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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중국 협상의 의의

기사승인 2016.08.08  17: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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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통혼 추기경

(통혼 추기경, 홍콩)

중국 주재 교황청대사관이 1951년에 추방된 뒤, 표면적으로 중국의 가톨릭교회는 보편교회와 일치를 잃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본질상으로는, 보편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 교회는 보편교회와의 일치를 다시 이루려고 활발히 추구하는 교회다.

보편교회와의 일치는 영적 연계에 그쳐서는 안 되며, 지역 주교들을 임명하는 로마 교황의 구체적 행위를 통하여도 표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60년간 이는 중국 정부에 의해 이해받지 못했고, 따라서 교황이 중국 주교들을 공식 임명하기 어려웠으며 중국 교회와 보편교회 사이의 일치도 드러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 해 동안 노력한 결과, 가톨릭교회는 조금씩 중국 정부의 재고려를 받게 되었고, 이제 중국 정부는 교황청과의 이해에 이르고 상호 받아들일 만한 계획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중국 교회에 관심을 가진 중국 안팎의 많은 사람은 이를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바티칸 관리들이나 교황이 교회 원칙들에 어긋나게 움직일 수 있다고 보면서 특정 교황청 관리들에게 비판과 강한 비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현 교황을 직접 겨냥해 공격하기까지 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지켜온 교회 원칙들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교황청과 중국 간의) 상호 합의의 구체적 문구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편교회의 일치의 보호자로서, 보편교회의 신앙의 통합성이나 중국 교회와 보편교회 간의 일치에 해를 끼칠 어떠한 합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에 관해 걱정하는 많은 중국인 사제들이 있기에, 나는 우리가 그들에게 이러한 우려 사항들에 대해 명확하고 알기 쉬운 설명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바티칸 협상의 의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월 28일 <아시아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모든 문명을 존중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책임이며 이는 중국 문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복음은 어떤 나라, 종족 또는 문화 안으로 추상적 방식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존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전해진다.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복음의 정신과 가치관 – 자비, 평화와 자선-을 실천한다면 사람들은 복음을 더 쉽게 경험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떤 장애 때문에 그 복음을 일종의 “위협”으로 표현하거나, “외부인”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 때문에 (외부세력과) “공모”하고 있다고 의심받거나 하면, 복음 전파는 방해받을 것이다.

중국의 사회와 문화 속으로 그리스도교 복음을 전달하는 일이 장벽들을 만나고 여러 차례 발전을 저지당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중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톨릭교회가 해야 할 복음적 사명으로부터 우리는 진취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특정 민족이 가톨릭교회에 대한 자신들의 오해와 회의를 씻어내도록 돕는 길은 진취적 대화와 소통을 통하는 것이다.

중국 본토가 1980년대에 다시 개방한 뒤로, 가톨릭교회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현 교황 프란치스코 시기를 관통해 수도 없이 중국에 올리브 가지를 적극 건네고, 대화하고자 하는 교회의 선의를 전하고자 했다. 양측은 또한 몇 차례 서로 대표단을 보내 직접 대화도 실행했다. 20년에 걸친 선의와 끈기 있는 소통 속에서, 교황청은 오해 받을 때조차 적대적 언사보다는 꾸준한 겸양과 인내로 대응해 왔다.

대화의 목적

결국, 교황청과 중국 간 대화의 목표는 중국 헌법에 쓰여 있는 대로 중국 교회의 정당한 종교 자유와 권리를 추구하고 보호하는 데 있다. 교황청은 가톨릭교회가 중국의 합법적 주권, 그 통치자와 법률들의 합법적 권력과 책임성을 존중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싶어 한다.

일부는 이 대화의 내용과 대상을 비판하며, 교황청이 중국의 인권 정책을 공개 비판하지 않았고 중국 정부의 특정 정치 정책들을 변화시키려 시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교황청이 지켜온 특정 가치관을 포기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판은 불공정하다.

교회의 사명은 나라들의 기관이나 행정기구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정치 투쟁에 개입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천주교회는 “존중과 자비”의 태도로 중국과 대화도 해야 한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원칙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수호하고 교회의 원칙들을 지키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교회가 왜 되풀이하면서 중국과 대화를 시도하려 할 것인가?

   
▲ 통혼 추기경.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중국 교회와 보편교회 간의 일치

보편교회와의 일치는 오직 로마 교황직과의 일치를 통해서만이며, 어떤 이든 가톨릭교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역 주교의 임명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 간 일치의 표현이다. 지역교회들은 그 자신의 주교들을 임명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지역 주교회의는 교황의 허락 하에 자기 지역 교회를 가르치고 돌볼 각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세속 정치권력은 지역 주교들을 임명할 어떤 권한도 가지지 않는다.

