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목연구소, 여장연 심포지엄에서 지적

한국 천주교는 수도생활에 대한 이해, 연구가 모두 부족하다. 2월 22일 열린 ‘봉헌생활의 해’ 심포지엄 종합토론 자리에서 많이 나온 비판이다. 한국 천주교 수녀 1044명 대상 설문조사가 발표된 자리. 청중의 의견까지 함께 듣는 종합토론은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성가소비녀회 종신서원 예정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수녀는 설문조사 결과, 수도자 스스로, 또한 사제들이 수도회 생활수준이 중중(中中) 이상이라 평가한 것이 놀라웠고 도전적인 문제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일반사회와 비교해 수도자 공동체의 생활수준이 어떻다고 생각하는지 상, 중상, 중중, 중하, 하 등 5단계로 물었고, 수도자의 47.9퍼센트가 중중, 40.6퍼센트는 중상이라고 답했다.

발표자로 참여한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은 “(설문조사 결과) 평신도들은 이 문제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며 “수도자나 성직자들이 수도자의 가난에 대해 대단히 엄격하게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원장은 “수도자 개인은 소유가 없으므로 가난하지만, 수도회가 가진 재산, 그리고 수도자로서 한국 교회 안에서 동원할 수 있는 능력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자 자신이 가진 것만 봐서는 안 되고 부탁하면 누군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물자, 재물까지 내 재산으로 보면 결코 적지 않다”면서 “수도회의 재산을 모두 실거래 가격으로 합산하고 회원 수로 나눠 보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그는 수도자들이 수도회가 가난하지 않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면 이에 상응하는 수도회 차원의 행동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 2월 22일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봉헌생활의 해’ 기념 연구 심포지엄에서 발표자와 청중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강한 기자

참석자 가운데 한 남자수도자는 한국 수녀들이 여전히 소극적이고 보조자 역할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 수사는 영성봉사 영역에서 수녀가 ‘교회 안의 남자들’과 경쟁하는 사이가 되도 좋다고 본다며 “수녀님들이 더 훌륭한 영성봉사자일 수 있고 교회 역사를 봐도 훌륭한 (여성) 리더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에서는 ‘여성사제’ 논의가 거의 없다며 “그것을 남자가 해 주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세 번째 발표자였던 이현숙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가 “수녀원 미사 집전할 신부님을 찾다 보면 ‘우리 수녀회 안에서라도 해결하면 안 될까’ 하는 것이 저희 생각”이라며, 여성사제에 대한 공감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어 이 수녀가 청중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여러 수녀에게서 동시에 “네” 하는 대답과 함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편, 논평자로 참가한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는 이 수사의 말에 대해 “격려 말씀으로 듣고 싶다”며 ”서로 살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여성신학의 목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 수녀는 여성사제 논의에 대해 우선순위와 전략 면에서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여성신학이 해방신학보다 더 본질적, 급진적이라는 말도 있는데,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이 이 땅에 어떻게 구현되는가”라며 수사의 제안은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서서히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여장연) 회장 차진숙 수녀는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에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을 대상으로 추가 설문조사를 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연구소 부소장 전원 신부는 주교 대상 설문조사를 하려면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전 신부는 설문조사 결과 보고와 관련 제안들을 곧 열릴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하고자 했지만, 개성공단 문제 등 시급한 남북관계에 대한 보고가 우선시돼 봉헌생활 설문조사 보고는 서면으로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순택 보좌주교(서울대교구 수도회담당 교구장대리)는 교구 사제들은 수녀, 수도자들에 대해 “이상적 존재로 그리며 그런 모습을 요구하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수도자의 존재나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무시하고 하대하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생활과 수도자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는 자리가 교회 안에서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정 주교는 가르멜 남자 수도회 출신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한국교회가 너무 교구 중심이라는 반성에서, 근래 이한택 주교(예수회), 유수일 주교(프란치스코회)에 이어 정 주교 등 수도회 출신 주교를 배출하고 있다.

또 정 주교는 한국에서 수도성소가 줄어드는 것이 사회 변화에 따른 현상이라는 박문수 부원장의 분석이 새롭게 느껴지고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990년대 중, 후반을 지나며 사회, 경제의 발전에 맞춰 가난에 대한 수도 공동체들의 실천이 변했다면서, 세상이 변하는 가운데 기쁨의 삶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수도자들이 반성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월 22일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봉헌생활의 해’ 기념 연구 심포지엄에 참여한 수도자들. ⓒ강한 기자

한국 교회에 수도생활이 도입된 지 130여 년이 됐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성심수녀회의 한 수녀는 발표자와 논평자를 좀 더 폭넓게 선택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는데, 이에 대해 박문수 부원장은 수도회를 대상으로 연구한 수도자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논문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5편 나오는데 2편은 제가 쓴 것”이라면서, 수도자가 자신을 성찰하는 글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 여자수도회 봉헌생활 현실과 쇄신 방향’을 주제로 열린 이번 봉헌생활의 해 기념 연구 심포지엄은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와 여장연이 함께 열었으며, 수녀들을 중심으로 100여 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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