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스타인펄스

(편집자 주) 오는 9월 23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교황뿐 아니라 가톨릭과 관련한 문제에 평소보다 높은 관심이 일고 있다. 피터 스타인펄스는 9월 11일 <워싱턴포스트>에 “가톨릭교회가 피임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는 글을 싣고, 이 명백한 현실을 외면하고서는 가톨릭교회의 신뢰성이 근본적으로 회복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신도가 편집하는 가톨릭매체 <커먼윌>의 편집장을 지냈는데, “표류하는 사람들: 위기에 빠진 미국 가톨릭”의 저자이며 <뉴욕타임스> “신앙”란 칼럼을 20년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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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워싱턴에 도착할 때 그는 열광적 환영을 받을 것이다. 미국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그는 아주 인기가 높다. 87퍼센트가 그에 긍정적 의견을 갖고 있으며, 그는 미국 교회가 영적 빈혈증을 극복할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흥분만으로는 가톨릭 신자생활의 가장 깊은 상처 가운데 하나를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미국 가톨릭뿐 아니라 전 세계 신자의 문제다. 이 문제는 지난 몇 년 새 큰 관심을 받아 온 사제들의 성추문 문제는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성애와 연관이 있다. 피임 금지 만큼이나 가톨릭교회를 크게 분열시킨 것은 없다.

미국 신자의 약 80퍼센트는, 아주 독실한 신자 포함, 피임 금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다수는 피임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도 무시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성생활을 하는 미국 가톨릭 여성의 68퍼센트가 산아조절, 불임 또는 자궁내 피임장치(IUD)를 써 왔다.

▲ 콘돔.(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아마 이렇게 많은 가톨릭 신자가 피임 단죄를 거부하는 사실을 보면서 교회 지도자들은 이 문제가 미해결이라고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 피임보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 없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더 포용적인 교회가 되자고 몇 번이나 호소해 왔지만, 피임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재고하는 데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가 된다는 것이 “토끼처럼” 애를 많이 낳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니라고 농담하기도 했지만, 그는 산아조절을 금지한 교회 입장을 재확인했던 1968년의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를 찬양해 왔다. 지난해 10월에 열렸던 가정에 관한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 임시총회에 참석한 대의원 주교들은 재혼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는 문제와 동성애 관계의 다른 면을 인정하는 문제 등으로 세계 언론의 눈길을 크게 끌었다. 하지만 피임에 관한 토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들은 “인간 생명”의 메시지를 교회가 더 잘 전파하도록 촉구하는 데 그쳤다. 달리 말해서, 교회의 피임 금지를 수많은 신자들이 거부하고 있는 현실을 그저 소통의 문제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식 가르침과 현실 사이의 깊고도 뚜렷한 갭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가톨릭적 열정과 일치가 모든 차원에서 다 약해지고 있는데 이를 정면으로 인정하고 다룰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를 날마다 겪으면서, 가톨릭 신자들은 혼인과 낙태 등 교회의 다른 가르침도 존중하지 않게 된다. 교회가 자신의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기를 원한다면, 교회는 이 속 썩이는 피임 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가톨릭의 성 규범은 구약과 사도들의 권고, 그리고 스토아 철학과 같은 고전 교리들이 어우러져 이뤄진 것인데, 스토아 철학은 정열에 회의를 품고 재생산을 직접 목표로 하지 않는 성행위를 “자연(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단죄하였다. 하지만, 이른바 유효한 혼인의 조건을 규정하거나 간통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달리 피임은 20세기까지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는데, 20세기에는 믿을 만한 (피임) 수단들이 민간 (피임)요법들을 대신해 등장하였다. 그 이전까지는 산아조절이라는 것은 성매매나 불법적 성관계와 연관돼 생각되었으며, 사실상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가 비난하였다.

성공회가 1930년대에 이 틀을 깨트렸고, 그 뒤 많은 개신교 종파가 이를 뒤따랐을 때, 비오 9세 교황은 피임을 단죄하는 단호한 회칙으로 맞섰다. 그리고 곧바로 산아조절에 대한 반대는 가톨릭임을 표시하는 일종의 지표가 되었다.