위의 원칙들은 교황청이 중국 교회를 다루는 방식에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는 교황이 주교의 임명에 최종 결정권을 갖는 데 대해 회의적이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상호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가 되어 왔다.

교황청은 가톨릭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원칙들이 침해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상호 수용가능한 합의에 이를 의사가 있다. 대화는 교회의 교계제도적 일치에 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황이 지역 주교를 임명하는 방식은 주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교황 자신이 자유로이 임명한다. 둘째, 합법적 규정에 맞게 선출된 사람을 교황이 주교로서 승인한다. 그 주교직에 맞는 후보들을 어떻게 선출할지 아무런 법적 규정이 전혀 없다면, 어떠한 국가 또는 종교 권력의 제한을 받음이 없이 교황은 주교를 임명할 자신의 판단을 행사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러한 절차는 지역 상황에 적합한 바에 맞게 조정될 수 있다. 사도좌와 중국 정부에 의해 주교가 선출될 때, 위의 원칙들이 침해되지 않는 한, 사도좌는 중국의 주교 임명에 대해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 사도좌는 또한 중국 교회가 직면한 특정 환경들을 겨냥한 특별 규정들을 만들 권한이 있다.

현재, 중국에는 사도좌에 의해 받아들여진 주교회의가 없다. 중국가톨릭교회 주교회의(BCCCC, 편집자 주- 지금까지 교황의 주교 임면권을 부인하고 독자적으로 주교를 선출해 온 친 정부파 공식교회의 주교회의)가 교회의 기본 요구들을 충족한 뒤에 장차 사도좌에 의해 합법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 조직이나 이 주교회의 산하 여러 지방의 주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적합하다고 보이는 주교 후보를 교황에게 추천할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조직은 추천권만 가질 뿐이고,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사도좌에 유보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주교회의에 대해

중국 본토에는 정부에 의해 아직 인정받지 못한 비밀 교회들에 속한 주교들도 있다. 일부는 아직도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 살고 있을 수 있으며, 자신들의 주교 직무를 실행할 수 없다. 그 결과, 장래의 중국 주교회의는 공식교회의 모든 합법 주교는 물론 이들 지하교회 주교들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편집자 주- 공식교회의 상당수 주교는 주교 서품 전후에 교황청과 의사소통을 통해 합법 주교로 인정받은 상태다.)

중국에 있는 지하교회 주교들의 합법적 권한을 추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로마는 이들이 정부에 의해 합법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대화를 실행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들 합법 주교가 중국과의 대화 속에서 (교황청이) 너무 양보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신앙이라는 원칙들이 뒤로 밀리는 가운데 처리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런 염려는 불필요하다.

만약 교황청이 교회의 일치와 신앙의 원칙들을 내버릴 생각이 있다면 중국 정부와 대화하고 협상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대화를 해왔다는 것 자체가 이런 물음에 대한 교황청의 확고한 입장을 대변한다.

일부에서는 교황청과 중국 정부의 대화에서 지하교회의 합법적 권한들이 희생될까 걱정한다. 일부에서는 감옥 안에 있는 지하 주교들이 잊힐까 염려한다. 나는 이런 걱정은 중국의 교회에 대한 교황청의 사랑을 믿지 못함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고방식은 실로 협상에 임하는 교황청과 그 대표들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들 가톨릭 신자의 마음에서 나올 것이 아니다.

지하교회가 교회의 신앙을 지키면서 겪어온 희생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보편 교회는 또한 지하교회를 돕기 위한 손을 건네려 백방으로 애씀으로써 생존을 위한 지하교회의 노력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교황청과 중국의 대화는 사실 생존에 적합하도록 지하교회의 비정상적 여건을 바꾸려는 데 있으며, 그리하여 지하교회가 곧 법의 보호 아래 종교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대화와 협상은 장기 과정이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쌓여온 문제들이 단숨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양측이 상호 신뢰의 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이상, 우리가 협상에 비관적 전망을 하거나 섣부르게 사형선고를 내릴 이유가 없다.

우리는 신앙을 추구하고 지키기 때문에 서로 간의 대화에서 좋은 열매가 나오기를 감히 긍정적으로 희망한다.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면 분명히 서로 좋은 결과일 것이며 어느 한쪽이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닐 것이다.

(이 글은 근래 교황청과 중국 간의 대화를 놓고 나온 여러 보도에 대한 통 추기경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the-significance-of-china-vatican-negotiations/76768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편집국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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