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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과 설교는 다른 것이라구요?

기사승인 2014.11.19  11: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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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연중시기를 마감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한 주간 앞둔 주일을 한국교회에서는 평신도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본당 신자 중에서 한 분이 미사 중에 강론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강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최 이게 뭔 말인지.... 강론이 아니면 무엇인지? 하며 이곳저곳을 뒤져 봤더니 용어상으로는 ‘강론’(Homily)과 ‘설교’(Sermon)가 구분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단어가 다르니 당연히 구분되는 것이지만 어원적으로는 둘 모두 “누구와 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의식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면 섞어서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하겠습니다.

   
▲ 지난 3월 저녁 전주 풍남문 광장의 시국미사에서 강론하는 문규현 신부 ⓒ정현진 기자

한국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설교라는 낱말보다 강론이란 말을 더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제가 그렇게 많이 사용하니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더 자주 사용하시나요?) 실제로 가톨릭대사전을 찾아보면 설교와 강론을 동의어 취급하고 있습니다만, 요즘의 느낌으로는 그래도 어쩐지 설교는 옛말이거나 개신교 쪽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로마 미사 전례에 관한 일반 입문”(General Introduction of the Roman Missal, GIRM) 제66항(혹은 교회법전 767조 참조)에 명시되어 있는 지침에는, 일상적으로 강론은 미사 집전 사제가 해야 하며, 때때로 공동 집전 사제, 상황에 따라서 부제에게 위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신도에게는 전혀 위임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그 이유는 분명, 강론의 목적이 말씀의 전례에서 읽은 성경을 해설하는 데 있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미사 중에 사제 혹은 부제만이 복음을 낭독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복음을 선포하고 그것을 회중 앞에서 해설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이가 하는 것이 강론이 되는 것입니다.

강론이란 말이 설교와 구분되어 교회 안에서 쓰인 것은 2세기말 오리게네스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그에게 강론은 성경 말씀을 설명하고 영적 차원으로 더 발전시키는 해설로서 형식적으로 기승전결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주일미사와 축일의 강론은 아주 중대한 이유가 없다면 생략할 수 없습니다. 많은 신자가 모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평일 미사의 강론은 생략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하도록 권고받습니다. 특히 대림과 사순기간의 평일에는 더욱 더 말입니다. 이 기간의 평일 미사에는 보통 다른 시기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참석하기 때문에 회중들이 말씀과 그 해설을 들을 수 있게 하라는 교회의 배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론을 마치면 잠시 침묵 안에서 말씀과 강론의 내용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미사 전례 지침입니다.

확인한 것과 같이 강론은 철저히 미사 전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낱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법전에는, “강론은 설교의 여러 형식 중에서 탁월한 것으로 전례의 한 부분”(제 767조 1항)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설교는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것이고, 설교란 말도 그만큼 폭넓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성경 말씀 해설이 아니라 좀 더 폭넓은 주제들, 즉 도덕적인 가르침,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삶에서 얻게 된 깨달음 등 다양한 것이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신 것을 강론이 아니라 설교라고 한 것을 보면 설교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아실 것입니다.

결국 강론에 부여된 규정에 의하면 평신도 주일에 평신도가 하게 된 “강론”은 엄밀히 강론이 아니라 설교(혹은 가르침)가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송년미사에서 강론하는 서울대교구 박동호 신부.ⓒ지금여기 자료사진

이번 속풀이를 접하시면서 기분이 상하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이런 거 구분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선배 신부 한 분이 그 단어들을 구분하시는 바람에 검토해 본 것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조심스레 청합니다. 그분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말씀하시며 게다가 결정적으로 목소리가 크신지라 그 근거를 알려 달라했더니 당신은 신학생 때 수업 시간 중에 들었을 뿐이니 직접 찾아보라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자료를 찾아보고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이런 규정에 의한 것이라면)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강론을 안 하셨다는 점. 설교는 많이 하셨지요.

어느 주교가 어떤 게으른 신부의 본당에 사목 방문을 가서 교구 활성화를 위해 참고하려니 건의할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했더니, 게으른 신부 말이, “강론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였답니다. 그래서 주교는 그런 일은 자기도 해결 못 해 주니 다른 제안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고해성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살짝 열이 오르는 걸 느끼면서 주교는, 뭐 좀 실현 가능한 이야기를 해 보라며 다른 의견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사제의 세 번째 바람은 주교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답니다.

사실 거의 날마다 해야 하는 강론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신자분이 성당에서 더 자주 설교하시면, 미사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한 명인 사제는 가끔만 강론하고, 여러 신자들은 날마다 설교를 통해 돌아가면서 다양한 주제들과 삶을 나누게 될 테니 말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원(경기도 가평 소재) 운영 실무
서강대 '영성수련'  과목 강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박종인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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