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며칠 전 어느 분이 미사 때 치는 종에 일정한 기준, 즉 크기나 재질에 관한 뭔가가 있는지를 물어오셨습니다. 간단히 해 드린 답은 종의 종류나 크기, 재질 등에 기준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종을 치는 이유를 알려 드렸지요.

미사 때는 보통, 빵과 포도주를 축성할 때 종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때를 제외하고 종을 치는 경우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와 부활 성야 미사 때입니다. 두 경우에 대영광송 도입부에서 사제가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이라고 노래하고 나면 몇 초 간 종을 울립니다.

예식서에 따르면, 성목요일에는 사제의 대영광송 선창 후, 종을 서른 세 번 치고, 부활 성야 미사 때에는 30초 간 친다고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의 서른 세번은 예수님의 나이와 관계 있고, 부활 성야 미사의 종소리는 부활의 환희를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성당에서는 종종 영성체송을 합송하기 직전에 종을 울리기도 하는데 그건 일종의 취향입니다. 전례에 장식적으로 추가된 것이지요. 함께 영성체송을 바치자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모든 성당이 합의하고 있는, 미사 전례 중 종치는 때는 성변화 순간입니다. 빵과 포도주에 성령의 힘을 청하고,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재현하고 나서 종을 칩니다. 이때의 종은 모두 눈을 뜨고 이 거룩한 순간에 집중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과 부활 성야 전례 때 대영광송 도입부의 종과 미사 중 성찬의 전례 때 치는 종의 차이가 있다면, 전자가 전례적 필수 요소인 반면 후자는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즉, 성찬의 전례 때 반드시 종을 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 미사에 사용하는 종.(사진 출처=en.wikipedia.org)
종의 종류나 크기에는 특별한 기준이 없습니다. 소리가 거슬리지 않고, 사람들의 주의를 모을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맑게 울리는 것이 무난하겠습니다. 이 거룩한 순간에 집중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미사 중에 종을 치는 근본 이유입니다.

과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미사 전례를 보면(오래된 영화를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사제가 벽에 붙어 있는 제단을 향해 서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사제는 라틴어 미사 경본을 외우고 있는 복사와 주로 미사 대본을 주거니 받거니 했고, 신자들은 제대를 거의 쳐다보지 않은 채 각자 미사 전례서를 바라보며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사제가 큰 소리를 내어 미사 예식서에 나와 있는 경문을 읽었고, 나머지 시간은 사제 혼자서 벽 보고 중얼중얼 하는 상황인지라 회중들은 그냥 조용히 전례서를 보거나 눈을 감은 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축성된 빵과 포도주, 즉 성체와 성혈이 들어 올려지는 순간에 회중이 제단을 향하여 바라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종소리가 안 나면 회중들은 계속 책을 들여다보든지 조용히 묵상을 하든지, 평화로이 수면을 취하든지 하고 있을 테니까요. 제가 어릴 때, 복사를 서던 어느 새벽 미사 도중에, 신부님이 할머니 한 분께 말씀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묵주기도는 미사 마친 뒤에 바치시라고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그 할머니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훨씬 전부터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이셨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전례에 따르면 미사 중에 사제와 회중이 거의 소통을 하지 않았기에 신자들은 제단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 시간에 묵주기도를 드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쳐 전례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대가 신자들을 향해 돌아섰고, 사제도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가 진행되는 요즘에, 미사 참례를 하러 와서 미사는 사제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앉아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눈을 감지 않는다면, 제대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종을 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드는 것을 보고, 함께 깊은 경의를 표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능하면 종을 쳐 주는 게 좋은 점은 미사에 와서 조용히 자기 세계에 빠져 계신 분들, 종종 멍하게 계신 분들에게 하느님께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미사 중에 대부분의 시간을 눈을 감고 있는 분이 주변에 계시면, 신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새로운 전례의 의도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종소리가 나면, 설령 종소리가 안 난다고 하더라도 그 즈음에는 눈을 뜨고 성체와 성혈을 확인하시는 겁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 고백하며, 주님의 현존에 동참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원(경기도 가평 소재) 운영 실무
서강대 '영성수련'  과목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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