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광장에 3미터 높이 세월호 십자가 세워

“비극의 팽목항에 세워진 이 십자가에 강복하시어,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들마다 위로의 기쁨을 얻게 하시고, 비극을 잊지 않겠다는 기억의 정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싸우겠다는 정의의 기력이 꺾이지 않도록 해 주소서.”

팽목항 광장에 세월호참사와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십자가상이 세워졌다.

8월 3일 오후 팽목항 광장에서 설치미술가 최병수 작가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함께 제작한 팽목항 십자가상 축성식과 봉헌 미사가 열렸다. 이날 축성식에는 최병수 작가, 세월호 유가족,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등 50여 명이 참석해, 세월호참사 진상 규명, 희생자들의 부활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 십자가상이 세워진 곳은 희생자들이 바로 뒤 다리를 통해 건너와 마지막으로 가족을 만난 장소다. 십자가상 앞의 둥근 알모양 돌은 '부활'을 상징한다. ⓒ정현진 기자

최병수 작가가 만든 3미터 높이의 십자가상과 조형물은 세월호참사가 이 시대 또 다른 십자가 사건임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제작됐으며, 참사 당시 희생자들의 주검이 바다 속에서 도착해 가족과 만난 곳에 세워졌다. 십자가상 제작을 위해 사제단이 ‘빛두레’ 소식지를 통해 진행한 모금에 40여 명이 참여해 약 1000만 원이 모금됐다.

그가 세월호참사와 희생자들을 상징화한 십자가상은 배와 노란 리본 등 세월호 상징물을 담고 있으며, 6개의 못구멍으로 세월호참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결했다.

그는 십자가상의 큰 구멍 3개는 2000년 전 예수가 못박힌 자국이며, 작은 구멍 3개는 2014년 4월 16일의 못자국이라면서, “이는 세월호참사로 예수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최 작가는 세월호참사를 접하고 1년이 지나서야 팽목항을 찾았을 때, 가져온 작은 십자가 작품을 본 전종훈 신부가 팽목항에 십자가상을 세웠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면서, “비단 십자가상을 세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 공간 전체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부활의 광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최병수 작가는 환경문화상 환경문화예술부문 대상,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민족예술상 개인상 등을 받았으며,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차세대 전투기 선정 반대’, ‘매향리 미군 전투기 훈련장 철거’, ‘북한산 터널 건립 반대’, ‘원자력 반대’, ‘세월호 사건’ 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축성식에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도 참석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체칠리아)는 “시대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고 살아가는 길, 예수에 가까이 가는 길을 밝혀주고, 그리스도의 진실과 힘이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희망”이라면서, “그동안 깨달은 것은 하느님이 사람을 통해 일하려 하신다는 것과, 우리의 싸움은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해 사람이 필요하므로 이 뜻에 동참하는 여러분들이 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김웅기 군의 어머니 윤옥희 씨도 “웅기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여러분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면서,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 가족들이 가장 많이 반성한 것이 그동안 세상일에 무관심했던 우리 자신이었다. 신앙인으로서도 반성한다. 웅기가 보여 준 마지막 그 사랑대로 열심히 살겠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오준영 군의 어머니 임영애 씨(아가타)는 십자가상이 세워진 곳이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장소라면서, “이 십자가 자리에서 다시 아이에 대한 미안함, 함께 해 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새긴다.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통곡하듯 울고, 부활의 십자가 앞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시연 양의 어머니 윤경희 씨도 아이를 기다리며 낮에는 울고, 밤에는 기자, 경찰과 싸우던 1년 전이 생각난다면서, “500일이 되도록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이 십자가 길을 따라 모두 돌아오기를 바란다. 기도도 정말 중요하지만,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 끝까지 행동으로 함께 해달라”고 말했다.

“십자가는 실체는 실패가 아닌 부활이며, 승리의 근거, 희망의 보증입니다. 십자가 봉헌이 여전히 슬픔에 빠져 있을 부모님과 유가족들에게는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억장 무너지는 슬픔을 확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또 다른 얼굴이 부활이라는 점에서 희망을 얻는 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성식에 앞선 미사 강론 에서 김인국 신부(청주교구)는 1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한국 교회를 향해 작아지고, 가난해지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라고 당부한 말씀이 무색하도록 우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고 성찰 했다.

김 신부는 세월호참사가 오늘의 십자가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짐이 너무 무거워지기에 애써 강조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런 이유로 팽목항에 십자가를 세우겠다는 제안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착하고 깨끗하였으므로 가장 악하고 더러운 죄악의 먹잇감이 된 사건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었다면, 세월호 희생자들 역시 십자가의 주인공들임에 틀림없다”면서, “애써 피하고 싶던 십자가의 의미를 팽목항에 세운 십자가상을 통해 우리가 다시 깨우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최병수 작가는 이곳에 십자가상을 놓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일대 공간을 시민들이 참여해 만드는 '부활 광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정현진 기자

“진실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3개월째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전종훈 신부(서울대교구)도 말을 이었다. 그는 “팽목항을 찾는 이들이 없어 적막만 감돌고 있었지만, 오늘 십자가와 함께 팽목항을 찾은 사람들을 보니, 십자가의 믿음처럼 저버릴 수 없는 희망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팽목항을 지키는 일의 의미를 밝혔다.

전종훈 신부는 팽목항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용산참사로부터 현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팽목항은 저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304명의 피울음이 맴도는 현장”이라면서, “현장이 무너지고, 현장의 흔적이 사라지면 이미 세월호의 목소리는 메아리마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축성식에 참석한 이상환 씨(스테파노, 수원교구 세류동 본당)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오늘 십자가를 보면서, 모쪼록 모든 이들이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기를, 팽목항에 더 많은 이들이 와서 희생자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면서, “나 자신부터 시간이 되는 대로 자주 이곳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팽목항 분향소 앞에는 광주대교구가 세운 나무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으며, 팽목항을 찾는 신자들은 이 14처를 돌며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현재 팽목항 성당에서는 광주대교구 주관으로 매주 수요일에 미사를 봉헌하며, 휴양기간 동안 지난 4월부터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전종훈 신부도 매일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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