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들 입장과 평행선

“응급피임약은 사실상의 낙태약입니다.”

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가 생명 주일을 앞두고 4월 18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응급피임약’(사후피임약) 판매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그동안 응급피임약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한국 천주교가 내놓았던 입장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번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는 교회는 수정란 상태에서부터 이를 이미 인간 생명으로 보는데 응급피임약은 수정란의 자궁 착상을 막거나 파괴하므로 ‘조기낙태약’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생명윤리위는 응급피임약을 먹으면 여성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건강한 성윤리와 생명윤리 의식을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생명윤리위는 ‘노레보 정’을 이러한 응급피임약의 예로 들었다. 노레보 정은 프랑스에서 개발돼 한국에서도 팔리는 응급피임약으로, 배란을 억제하고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는 것을 막는다.

▲ 먹는 피임약.(사진 출처 = pixabay.com)

이러한 천주교의 입장은 사후 응급피임약까지도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여성단체들의 주장과 정반대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정슬아 활동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인터뷰에서 “단순한 찬성, 반대가 아니라 여성이 그 약을 왜 복용하는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응급피임약은 피임에 실패했거나, 피임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관계가 있었을 때 여성들이 택하는 방법”이라며, 우리 사회는 계획하지 않은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 활동가는 임신과 출산, 피임에 관한 사회문화적 논의가 더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응급피임약을 약국에서 파느냐 마느냐는 좁은 이야기이고, 실제 성관계를 할 때에 피임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계획하고 제안하고 합의하는 과정 자체가 안 되는 것을 우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단체들에서 임신, 출산에 관한 책임이 여성에게만 넘겨지지 않도록 다양한 피임법에 대한 홍보와 성교육 대중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피임약 재분류 논의가 진행 중이던 2012년 여름 여성의 임신, 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결정권’과 ‘의료 접근권’을 고려해야 한다며, 피임약을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담화문에서 주교회의 생명윤리위는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강화도 호소했다.

생명윤리위는 지난 2월 제정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말기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까지 존엄한 삶을 유지하도록 호스피스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하고 사회 문화적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을 예로 들며 “첨단 과학 기술이 그 본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인간 삶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끝으로 생명윤리위는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생명에 관한 이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성숙한 지혜와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 지혜와 판단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쪽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한국 천주교가 지내는 생명 주일은 5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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