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영성체를 할 때 혀를 내밀고 성체를 모시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 신부님 옆에 있던 복사들은, 혹시라도 성체가 땅에 떨어질 때를 생각해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사람의 턱 밑에 긴 손잡이가 달린 도금이 된 접시를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성체를 잡기에 그 접시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만큼 성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알려 주기에는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입으로 직접 성체를 모시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위생을 생각하여 성체를 받아 모시는 방식이 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즉, 손으로 성체를 받아서 개인이 직접 자기 입에 넣게 되었습니다. 영성체를 하고자 하는 이가 손을 쓸 수 없다거나 굳이 혀를 내밀어 입으로 받아 모시겠다는 표시를 하지 않는 이상, 사제나 성체 분배자는 신자들의 손에 성체를 놓습니다.

성체를 손에 올려 드리는 것이 혀 위에 얹는 것보다 훨씬 쉬운데도, 성체를 성당 바닥에 떨어뜨리는 사고가 드물게 나곤 합니다. 이럴 때는 당황하지 않고, 사제나 성체 분배자가 떨어진 성체를 집어서 영하면 됩니다. (언젠가 떨어진 성체를 주워 그 자리에서 제가 영하지 않고 무심결에 다시 성합에 넣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성체는 어떤 분에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당황한 나머지 성체를 떨어뜨린 신자가 직접 성체를 집어 영성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신자분의 동작이 사제보다 더 민첩하고 기민한 것이었다면, 뭐.... 할 수 없습니다. 성체를 바꿔 드리고 싶지만 이미 늦은 셈입니다.

▲ 성체를 입으로 영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옛날에는 사제만이 성체를 집을 수 있다는 권위를 부여했기에, 신자가 바닥에 떨어진 성체에 먼저 손을 대면 사제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냐 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영성체의 집전자는 주교, 사제나 부제이기에 그럴 만도 했습니다. 즉, 성체에 대한 우선적 책임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게까지 엄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만큼 성체를 소중히 다루려는 태도는 유지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결핵에 걸린 환자에게 병자 영성체를 하도록 했는데 병자가 기침을 하는 바람에 성체의 일부가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졌던 사례입니다. 그런 성체를 어찌했을까요? 사제가 거둬 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제는 결핵에 걸려 선종했다는군요.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 올라오긴 하지만, 적어도 성체에 대한 지극한 공경만큼은 알아 듣고 싶습니다.

그럼, 오늘 속풀이 질문을 좀 더 확대하여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미사 중에 포도주를 쏟았을 때는 어찌할까요?

매우 보기 힘든 일이지만, 저는 공동체에서 연로하신 신부님이 성작을 놓쳐서 성혈을 쏟으시고는 아주 난처해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성작 수건으로 제대를 차분히 닦으셨고, 미사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닌데, 그런 실수로 자기 탓을 하기보다는 성혈이 떨어진 자리를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내고, 그 수건은 말린 뒤 세탁을 하면 됩니다. 바로 세탁을 하면 성혈이 물에 씻겨 나가기 때문에 먼저 수건을 말리고 나서 세탁을 하는 것이 성혈을 정성껏 모시는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온전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실수를 하느님께서 엄한 눈으로 보실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성체를 대하는 우리의 정성된 마음은 늘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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