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 “민법상 인정돼도 교회 수용 어려울 것”

‘동성 부부’인 영화인 김조광수 씨와 김승환 씨가 동성혼인 소송을 1심 법원이 각하 결정한 데 대해 항고하겠다고 5월 26일 밝혔다.

이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민법상 혼인과 교회가 말하는 혼인은 성격상 다르다”며 “유럽처럼 동성혼인을 민법상 인정하더라도 교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인터뷰에서 “교회의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주는 초대에 두 남녀가 자유의지로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므로 “당사자 사이의 이성에 기초한 계약을 혼인으로 보는 세상의 관점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박 신부는 두 사람의 동성 혼인신고 수리 요구를 “교회가 사목적으로 어떻게 바라볼지는 다른 문제”라면서 “그들이 인격체로서 차별 받지 않도록 하는 문제는 사목의 신중함, 현명함 차원에서 살펴봐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동성 혼인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분명하다.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맺는 것으로, 동성 결합은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같은 차원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 동성애자인 김조광수, 김승환 씨와 소송대리인단은 26일 오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항고와 함께, 또 다른 동성애자 커플들의 소송도 제기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승환 씨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국가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송을 통해 “사법부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비롯한 사회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이번 결정을 통해 한국에서도 동성결혼 합법화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실로 다가와 있다는 것을 더욱더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조광수 씨는 기자회견 발언 중 “감정적으로 힘들다”며 울먹였다. 그는 “대한민국 법 어디에도 동성은 결혼할 수 없다거나, 결혼은 이성만 할 수 있다고 표시돼 있지 않다. 사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미흡함을 넘어 참담하다”고 말했다.

▲ 5월 2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성 부부' 김조광수, 김승환 씨(앞줄 가운데)와 소송대리인 등이 항고장과 다른 동성 커플의 소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한 기자

김조광수 씨와 김승환 씨는 2013년 9월 청계천 광통교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김조광수 씨는 대표적 성소수자 영화감독, 제작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4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칼럼 필자와 인터뷰에서 자신은 세례명 ‘베드로’로 세례 받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가톨릭은 여전히 동성애를 죄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10여 년을 냉담자로 살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최근 성공회로 옮겨 교회에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조광수 씨 커플은 2013년 서울 서대문구가 이들의 혼인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자 서울서부지법에 불복신청을 냈다. 이에 법원이 5월 25일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법원 결정문에 따르면 두 사람은 헌법과 민법, 가족관계등록법에 동성혼인에 관한 금지가 없으므로 헌법의 행복추구권, 평등의 원칙에 따라 혼인신고는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헌법과 관련 법령이 혼인을 장려하고 이에 따른 권리를 주는 것은 단지 혼인에서 오는 친밀감, 안정감, 사회적 안정 때문만은 아니며, 출산, 자녀 양육과 관련이 깊다고 봤다.

법원은 “혼인 당사자는 혼인 및 공동의 자녀 출산을 통하여 가족을 이루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 헌신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공동의 자녀를 출산하여 자녀를 함께 양육하게 되며,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다시 만들어지고,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대해 담당변호사 중 한 명인 조숙현 변호사는 “공동 자녀 출산으로 인한 사회 재생산이 동성 부부와 이성 부부를 차별대우하는 합리적 이유가 된다는 판결은 크게 걱정된다”며 “자녀를 출산하지 않기로 하는 이성 부부도 늘고 있는데, 이런 부부에 대해서는 혼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나는 것이냐”고 물었다.

한편, 법원이 결정문에서 혼인과 동성애자를 둘러싼 시대상이 변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도 눈에 띄는 일이다. 법원은 “혼인제도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천을 겪는다는 점”을 언급하며 “헌법이나 민법 등이 제정 혹은 개정될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시대적 상황이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적으로 볼 때 단순히 동성애를 합법화한 것을 넘어서 근래 동성혼을 금지하는 법이 위헌이라고 선언하거나 혹은 동성혼을 입법적으로 허용하는 국가가 여럿 있고, 동성혼을 완전한 혼인으로 허용하지 않더라도 법률에 의하여 다양한 형태의 혼인유사관계의 지위를 부여하는 국가도 있다”고 설명했다.

동성혼을 합법화한 여러 나라는 법원 판결을 통해, 또는 의회의 법률 개정을 통해, 또는 국민투표 등 셋 가운데 하나의 방향을 거쳤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김조광수 커플은 법원 판결을 통해 기존 법률의 재해석이라는 경로를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이번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동성혼 인정 여부는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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