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꿈마을 첫번째 집

세월호참사 200일 째인 11월 1일. 이날은 마침 모든 성인들의 날이기도 했다.

안산 선부동본당 신자로 예비신학생이었던 박성호 학생의 꿈을 위한 ‘성호의 성당’은 아직 채 완성되지 못했지만,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은 200일 추모식을 맞아 이 작은 오두막의 “축성식”을 하기로 했다.

▲ 11월 1일 오후 12시 30분 안산 화랑유원지 분향소 앞에서 선부동성당 주임 인진교 신부의 주례로 성호의 성당 축성식이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이날, 선부동성당 인진교 신부를 비롯한 사제 4명은 박성호 학생의 가족, 신자와 시민 등 6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안산 화랑유원지 세월호 합동 분향소 앞 주차장 한 켠에 있는 ‘성호의 성당’을 축복했다.

이 ‘성호의 성당’은 앞으로 박성호 학생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도하는 집’이 될 예정이다.

▲ 축성식을 마친 뒤, 안에서 연도를 바치는 선부동성당 신자들. ⓒ정현진 기자
선부동성당 소공동체위원장 신성범 씨는 “신앙도 봉사도 열심히 했던 예쁜 아이”로 박성호 학생을 기억했다. 그는 1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성호가 직접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가 생각하고 꿈꿨던 일들이 이 공간을 통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멀리 전북 익산에서 와 가족들과 함께 참석한 김소리 씨(안젤라)는 “성당도 아름답고, 이 성당을 위해 마음을 모은 모든 이들이 아름답다”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소리 씨는 손수 준비해 온 꽃을 성당 안 성모상 앞에 봉헌하면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축성식에라도 참석하면 마음이 조금 나을 것 같아서 왔다. 이 공간을 마련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성호형은 게임도 잘 했어요”
“성호는 착하고, 똑똑하고, 잘 생기고...또 먹기도 많이 먹었고요”

▲ 의정부교구 염동국 신부가 직접 만들어 기증한 청동 성모상. 작품 제목은 '성모 마리아, 아기를 안고 들로 나서시다' ⓒ정현진 기자
이날 축성식에는 박성호 군과 성당생활을 함께 했던 선후배, 친구들도 나왔다. 박 군에 대한 기억을 묻자 쑥스러워 피하던 학생들은 어느 순간 너도 나도 자신들이 알던 박성호 군에 대해 자랑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당 안에 모여 복사복을 입은 박성호 군의 사진을 스마트폰에 띄워두고 연도를 바쳤다. 한 친구는 연도를 마치고는 화면에 있는 친구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호와 함께 성당 활동을 했던 심기윤 군은 작년 예비신학생 피정 때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게 “꼭 사제가 되자”고 성호와 약속하기도 했다면서, “이렇게 성당이 지어지는 것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심 군은 친구를 추억하면서 “항상 깨어 있고,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대하고 똑똑했던 친구였다”면서 “성호와 했던 약속을 지켜 꼭 사제가 되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항상 성호를 기억하고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 '성호의 성당' 외부. 마무리를 위해서는 일주일여 시간이 필요하다. ⓒ정현진 기자
약 15제곱미터 규모에 나무로 지은 ‘성호의 성당’은 서촌갤러리 대표 장영승 씨가 제안한 ‘세월호 꿈마을 프로젝트’의 첫 열매이기도 하다.

장영승 대표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이 프로젝트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안타까운 꿈을 실현해 주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점점 잊혀 가는 세월호참사와 진상규명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계획은 앞으로 안산 화랑유원지 분향소 앞 4만여 제곱미터 주차 공간에 세월희 희생자 304명의 삶과 꿈이 담긴 집들을 세우는 것이다. 이번 ‘성호의 성당’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지어졌듯 그 내부 또한 여러 사람의 정성으로 채워졌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신주욱 작가, 성모상은 의정부교구 염동국 신부가 작품을 기증했다. 앞으로 종탑에 달릴 종도 이미 기증받았다.

성당이 건축된 지난 3주 간,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던 것은 봉사와 재능기부에 나섰던 목수들이다. 하루 2-3명에서 많게는 7-8명까지 참여한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달려오는 것은 물론 전주, 진천, 제주에서까지 생업을 포기하고 자비를 들여가며 봉사하고 있다.

유병덕 목수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너무나 큰 사건이고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는데도 진상규명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이 정말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미안한 마음만 갖고 있던 참에 기회가 되어 참여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여건이 보다 충분했으면 더 좋은 성당을 지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 축성식 바로 직전, 성당 꼭대기에 나무 십자가가 올려졌다. 동료가 만들어 올린 십자가를 설치하는 최봉수 대목장. ⓒ정현진 기자
잊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의 꿈이 담긴 집을 지어주자는 꿈마을 프로젝트는 그 시작이 순탄치는 않았다. 또 많은 이들이 마음을 내놓은 덕분에 진행되고 있지만 봉사자들의 숙식 문제, 비용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호의 성당’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최봉수 대목장의 결심이 있었다.

“처음엔 이 계획에 대해 거의 호응이 없었다더라고요. 작업실, 예산, 인력.... 뭐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중에 폐목재라도 구한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럼 내 목재 버리지 뭐’라고 생각하고 가지고 있던 나무를 실어 날랐죠. 그것만 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할 줄 알았지....(웃음) 그런데 막상 분향소에 와서 보니, 마음이 달라졌어요. 저 분향소 모양이 옆에서 보면 영락없이 뒤집힌 배 모양이더라고. 아이들을 뒤집힌 배 안에 또 가둬 둔거에요. 안되겠구나....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야겠다 생각했지. 그냥 나오라고 할 수 없으니까, 아이들에게 집이라도 지어 줘서 그 속에서 살게 해야겠다고....”

애초 6.6제곱미터 정도로 계획된 성당은 최봉수 대목장의 제안으로 약 15제곱미터가 됐다. 전시물이나 미니어처 수준에 그쳐서는 쓸모가 없으니 최소한 성당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실제로 기도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지어질 다른 아이들을 위한 집도 마찬가지다. 최 목장은 성공회 신자다.

▲ 성당 내부. ⓒ정현진 기자
최 대목장은 앞으로 꿈마을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확실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제대로 되려면 일부 시민들이 노력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가족, 안산시, 정부가 조직적으로 또 법제를 통해 협력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꿈마을 프로젝트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최봉수 대목장은 이 일에 에피소드가 많다면서 하나를 들려줬다. 처음 자재를 실어 나를 때, 예정됐던 화물차가 오지 못하고 다른 화물차를 급히 구했는데, 그 기사가 우연찮게도 ‘거위의 꿈’을 불렀던 이보미 양의 이모부였다는 것.

최 대목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언제까지 그들의 선의와 희생만으로 이어갈 수 없다면서, “사실상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와 같은 이들만 나설 수는 없다”고 정부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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