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두 해 전 가을에 모 대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청소년을 위한 축제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교구의 중고등부 주일학교 연합회가 주최를 하고 저는 옆에서 손을 보탰습니다. 주일학교와 여러 단체 소속 중고등학생들이 행사를 위해 마련된 부스를 다니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축제의 마지막 부분은 청소년들의 노래, 춤, 음악 연주 등의 공연이었고, 파견미사로 즐거운 하루를 마쳤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물에 젖은 쓰레기 치우던 기억은 그다지 즐겁지 않지만, 큰 행사를 치르는데 즐겁게 봉사해 준 청년 봉사자들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가지 잊지 못할 기억이 더 있습니다. 이날 미사 참례를 하는 인원을 정확히 알 길이 없어 미리 제병을 마련해 뒀는데, 영성체를 마치고 나니 성합(성체를 담아두는 그릇)이 큰 것으로 세 개가 남았던 것입니다. 성체는 모자라느니 남는 게 낫긴 합니다만, 너무 심하게 남은 경우였습니다. 미사를 거행한 곳이 체육관이다보니 그곳에는 남은 성체를 보관할 곳이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학교가 가톨릭계 학교라 학교 성당의 감실에 모시면 되겠다 싶어 저를 포함해서 사제 세 명이 성합을 들고 학교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 감실에 모셔진 성합.(사진 출처=commons.wikimedia.org)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당의 감실이 이미 꽉 차 있었지 뭡니까! 우리 세 명의 사제는 난감함을 느끼며 조용히 제의실로 물러 나와 성합을 한 그릇씩 맡아 성체로 배를 채웠습니다. 우리 중 한 신부님이 이미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는지 그릇에 물을 받아 와 성체를 한 뭉치씩 찍어서 모시면 잘 넘어간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훌륭한 방법이었습니다. 단점은 포만감이 빨리 온다는 것.

어떤 분이 야외 미사 중에 영성체 후 남은 성체를 신부님이 남김 없이 영하시는 걸 보고 왜 그래야 하는지를 물어오셨습니다. 성체의 유통기한이 짧아서 그런 건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고 합니다.

제병이 성체성사를 통해 한 번 축성되어 성체가 되면, 우리는 이것을 성당의 감실에 보관합니다. 그래서 성당에 들어오면 저기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그 자리에 함께 계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체조배는 예수님과 내가 한 자리에서 함께 하는 기도입니다.

성당이나 성당에 딸린 경당의 감실이 성체를 모셔 두는 가장 올바른 장소입니다(전례사전 참조). 성체 모독을 방지하기 위해 미사 때 외에 감실은 잠겨 있습니다. 몸이 아파 성당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성체를 운반하는 행위 외에 성체가 지정된 장소인 감실을 떠나는 경우의 예는 성목요일 밤의 수난 감실 예절이나 성체거동(성체대회) 행사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함부로 대할 수 없기에 미사 후 바로 성체를 감실에 모실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남은 성체를 그 자리에서 모두 영하는 것이 옳습니다. 잘못 보관했다가는 훼손되거나 성체 모독이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고이고이 싸 가면 되지 않느냐 하실 수도 있지만, 다른 짐들과 함께 섞어 넣는 것도 무례한 일이 됩니다.

정리하자면, 성체는 기본적으로 성체성사 후 그 자리에서 다 소모합니다. 즉, 모두 영합니다. 우리가 성당의 감실에 성체를 보관하는 근본 이유는 급하게 성체를 영해야 하는 이들을 위해 성체를 보관해 둘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있는 분께 성체를 영하도록 급히 달려가야 하는데 미사를 드리고 축성하고 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성체조배를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신자들이 바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려는 것입니다.

성체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한번 성체는 영원한 성체입니다. 마른 빵을 축성한 것이라 습기만 조심하면 쉽게 상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성체성사를 통해 감실 안의 성체는 지속적으로 소모되고 새롭게 채워지기에 그럴 염려도 없습니다.

속풀이하신 김에 잠시 시간을 내어 성체조배 한번 다녀오세요.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원(경기도 가평 소재) 운영 실무
서강대 '영성수련'  과목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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