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어떤 신자 분이 상담을 청해 오셨습니다. 당신 아이들의 세례와 견진을 이끌어 주시고, 그리고 부군의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암울한 때에 장례미사를 치러 주신 한 사제가 환속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합니다.

이건 마치 당신 부군의 돌연사 때와 같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얼마 전 이 소식을 접하고 지금까지 슬픔과 답답함을 참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기억에 자리 잡고 계신 분인 만큼 상담을 청해 오신 자매님의 혼란과 아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인연으로 일 년에 적어도 두어 번은 연락하며 신앙과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사제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소식이 끊겼고, 수소문 끝에 그분이 환속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자매님이 겪고 있는 충격과 슬픔에 이어서, 어떤 연유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런 선택을 하게되었던 그 사제(아무리 성무가 정지되었다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사제입니다)의 고민과 곤경도 헤아려 보게 됐습니다.

▲ 사제서품식 중 사제단의 안수 장면. ⓒ지금여기 자료사진

이런 황망함을 느끼며 “저는 어찌해야 할까요?”하는 자매님의 질문에, 일단 이 사안으로 신앙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시라 조언을 했습니다. 환속을 선택한 그분도 어떤 어려운 상황이 있었을 테니 그분을 위해 기도해 드리라는 말도 덧붙여 드렸습니다.

사제도 허물 있는 존재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나약한 사람입니다. 완전한 인간이란 예수님이 보여 주신 인간형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신앙인으로서 그 모습을 따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사제가 구현해야 하는 기본적인 덕목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잣대로 부족한 개인을 평가하고 그 덕목들을 강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태도라 하겠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모습을 근거로 한 목자의 덕목이 있다고 해도 그 삶을 살고 말고는 결국 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실현시킬 수 없는 한계를 경험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그 신분을 내려놓는 모습은 오히려 자기 삶을 책임지려는 용기 있는 태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신자들로부터 진심어린 존경도 받지 못하면서 본당에서 기업 회장님처럼 군림하는 사목자를 상상해 본다면, 그리고 그 사제가 마치 지존처럼 본당을 들었다 놨다 한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환속을 간절히 염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자들에게 안타깝고 슬픈 것은 위안을 주던 목자가 자신의 신분을 포기할 경우에 생겨나겠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새롭고 고단한 삶을 시작해야 하는 그를 위해 짧은 기도라도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평소에 위안을 주던 품성이라면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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