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두 교황과 함께한 대변인

(존 앨런)

오늘(8월 1일)은 미국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멋진 시대가 시작하는 날이다. 오늘부로 바티칸 대변인, 그러니까 교황 다음으로 교회 안에서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인물이 미국 출신 언론인인 그레그 버크가 되므로.

그는 <타임>과 <폭스뉴스>에서 기자로 일했던 민첩하고 헌신적인 뉴스맨이고, 미국인이 교황청 대변인이라는 것은 교황청에게는 물론 교황청을 취재하는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이 인사이동 중에 빠트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즉,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가 교황청 대변인을 그만두는 날이고, 교회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잠깐 시간을 내어 롬바르디 신부가 지난 10년간 얼마나 놀라운 희생을 바쳤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2006년 7월에 교황청 대변인 자리를 맡았다. 22년이나 교황의 대변인이었던 나바로-발스의 자리를 대신해서였다. 어떤 뜻에서, 롬바르디 신부는 자신이 봉사하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전설적 인물인 성 요한 바오로 2세를 대신해야 하는 부담을 안았던 것과 똑같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 전임자인 나바로-발스의 지성, 개방성, 그리고 미디어 이해는 전설적이었는데, 롬바르디는 그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롬바르디에 대해 여러분이 알아 둬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어떤 종류든 자신이 유명인사가 되려는 욕구가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곳이라면 불평이나 한숨 없이 그 자리에 갔고, 그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그는 1942년에 이탈리아의 피드몬트에서 태어났고 1972년에 예수회 사제가 되었다. 그 뒤 교황청 국무원의 반관영 매체로 예수회가 편집하는 유력지 <치빌타 카톨리카>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또한 예수회 이탈리아 관구의 관구장이 되었다.

이는 롬바르디의 나머지 인생에서 한 패턴이 되었다. 그는 한 가지 일만 맡은 적이 별로 없고 대개는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그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그는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장 근사하고 공정한 인간의 완전체이기 때문이었다.

1991년에 롬바르디는 <바티칸 라디오> -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예수회가 운영하는 매체다 –의 프로그램 국장으로 임명되었고, 2005년에는 총국장, 즉 책임자가 되었다. 이는 밖에서 보기에는 별로 크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바티칸 라디오>는 바티칸에서는 단일 조직으로는 고용 인원이 가장 많은 곳이며, 사람마다 보기에는 다르겠지만, 교황청의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부서로서, 이를 운영하는 것은 바티칸에서는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는 2001년에는 <바티칸 텔레비전> 국장까지 맡아 생활이 더 복잡해졌다. 그는 이 자리를 2013년에 다리오 비가노 몬시뇰이 넘겨 받을 때까지 맡았다.

나바로-발스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 있었지만, (2005년에 그가 죽은 뒤에도) 충성심에서 베네딕토 16세의 교황청 대변인으로 계속해서 일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는 떠나고 싶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고, 그래서 2006년에 롬바르디가 그 자리를 메웠다. 여전히 <바티칸 라디오>와 <바티칸 텔레비전>도 맡으면서.

기록상 밝혀 두지만, 당시 그는 예수회의 참사위원을 내내 맡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다른 인간이라면 하나를 맡아도 상근으로 해야 할 일을 사실상 동시에 4개나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 분명히,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에 교황직을 사퇴했을 때) 이미 70대 나이인 롬바르디 신부는 새 교황이 선출되는 즉시 대변인 자리를 물러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 뽑힌 교황은 그와 같은 예수회 동료인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그래서 롬바르디는 새 교황을 위해 3년 동안 교황청의 커뮤니케이션을 계속 맡았다.

▲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 (이미지 출처 = CRUX)

롬바르디는 진실의 힘을 깊이 믿으므로, 우리도 진실을 말하기로 하자. 그는 언제나 일을 아주 잘하지는 않았다.

한 예를 들면, 그는 나바로-발스나 버크가 가진 기사 문장의 재능이 없다. 이 두 사람(평신도)은 최고 수준의 전문적 저널리즘의 문화를 경험했지만 롬바르디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 저널리즘 세계에서 작동했던 방식으로 사물을 문장화하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는 길고, 아주 주의 깊게 쓴 성명서들을 내곤 했는데, 여기에는 아주 쓸모 있는 정보들이 있었지만 “멋진 인용구”(quotable quotes) 같은 방식으로 낸 것은 별로 없었다.

롬바르디는 또한 자신의 직무에 대해 아주 수동적 관점을 갖고 있었는데, 교황이 무언가를 말하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을 최선의 모습으로 포장해 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바로와 달리, 그는 먼저 교황에게 가서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라거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라고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에 자기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그 자리의 결정을 어떻게 설명하고 발표하느냐도 결정할 때 고려에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러한 잘못이 명백히 드러난 한 예는 2009년에 교황청이 4명의 전통주의 주교들(비오 10세회)의 파문을 철회했는데, 그중에 과거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던 사람이 하나 포함되어 있던 일이었다. 그 뒤 일어난 항의의 대폭발은 전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롬바르디를 비롯한 여러 교황청 홍보 관리들은 방심한 것처럼 보였고 (그 결정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려고 노력했다. (편집자 주- 베네딕토 16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혁에 반발하고 교황 승인 없이 주교를 서품해 파문된 전통주의 단체 비오 10세회와의 재일치를 위해 2009년에 리처드 윌리엄슨 등 4명에 대한 파문을 철회했다. 그 직후 윌리엄슨이 과거에 홀로코스트를 부인했던 TV 인터뷰가 공개되었고, 독일은 그를 홀로코스트 부인죄로 기소해 그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가톨릭 교회를 향한 대대적 비판에, 교황청은 그의 파문을 철회할 당시 베네딕토 교황은 그의 그런 의견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윌리엄슨은 2012년에 비오10세회에서 쫓겨났다.)

반면에, 롬바르디는 대변인 직무에 다양한 기여를 했다.

그는 하루 24시간 언제든 기자들의 질문에 응했으며, 자기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정직하게 대답했고, 어떤 기자나 언론사를 편애하거나 언론을 조작하려고 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근로 윤리를 가지고 있었고, 기자단을 포함해 자기 주변 사람들의 삶에 대해 진정으로 인간적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롬바르디 신부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이것이다- 내가 로마에 있을 때 어떤 영적이거나 정서적 위기를 겪는다면, 내 옆에 두기를 원하는 사제는 바로 그인데, 그는 내가 만났던 가장 손에 닿는 도움을 주고, 근사한 사제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롬바르디 신부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어려움을 마주쳐야만 했다. 베네딕토 교황 아래에서, 그는 부정적 대중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은 교황에게 봉사했고, 그래서 대 언론 관계라는 면에서 방어적으로 움직여야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프란치스코 교황 아래에서는, 거의 항상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말과 행동을 하는 상사를 모시기에, 대변인으로서 늘 비상대기 상태에 있어야 했다.

이 모든 일을 하면서, 롬바르디 신부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고, 권력이나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특징인 친절과 관대함을 한 번도 잃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온 삶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바쳤으며, 대변인직을 물러나는 오늘도 그 헌신이 끝나는 날이 아니다. 사실, 교황청은 오늘 그가 “요제프 라칭거 – 베네딕토 16세” 재단의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교황 대변인으로서 롬바르디의 시대는 오늘로써 끝난다. 그리고 바티칸과 교회가 어떻게 이해되고 인식되는가에 관심이 있는 우리 모두는 그에게 엄청난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Grazie per tutto, Padre! (그간 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신부님!)

기사 원문: https://cruxnow.com/analysis/2016/08/01/saying-thank-nicest-guy-catholic-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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