그럼에도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가톨릭의 반대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톨릭을 변모시켰고, 신학자들은 혼인의 가치로 자녀 재생산과 더불어 정서적, 유대적 측면도 강조하고 있었다. 1960년에 피임약이 등장하자 일부 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성 도덕에 관한 어떠한 일반 원칙들을 끌어낼 수 있더라도 이는 산아조절의 용도와 특정 수단에 관한 구체적 판단까지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신자들도 이에 동의하는 듯 보였다. 1965년이 되면, 미국 가톨릭인의 61퍼센트가 교회가 결국은 피임을 허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또한 요한 23세 교황이 1963년에 설립하고, 그의 후임자인 바오로 6세가 재편한 교황청 인구, 가정과 출산 연구위원회의 생각이기도 했다. 1966년 6월말에는 대부분은 추기경과 주교들, 그리고 일부 신학자와 과학자, 그리고 평신도로 이뤄진 이 위원회의 압도적 다수는 교회는 더 이상 피임을 “본질적으로 악”이라고 단죄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내렸다. 이 위원회가 (교황에게 올린) 건의안이 결국은 언론에 흘러갔다.

▲ 자궁내 피임장치(IUD).(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그럼에도, 교황은 2년간 침묵했다. 그러는 동안, 학자인 로버트 맥클로리가 썼듯이, “혼인한 짝들은 자신들의 혼인 생활을 정지시켜 놓고 싶지 않았으므로, 피임의 도덕성에 관해 실제적 결정들을 내렸으며, 사제나 주교의 승인을 받는 경우가 갈수록 늘었다.” 마침내, 1968년 7월, 바오로 6세는 이 위원회의 건의를 기각하였다. 전 세계의 주교들은 이에 따랐지만 곳곳에서 헛기침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600명이 넘는 가톨릭 학자들이 서명한 한 공개 항의서는 부부들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 인공 산아조절법을 쓰기로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의 보수적 고위성직자와 신학자들은 바오로 6세에게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이면 교황 권위가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는데, 오히려 그가 그 건의를 기각하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많은 사회학자들, 신학자들, 사목자들, 그리고 주교들이 성에 관한 다른 교회 가르침들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신뢰, 그리고 심지어 교회 권위 자체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것은 이 1968년의 ‘인간 생명’ 회칙에서부터라고 봐 왔다. 일부 연구자들은 교회 참석률, 재정 기부, 그리고 아들들이 사제가 되는 것을 부모가 지지하는 것이 줄어든 것도 이 회칙에 대한 좌절감이 연관돼 있다고 본다.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베르나르트 헤링은 “ 그 어떠한 교황 가르침도 ‘인간 생명’ 회칙만큼이나 교회 안에 커다란 지진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고 썼다. 지금은 혼전 성관계, 동성 결합, 그리고 이혼에 관해 많은 신자들이 교회 가르침을 존중하지 않는다. 최근에 “퓨 리서치 센터”가 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신자의 70퍼센트는 동성 짝들이 함께 사는 것을 받아들일 만하다고 믿으며, 86퍼센트는 이성애 짝들끼리 혼전 동거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동성애 행위나 혼인 무효 없는 재혼은 죄라고 보는 사람은 절반이 되지 않았다.

한편, 소수이지만 목소리가 큰 보수주의 집단에서는 피임에 반대하는지 여부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와 “이의자”를 구별하는 시험 지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전의 두 교황들-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는 새 주교들을 임명할 때 다른 자격조건들보다 이 사항을 아주 중시한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피임 문제는 가톨릭 신앙생활 전반을 마비시키는 긴장과 의심, 상이함과 기능장애라는 약을 주입해왔다.

그래서 미국의 가톨릭 교계제도는 오랫동안 대중에게는 “보건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오다가 (오바마 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은 반대하는 정치운동에 붙들리고 말았다. (피임과 합법 낙태도 보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편집자 주) 아프리카의 에이즈 피해자들을 돕는 몇 가지 큰 가톨릭 사업들을 로마의 교조적인 반 콘돔 입장에서는 의혹의 눈으로 보았다. 필리핀과 같은 곳의 가난한 가정을 돕는 운동도 유용한 산아조절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정치운동의 반대에 부딪혔다. (유엔 등의 구호 사업에는 콘돔이 포함되어 있다- 편집자 주)

오는 10월에, 가톨릭은 또 다시 시노드를 열어 이 문제를 다룰 기회를 갖게 되는데, 이번에는 주교들의 성향이 좀 다르다. 시노드 참석자들의 최종보고서를 교황이 반드시 받아들일 의무는 없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교부들의 조언을 아주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시사해 왔다.

