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꿈마을 첫번째 집
세월호참사 200일 째인 11월 1일. 이날은 마침 모든 성인들의 날이기도 했다.
안산 선부동본당 신자로 예비신학생이었던 박성호 학생의 꿈을 위한 ‘성호의 성당’은 아직 채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은 200일 추모식을 맞아 이 작은 오두막의 “축성식”을 하기로 했다.
이날, 선부동성당 인진교 신부를 비롯한 사제 4명은 박성호 학생의 가족, 신자와 시민 등 6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합동 분향소 앞 주차장 한 켠에 있는 ‘성호의 성당’을 축복했다.
이 ‘성호의 성당’은 앞으로 박성호 학생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하는 집’이 될 예정이다.
선부동성당 소공동체위원장 신성범 씨는 “신앙도 봉사도 열심히 했던 예쁜 아이”로 박성호 학생을 기억했다. 그는 1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성호가 직접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가 생각하고 꿈꿨던 일들이 이 공간을 통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또 멀리 전북 익산에서 와 가족들과 함께 참석한 김소리 씨(안젤라)는 “성당도 아름답고, 이 성당을 위해 마음을 모은 모든 이들이 아름답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소리 씨는 손수 준비해 온 꽃을 성당 안 성모상 앞에 봉헌하면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축성식에라도 참석하면 마음이 조금 나을 것 같아서 왔다. 이 공간을 마련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성호형은 게임도 잘 했어요”
“성호는 착하고, 똑똑하고, 잘 생기고...또 먹기도 많이 먹었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성호와 함께 성당 활동을 했던 심기윤 군은 작년 예비신학생 피정 때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게 “꼭 사제가 되자”고 성호와 약속하기도 했다면서, “이렇게 성당이 지어지는 것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심 군은 친구를 추억하면서 “항상 깨어 있고,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대하고 똑똑했던 친구였다”면서 “성호와 했던 약속을 지켜 꼭 사제가 되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항상 성호를 기억하고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약 15제곱미터 규모에 나무로 지은 ‘성호의 성당’은 서촌갤러리 대표 장영승 씨가 제안한 ‘세월호 꿈마을 프로젝트’의 첫 열매이기도 하다.장영승 대표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이 프로젝트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안타까운 꿈을 실현해 주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점점 잊혀 가는 세월호참사와 진상규명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계획은 앞으로 안산 화랑유원지 분향소 앞 4만여 제곱미터 주차 공간에 세월희 희생자 304명의 삶과 꿈이 담긴 집들을 세우는 것이다. 이번 ‘성호의 성당’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지어졌듯 그 내부 또한 여러 사람의 정성으로 채워졌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신주욱 작가, 성모상은 의정부교구 염동국 신부가 작품을 기증했다. 앞으로 종탑에 달릴 종도 이미 기증받았다.
성당이 건축된 지난 3주 간,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봉사와 재능기부에 나섰던 목수들이다. 하루 2-3명에서 많게는 7-8명까지 참여한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달려오는 것은 물론 전주, 진천, 제주에서까지 생업을 포기하고 자비를 들여가며 봉사하고 있다.
유병덕 목수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너무나 큰 사건이고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는데도 진상규명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이 정말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미안한 마음만 갖고 있던 참에 기회가 되어 참여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여건이 보다 충분했으면 더 좋은 성당을 지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의 꿈이 담긴 집을 지어주자는 꿈마을 프로젝트는 그 시작이 순탄치는 않았다. 또 많은 이들이 마음을 내놓은 덕분에 진행되고 있지만 봉사자들의 숙식 문제, 비용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호의 성당’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최봉수 대목장의 결심이 있었다.“처음엔 이 계획에 대해 거의 호응이 없었다더라고요. 작업실, 예산, 인력.... 뭐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중에 폐목재라도 구한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럼 내 목재 버리지 뭐’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있던 나무를 실어 날랐죠. 그것만 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줄 알았지....(웃음) 그런데 막상 분향소에 와서 보니, 마음이 달라졌어요. 저 분향소 모양이 옆에서 보면 영락없이 뒤집힌 배 모양이더라고. 아이들을 뒤집힌 배 안에 또 가둬 둔거에요. 안되겠구나....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야겠다 생각했지. 그냥 나오라고 할 수 없으니까, 아이들에게 집이라도 지어 줘서 그 속에서 살게 해야겠다고....”
애초 6.6제곱미터 정도로 계획된 성당은 최봉수 대목장의 제안으로 약 15제곱미터가 됐다. 전시물이나 미니어처 수준에 그쳐서는 쓸모가 없으니 최소한 성당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실제로 기도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지어질 다른 아이들을 위한 집도 마찬가지다. 최 목장은 성공회 신자다.
최 대목장은 앞으로 꿈마을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확실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제대로 되려면 일부 시민들이 노력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가족, 안산시, 정부가 조직적으로 또 법제를 통해 협력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꿈마을 프로젝트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도 말했다.최봉수 대목장은 이 일에 에피소드가 많다면서 하나를 들려줬다. 처음 자재를 실어 나를 때, 예정됐던 화물차가 오지 못하고 다른 화물차를 급히 구했는데, 그 기사가 우연찮게도 ‘거위의 꿈’을 불렀던 이보미 양의 이모부였다는 것.
최 대목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언제까지 그들의 선의와 희생만으로 이어갈 수 없다면서, “사실상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와 같은 이들만 나설 수는 없다”고 정부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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