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소년은 침묵하지 않는다: 히틀러에 맞선 소년 레지스탕스", 필립 후즈, 돌베개, 2016

#장면1-덴마크 오덴세

1940년 4월 9일, 덴마크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명목으로 독일의 점령 선포를 받아들였다. 그날 덴마크의 세 번째로 큰 도시 오덴세에는 독일 전투기에서 선전물이 공중 살포되었다. 그 푸른 종이에 “독일은 사악한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덴마크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덴마크가 독일의 피보호국이 되었다. 그러니 걱정할 게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면서 폴란드에 이어 덴마크를 점령했다. 그리고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채취한 철광석을 덴마크 철도를 이용해 독일로 실어 날랐다. 그 철광석은 물론 무기 제조에 이용되었다. 또한 덴마크는 넓은 목초지에서 나는 육류를 제공했고, 영국과 독일 사이에 있어서 완충지대로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덴마크는 독일과 싸우는 대신 ‘안전하게’ 점령당하는 쪽을 택했다.

▲ "소년은 침묵하지 않는다", 필립 후즈, (박여영), 돌베개, 2016. (표지 제공 = 돌베개)

오덴세에 사는 10대 소년 크누드 페데르센은 조국 덴마크가 부끄러웠다. 이웃나라 노르웨이는 독일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누드는 신문에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10대 후반의 노르웨이 전사들이 독일 침략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사건들을 접했다. 크누드와 그의 형, 친구들은 “지도자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덴마크에서 레지스탕스로 활약할 수 있는 건 훈련받은 군인들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때 소년들이 맺은 결의로 ‘처칠 클럽’이라는 레지스탕스 그룹을 조직했다. 처칠 클럽은 도로 표지판을 바꾸어 놓아 독일군 차량 행렬에 혼란을 주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급기야 소총을 훔치고, 무기를 실은 기차를 폭파시키는 등의 엄청난 활약을 벌인다.

사실 이들이 독일군을 덴마크에서 몰아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독일 침공에 대항하지 않을 때 10대 소년들의 작은 사보타주 행위는 무거운 침묵에 균열을 일으켰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작은 저항이라도 소중하다. 그것이 비록 상황을 당장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미래에 있을 큰 변화를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크누드를 비롯한 처칠 클럽 단원들은 희망을 품은 영웅이었다.

#장면2-대한민국 대구

1960년 2월 28일 오후, 대한민국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날은 원래 일요일이었으나 대구 지역 고등학교가 일제히 학생들을 등교시켰다. 학생들이 왜 일요일에 등교했을까? 2월 28일은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위해 치러졌던 3·15부정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장면 박사가 대구 수성천변에서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여당인 자유당은 학생들이 유세장에 몰릴 것을 우려해 학교에 묶어 놓으려 했다. 그 이유도 임시 시험, 영화 단체 관람에서 무용회와 토끼 사냥까지 다양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조치에 분개한 고등학생 중 하나였던 경북고 이대우 학생은 이날 등교하는 여러 학교의 학생들을 조직해 시위를 벌이기로 한다. 약속한 시각에 이대우가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갔다. 다른 학교 학생들도 이어서 합류해 1200여 명으로 불어났다. 곧이어 경찰들의 진압이 시작되었으나 시민들은 학생들을 응원하며 감추어 주기도 했다. 이 시위는 작은 불꽃이었으나 이후 3월 15일 마산, 4월 19일 서울로 이어져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게 된다.

#장면3-대한민국 서울

2016년 11월 12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는 중고생 2000여 명이 모여 ‘청소년 시국대회’가 열렸다. 청소년들은 이날 자신들이 국가의 주인이며 미래임을 선언하고, 국정농단의 책임자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100만 시민이 모여 거대한 희망을 만든 그날, 집회의 가장 싱그러운 희망을 품은 이들은 바로 우리 청소년들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침묵을 깬 첫 외침의 주인공들은 청소년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청소년들의 정치적 주체로서의 힘이 사라지고 입시제도에 포획된 채 경쟁 교육에 희생당하고 있다. 매일 늦게까지 학교에 묶여 있는 청소년들은 사회에 나와 다시 장시간 노동의 쳇바퀴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삶을 거부하기 위해 스스로 일어선 청소년들은 지금 자신을 지배하는 사회의 질서에 맞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제정하는 지극히 창조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이런 경험은 사람의 일생 동안 자긍심의 원천이 된다. 이렇게 싸운 세대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배반하지 않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새 희망이 피어난다.

 
 

강변구 
출판노동자,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십여 년째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딸이 태어난 새내기 아빠랍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