이번에, 시노드 대표들은 1968년부터 교회를 앓게 만들어 온 이 문제를 다루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선, 이 시노드는 산아조절 금지를 신자들이 대대적으로 거부하는 현실을 그저 교회가 좀 더 효율적으로 가르치면 해결될 문제로 보기를 그만두고, 대신에 교회가 더 배워야 할 문제로 대해야 한다.

둘째로, 시노드는 기혼자들이 피임 도구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추상적으로 만들어 “삶에 대한 개방성”이나 “온전히” 사랑하기, 또는 ‘인간 생명’의 메시지처럼 격상된 코드 언어로 헛되이 에둘러 표현하기를 그만둬야 한다. 대신에, 시노드는 그 회칙 안의 몇 가지 문장들에 지난 수십 년간의 분열 원인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문장들은 반 생명적 가치관을 다루지도 않고 이기적인 행동유형을 다루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성교의 본질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판단을 하는 문장들이다: 혼인한 짝들이 하는 성교에 해당하는 어떠한 경우든, 수태를 막으려 행하는 모든 것은 그 여건이나 부부의 의사 또는 그러한 이유들의 심각성에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악”(intrinsically wrong)이다. 이 무조건적인 판단으로 이끌고 있는 도덕적 추론은 유효한가? 달리 말해, 혼인의 사랑이나 성 혁명, 또는 인류가 출산에 관해 새로 발견한 힘을 오용할 잠재성에 대한 ‘인간 생명’의 다른 통찰이 문제가 아니다. 또한 “자연 가족계획”(여성의 불임 기간에만 성교하는 피임법)의 유효성이나 유용성에 대한 논란도 문제가 아니다. 인구 과잉이나 인구 부족, 또는 다른 문화권에 서구의 신식민주의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에 관한 것도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이치가 있는 관심사들이지만, 바오로 6세가 내린 파멸적인 결론을 뒷받침하거나 반드시 그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이번 시노드는 3주에 걸쳐 수많은 다른 주제들을 다뤄야 하므로 1968년부터 곪아터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분쟁의 핵심을 명확한 용어들로 정리하는 외에도 – 그리고 아마도 양측이 지닌 윤리적 진실성을 인정하면서- 이번 시노드는 혼인과 성애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새로이 검토할 것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생명’ 반포 50주년이 되는 오는 2018년을 맞아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먹는 피임약.(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여기에는 당시 피임약이 범람하고 성 혁명이 진행되는 가운데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 교리적 권위(가 약해진다는)에 대한 걱정이 크게 일었던 것이 결합되었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그 회칙을 다시 읽어 보는 것이 포함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그 자체는 종교 자유와 인권 보호를 천명함으로써 프랑스혁명(1789)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19세기 교황들이 발표한 여러 회칙 안의 가르침들을 공식적으로 뒤집었던 것이다. 19세기 교황들의 가르침에 대해 성직자와 평신도를 가리지 않고 많은 가톨릭 사상가와 지도자는 그 회칙에 담긴 원칙들에 의문를 던지고 사실상 무시했던 바, 지금 피임 문제와 비슷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면 어떨까. 이번 시노드는 그에게 건의사항들을 제출하게 된다. 어떤 이는 그가 피임이란 부유한 서구가 기술을 통해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보여 주는 한 증상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그가 원칙상으로는 피임을 단죄하면서도 실제로는 가난한 이들과 힘겨움 때문에 피임이 필요한 이들에게 잣대를 구부리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논리) 일관성을 너무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 원칙을 설교하면서 많은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 어떻게 교회의 신뢰성 갭을 메꾸거나 교회의 내부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지를 보기는 어렵다. 그런 해결책은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볼 가톨릭 신자들이 아주 많을 것 같다.

사실, 이번 시노드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관해 가장 연관이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은 피임을 전혀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지난해 시노드 임시총회 개막식에서 대의원 주교들에게 그가 한 요구였다. “정직하게 말하기”. 그는 이것이 대의원들의 기본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대의원들은 “아무런 격식 차린 에두름이나 주저 없이” 자신들의 마음을 그대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회가 현안인 여러 성 문제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려면, 그 첫걸음은 지도자들이 피임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사 원문: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why-the-catholic-church-should-talk-about-condoms/2015/09/11/94e45458-5313-11e5-933e-7d06c647a395_sto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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