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수도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수도회 입회를 망설이게 되는 여러 요인 중에 하나는 바로 '이별'일 것입니다. 이 이별은 군 입대를 위해 가족을 떠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 매우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막연함에 더 슬퍼집니다.

수도생활로 발을 들여 놓는다는 것은 분명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의 선승들이 출가를 통해 그동안 맺어 온 관계의 끈을 끊어 버리는 것과 비슷한 무엇인가가 있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생활에 대해 막연히 아시는 분들은 이런 '매정함'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들 정리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냐며 전혀 반대의 태도를 보이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관심을 좀 더 기울여 보면, 그런 관계 정리가 우리가 통념적으로 아는 것처럼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성격의 수도회가 있으며, 수도회의 행동양식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홈페이지)

이별의 정도로 표현할 때, 매우 강한 수준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끊어지는 경우는 봉쇄수도회에 입회하는 경우입니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도 그가 면회를 오지 않는 이상 외출 나올 일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서신 등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가족이나 지인들이 보고 싶으면 찾아오도록 초대할 수 있습니다. 저도 봉쇄 수녀원에 면회 가 본 적이 있는데, 세속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면회를 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요즘은 그 철창이 가족들에게 너무 강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책상 높이 정도의 벽만 남겨 두고 철창은 없앤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봉쇄수도회와는 달리 세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소위, 활동수도회의 생활 양식은 사람들과 관계를 정리하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지원기간, 청원기간과 수련기간을 거쳐서 서원을 하고 나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서로 시간을 맞출 수 있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바빠서 못 만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도생활 중 가장 엄격한 분위기를 경험하게 되는 기간이 수련기라 할 수 있습니다. 소속 수도회의 정신을 배우고 확실히 투신할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수련기간 동안 제 맘대로 판단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수련원을 방문한 손님에게 수련자 신분으로서 먼저 말을 거는 것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수도자로 양성받는 초기 기간인 만큼 유연한 사고를 하기보다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적 요청이 강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속세의 인연을 끊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랬었는데, 청빈, 정결, 순명 서원을 하고 떠났던 세상으로 돌아오니 슬슬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옛 기질이 되돌아오더군요. 변화가 있다면, 관계망에 사목과 관련된 사람들이 새롭게 들어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들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들어갑니다. 정이 들다 보니 다른 곳으로 떠나라는 명을 받으면 과연 나는 훌훌 털고 떠날 수 있을까를 종종 물어봅니다.

결국 떠날 때가 됐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우리는 정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독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머물고 싫으면 떠나는 식의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모두 아실 겁니다. 사명을 받고 파견된 이들이 현지의 사람들을 두고 떠날 리는 없으니까요.

늘 그 자리를 지키면서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려 하는 것이 수도자들이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 그들은 지금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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