과는 별개로 전달체계에 대한 수술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측면에서 꽃동네의 문제점이야말로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접근하고 청산해야 할 ‘적폐’다.

그럼 왜 장애인 대규모 수용시설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가. 결국 규모의 문제다. 수용인원이 많아지면 자연히 장애인은 통제 대상이 되고 처우는 비인간적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야 수용 장애인 모두가 사회 내로 통합돼야겠지만 그렇지 못해 설사 장애인 생활시설일지라도 적정한 수 곧 일정 수준 이상은 넘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2009년부터 신규 시설에 대해 30인 이상의 규모는 허가를 안 내주고 2011년부터는 기존 시설도 30인 이하로 운영되게끔 한다”는 장애인 생활시설 정책을 발표했지만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1998년 국정감사 당시 오웅진 신부는 “앞으로 시설 확장을 자제하고 인권 존중과 인간화를 실현하는 기본 정책을 수립하여 소규모 시설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사기업적 이익 창출을 위한 대규모 수용시설의 무한 확장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를 통해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자립을 지향하는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 실현을 꽃동네가 가로막고 지체시키고 있다.

▲ ⓒ한상봉 기자
예수의 장애인복지는 집단적이지 않고 개별적 인격의 만남

오웅진 신부를 비롯해 장애인복지사업을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스승인 예수는 장애인수용시설은커녕 이미 2000년 전에 치유행위를 통해 장애인들을 사회공동체로 불러들였을 뿐 아니라 치유행위 자체도 집단적이지 않고 개별적인 만남이었다. 그것은 눈과 눈이 마주치는(eye contact) 만남이었다. 오웅진 신부 한 사람만 이름이 남고, 수천 명의 장애인들은 이름도 없이 살다 죽어가는 꽃동네 방식이 아니라 복음서에는 자캐오, 라자로와 같은 숱한 장애인들과 예수의 인격적 만남 이야기가 넘쳐난다.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의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글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000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예수의 눈길에는 “한 사람의 생명은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그분의 생명존중 인간존중의 온전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그 유명한 탈무드의 격언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바로 예수의 복지 정신이었다.

우리 장애인복지는 이제 이런 개별성에 집중할 때가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유한 인격이 있듯 당연하게도 장애인 역시 개별성을 지닌 존재이다. 집단 수용소에 가둬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 것이 은총이 될 수는 없다. 대규모 수용시설에 예산을 몰아주는 행정편의주의적 구태에서 벗어나 국가는 장애인 각자가 한 인간으로 우리 사회 안에 당당한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헌법적 가치 실현이란 차원에서 배려해 주고 그 삶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꽃동네 오웅진 신부에게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강론하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소외된 이들의 사회통합을 거듭 강조하면서 그 개별성에 주목하도록 권고한다. 지난 6월 한국을 찾아온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 마리오 토소 주교에게 장애인들이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내가 한 부탁도 “설사 교황이 꽃동네를 방문할지라도 오웅진 신부에게 ‘수용된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에 나서달라’는 강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교황의 꽃동네 방문이 한국 장애인복지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가톨릭 장애인복지가 반(反)예수적인 수용시설 중심에서 사회통합과 자립생활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은 교황 방문의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가장 뜻 깊은 결실이 될 것이다.
 

 

 

정중규 
대구대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정책네트워크 내일 장애인행복포럼 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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