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며칠 전, 저녁에 사람들과 어울려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잘 아는 신자분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후배 부친께서 동네 병원에 계시는데 상태가 안 좋아져서 병자성사를 청한다는 사연이었습니다. 문제는 후배 부친께서 오래동안 냉담을 한 터라 교구 행정구역상의 소속 본당과는 요원한 관계이고, 그 자녀들도 성당에 다니는 둥 마는 둥하여 선뜻 본당 신부님을 모시기가 어째 매우 어색하였나 봅니다. 그래서 환자분의 가족은 어찌할 줄 몰라 제 지인을 찾은 겁니다. 그리고 제 지인은 제게 어찌하면 좋을지를 상의하고 싶어 했던 것이고요.

그래서 제가 그 신자분께 전화를 통해 여쭤 본 것은, 그 병원에는 원목실이 있는지, 없다면 아무리 어색하다고 하지만 본당에 전화를 하였는지 여부. 그리고 얼마나 위급한 상태인지(상태에 따라 당장 모임을 박차고 뛰쳐나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병자성사에 필요한 제구 가방을 확보하고 나서 움직여야 했으니....) 였습니다.

▲ '마지막 전례', 더치스쿨.(1600)
병자성사를 청해야 할 경우에, 규모가 큰 병원이 아니라면 원목실을 기대하기는 어렵구요. 그렇다면 결국 본당 사무실에 연락하여 관할 본당 사제들이 병자 방문을 하도록 의뢰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가족들이 냉담을 했다고 해서 면목이 없다는 태도로만 일관했다가는 정작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드릴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 본당 사제가 아닌 친분 있는 다른 사제에게 병자성사를 부탁할 수 있는데, 굳이 낯설고 어색한 본당 사제를 모셔야 할까...? 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정말 급하다면 아무나 먼저 연락된 사제가 달려갈 일이지, 본당 사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라고 해도 그런 경우는 자칫하면, 결과적으로 본당의 사목활동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냉담 신자를 위한 병자성사를 통해 한 가족이 다시 교회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인데, 본당 사제가 아닌 다른 교구나 수도회 소속의 사제가 본당에 알리지도 않고 ‘선행’을 베풀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본당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신자를 그냥 가로채 버린 꼴이 되어 버리는 셈입니다.

병자성사의 은혜로 병자가 병상에서 일어나거나 혹은 마음의 평화를 찾고 가족과 화해하고 선종하는 걸 보고 가족들이 본당으로 돌아온다면, 아주 아름다운 해피엔딩이겠지만, 당장의 필요가 충족되어지고 본당과 연계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면 그 가족이 교회 공동체로 돌아올지는 매우 불확실해집니다.

그래서, 본당 사제가 성지 순례 등으로 부재 중이 아닌 이상 병자성사 요청에 대해 어찌할지를 본당 사제에게 알리고 상의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설령 매우 급박한 사정이라 해도 움직이는 사이에 전화로 통보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본당에 통보하는 사람은 병자의 가족들 중에 대표성을 띤 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저와 같이 본당 사제는 아니지만 병자성사를 줄 수 있는 사제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당에 알려 두는 것입니다. 그래야 혹시 병자가 낫든지 아니면 돌아가시는 일이 벌어져도 관할 본당이 후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본당이 모든 걸 통제하려 든다고 볼 수도 있으나, 긍정적으로 보면 적극적으로 담당 구역 안의 신자들을 돌보려는 적극적 태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간단히 정리하자면, 누군가 병자성사를 원할 때는 본당과 상의한 뒤, 병자를 알고 있는 사제가 병자를 방문하러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병자성사와는 달리 급히 세례를 줘야 할 일이 생길 때, “대세를 주는 방법”도 되새겨 보시면 좋겠습니다.

“개신교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하나요?”도 더불어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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