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조주일 기획 2 - 의정부교구 박규식 신부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박규식 신부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본당으로 모금을 나가기 때문이다.

아는 선배, 동료 신부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허락을 받으면,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까지 모든 미사에 참여한다. 미사를 집전하거나 강론을 하고 그가 있는 페루의 소식을 들려준다. 신자들에게 2차 헌금을 요청한다. 학교에 운동장을 지으려면 8000만 원이 필요하다. 박 신부가 한국에 있는 한 달여간 모금해야 하는 돈이다.

박규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이다. 선교수도회에 속한 것도 아닌데, 저 멀리 남미에 있는 본당의 주임인 것이 의아하다.

▲ 박규식 신부는 페루에서 본당 주임을 맡고 있다. 미사하는 모습 ⓒ박규식 신부

교구소속 사제가 해외선교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선교회를 통해 지원사제가 되거나 또는 교구에서 교구로 사제를 요청한다. 박 신부는 페루 트루히요 대교구와 의정부교구가 계약을 해 가게 된 사례다. 계약은 5년마다 한 번씩 하는데, 박 신부는 벌써 7년째 페루에서 지내고 있다.

교구는 교구민을 위해 선교를 해야지 왜 저 멀리 나라 밖으로 귀한 사제를 보낼까?

박 신부는 “이제 한국교회도 베풀 수 있는 교회가 됐다”고 말한다. 한국교회 초창기에 파리외방선교회 등 여러 나라 교회에서 도움을 준 것처럼 한국교회도 이제는 베풀어야 하고, “베풀지 않으면 안에서 고인다”는 게 박 신부의 생각이다. 그리고 물질보다 사제가 현지에서 10년을 사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제를 지원한 쪽에서 받는 기쁨도 크다. 해외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사제에겐 특별한 기운이 돈다. 이런 열정과 에너지가 사제단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며, 본당도 새로운 기운을 받아 살아난다. 옆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던 문화미디어국 김성수 신부의 증언이다. “교구가 풍요로워진다.” (따로 만날 장소가 없어 박 신부의 동기인 김 신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교구의 사제가 해외선교에 더 적극적이 돼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선교회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교구는 사제가 늘었다. 박 신부도 사제품을 받았을 때 해외선교는 생각지 못했다. 그땐 이런 나눔을 미처 몰랐다. 그는 선배사제가 해외에 있으면 젊은 사제에게 기회가 좋다고 덧붙였다. 트루히요 대교구에는 그를 포함해 의정부교구 사제 4명과 서울대교구 사제 1명이 있다.

교구나 교회의 기쁨 외에 박 신부가 개인적으로 해외선교를 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일까?

“새로 사는 기쁨”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해외선교는 도전이다. 사제 12년 차에 새로운 문화, 언어, 생활에 도전했고 그 와중에 새로운 힘과 새 삶이 생겼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감싸고 있다.

무엇이 그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었을까? 박 신부가 들려준 페루 사람들의 신앙과 축제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과 너무나 달라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그 ‘다름’에 매료된 것일까.

▲ 페루 3100미터 고산지대에서 박 신부가 늘상 보는 모습. 그는 "구름 위에 산다"고 표현한다. ⓒ박규식 신부

박 신부에 따르면 페루는 가톨릭국가라 국민의 70-80퍼센트가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 박 신부가 사는 3100미터의 고산지대 주민은 1만 4000여 명인데 주일미사에는 400여 명 정도가 온다. 그렇다 보니 미사 헌금은 일주일에 한국 돈으로 고작 3만 원.

대신 일 년에 한 번 본당이나 공소의 주보성인 축일이 있는 달에 축제를 여는데 이때, 이들은 신앙에 모든 것을 바친다. 박 신부는 이를 ‘축제의 신앙’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축제기간에는 일도 포기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낸다. 박 신부는 축제 때 소 35마리를 잡고, 8시간 동안 춤을 추며 행렬하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박 신부는 스페인 식민지 때 축제를 통해 가톨릭을 받아들였던 배경 때문에 이런 문화가 굳어진 것으로 추측했다. 이어 그는 한국처럼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지킨 것과 달리 페루는 교회를 위해 자신들이 뭔가를 내기보다는 교회로부터 받는 것에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달 뒤에 페루로 돌아가면 신자들에게 ‘신앙생활 실천표’를 나눠 줄 셈이다.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신부의 사인을 받는 것인데, 일 년에 한 번이 아닌 매주 그리고 일상에서 신앙과 함께 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려 한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그는 본당을 돌며 모금을 나선다. 그가 있는 본당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딸려 있다. 아이들 70여 명이 있는데, 운동장 대신 흙바닥만 있다. 바닥을 닦고, 옆에 작은 축구장도 만드는 것이 박 신부의 목표다. 이번 한국 방문이 그의 목표를 이뤄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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