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라도회 정월기 신부

“사제는 헐벗은 사람,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 먹히는 사람”

제2의 그리스도로서 구유의 가난과 갈바리아의 죽음, 제 몸을 나눠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교구 사제들의 모임인 프라도회 한국지부가 한국 진출 40주년을 맞아 ‘자립 프라도회’로 승격됐다.

지난 5월 프라도회 국제 평의회의 결정으로 ‘관구’와 같은 자격을 갖추게 된 한국 프라도회는 11월 23일부터 25일까지 ‘프라도 40주년 기념행사 자립 선포식’, 새로운 책임자와 평의원을 선출하는 1차 자립 프라도회 총회를 열었다.

총회를 앞둔 22일, 프라도회 1세대로 30년간 활동해 왔고 한국 프라도회 대표신부를 맡았던 정월기 신부(서울대교구)를 만났다. 자립을 통해 모든 결정권을 갖고 활동에 나서게 될 프라도회가 각 교구 안에서 어떻게 청빈한 삶, 가난한 이들과의 동반 여정을 걸어갈 것인지 물었다.

▲ 한국 프라도회 대표 사제 정월기 신부. 정 신부는 한국 교구 사제들이 인사, 재정, 행정 보다는 사목 자체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현진 기자

청빈의 의무가 없지만, 특별히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선택한 이들은 프라도 사제들 개인의 삶이나 각자의 사목 현장 안에서 다양하게 가난함을 실현하려고 애써 왔다.

예를 들면, 초창기에는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정하거나, 개인 차량을 갖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또 노동자들과 동반하면서 그들이 스스로의 존엄함을 깨닫고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철거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본당 신자들과 함께 세입자들에게 집세를 올려 받지 않는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의 힘은 주로 복음 나눔과 복음 연구에서 비롯된다.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서 복음 나눔은 매월 모여 복음을 읽고, 나누고 각자의 사목 활동을 성찰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러는 가운데, 약하고 모자란 부분에는 도움을 받고, 서로의 사목 활동을 식별해 주며, 가난한 이들과 얼마나 동반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팀 회합과 1년에 2번 이뤄지는 양성모임에서는 이를테면, 본당에서 어떻게 하면 고해성사를 잘 줄 수 있을 것인가, 본당 봉사자들과 어떻게 동등한 관계를 맺고 협력할 것인가 등 사목현장의 구체적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해법을 찾는다.

스스로 선택한 사명에도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정월기 신부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 고민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살고, 특히 가난과 육화의 신비를 살고자 하지만, 사목을 하다 보면, 그 기준이 변하기도 하고, 물질에 대한 욕심,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목의 효율성과 같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온 지난 40년을 정월기 신부는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공과가 모두 있다면서, 한국 교회 안에서 프라도회가 그동안 해 온 것이 있다면, “회원들이 복음에 친숙해지고, 한국 교회가 사목적으로 깊이 참여할 수 있도록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은총', 에릭 엔스트롬.(1918)
정 신부는 교구 사제들의 주요한 관심사는 사목 자체보다는 사제 인사, 본당 재정과 행정업무에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으면서, “사제는 사목 동반자로서 평신도 리더를 양성하고 교우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사목에 깊이 참여하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 회원들이 그런 사목적 관심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에 반해 여전히 아쉬운 것은 “온전한 투신의 한계”다. 정 신부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프라도회 안에도 이것이 또 하나의 성소, 부르심이라는 이해가 부족하다면서, “일반화시켜 말하기 어렵지만, 얼마나 예수를 따라 사는가, 형제들 안에서 얼마나 책임감을 갖는가에 대해서는 성찰할 바가 많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목 현장 안에서 어떻게 해야 가난한 이들을 놓치지 않고 동반하며 협력할 수 있는가가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또 평신도들, 교회 안의 봉사자들이 그들 고유의 영성과 사명을 깨닫고 살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도 주요한 활동의 하나죠.”

이런 사명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소공동체운동이다. 특히 소공동체가 알려지기 전부터 본당에서 전달식 반모임을 지양하고 ‘대화식 반모임’을 시도했던 정월기 신부는 소공동체 연수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 신부는, 소공동체의 ‘소’는 가난하고 작은 사람들을 뜻하며, 소공동체운동의 지향은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설명하면서, 가난과 말씀이 중심인 프라도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소공동체를 통해 가난한 이들이 자기의 자리를 찾고 양성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소공동체를 통해 작은 이들까지 각자의 존엄과 역할을 찾고 양성되는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4개 헌장과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정월기 신부는 소공동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현재 소공동체운동은 한국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갖는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며,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을 밟고 있는 것이라면서, “말씀도, 기도할 줄도 모르고, 서로 대화하고 나눌 줄 모르는 교회의 모습이 거울처럼 반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서 이제야 복음에 눈을 뜨고, 신앙인으로서 자신을 보게 되고, 복음에 비추어 생각하기 시작한 상태일 뿐이며, 갈 길은 아직 멀다는 정 신부는, “20년의 시간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한꺼번에 이룰 수는 없다. 개인의 신앙에 머물러 이웃을 보지 못한다는 시각은 속단”이라며, “권위적이지 않고 소통하는 공동체를 체험해야 변할 수 있다. 지금은 함께 고민해야 할 단계이지, 안된다고 말할 때가 아니”라고 열린 태도를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정월기 신부에게 프라도회의 소명으로 본 한국 교회의 과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본당 신자들에게 권한과 기회를 주고, 끊임없이 격려해 줘야 합니다.”

정 신부는 본당 사목이 활성화되고, 가난한 이들과 동반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사제가 갖는 절대적 권한과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할 수 없으니 관리만 하게 된다면서, “평신도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나눠 주고 인정해 줘야 한다. 본당 안의 작은 이들이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그들의 행동을 감탄해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월기 신부는 “목자들은 끊임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누가 권위를 내세우려 하는지, 가난한 이들의 자리를 빼앗는지 식별해야 한다”면서, 본당 봉사자들을 동반자로 섬겨야 한다면서, 사목자들은 꽃이 아닌 누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