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꿈의 공장이 죽음의 공장, 희망이 없는 공장으로 변했음에도 노동자들은 기타를 만들고 공장을 돌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9년째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장영식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콜트악기와 콜텍 이런 회사는 모두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인데 강경 노조 때문에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의 이 말은 사실일까?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콜트악기와 콜텍이라는 두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들은 기타를 만들어 국내에 판매도 하고 해외로 수출도 하는 회사였다. 두 곳의 오너는 모두 박영호 대표이사였다.

2007년, 잘나가던 회사가 돌연 국내 공장의 폐업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인천 부평공장의 콜트악기 노동자 38명을 정리해고하기 시작하면서 충남 계룡시에 있던 콜텍 대전공장을 폐업하고 노동자 전원을 정리해고 했다. 2008년에는 부평공장을 폐업하고 남아 있던 노동자 9명을 해고했다.

부평공장 이동호 씨는 정리해고 철폐를 외치며 공장 앞마당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분신을 할 당시가 겨울이라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있었고,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재빨리 불을 끈 덕에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손에는 선명한 화상 자국과 산재사고로 몇 차례 손가락이 절단된 흔적이 남아 있다.

2007년 당시 두 곳의 회사는 전 세계 전자기타 시장의 점유율이 3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회사였다. 그런데 회사가 국내 공장을 폐업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회사는 지금의 이익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들은 수주물량을 해외 공장으로 몰아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일감이 없었던 국내 공장의 채산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마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필리핀 수빅만에 설립한 조선소로 일감을 몰아준 것과 똑같은 방법이었다.

2008년 동아일보가 노조의 장기 파업 때문에 부평공장이 문을 닫게 됐다는 식의 편파적인 왜곡보도를 내자 노조는 동아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동아일보의 보도가 허위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동아일보는 2011년 9월19일자로 “콜트악기 부평공장의 폐업은 노조의 파업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용자측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노조의 파업은 대부분 부분 파업이어서 회사 전체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라고 정정보도를 냈다. 콜트악기와 콜텍이 강경 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는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악의적 왜곡인 것이다.

콜트악기와 콜텍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싸움은 9년째로 현재 진행형이다. 10월 5일부터는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지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콜트악기 방종운 지회장은 이미 그가 돌아올 공장은 사라지고 없지만 무기한 단식 10일 차를 보내고 있다.

▲ 이동호 씨가 분신했던 인천 콜트악기 부평공장 마당에는 기타 그림과 "인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장영식

지금은 사라진 부평공장 마당앞 이동호 씨가 분신했던 자리에는 기타 그림과 함께 “인간”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인간을 파괴시키는 해고에 저항하며 인간으로 당당히 맞서고 싶었던 노동자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콜트악기와 콜텍 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에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한이 녹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은 서강대 이호중 교수의 2015년 10월 14일자 경향신문 ‘정동칼럼’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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