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여성소위 세미나

“배우자의 일탈, 불손함, 폭력, 지나친 권위의식을 견뎌야 가정이 유지되는데, 인내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배우자와 각방을 써요.”

“무정자증 같이 불임일 때 보조생식술, 대리모, 이혼 등에 대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부부의 부(夫)자는 하늘보다 지아비가 높다고 교육받은 가정에서 자랐어요. 지아비를 하느님보다 더 섬겨야 하나요?”

“집안의 후손을 잇지 않으면 옛날에는 죄였는데, 당사자 부부가 아들이 없는데도 출산하지 않으려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기피하는 것 아닌가요. 어떻게 권고해야 할까요?”

가정사목에 관한 한 세미나에서 나온 신자들의 질문이다. 일상생활에서의 경험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가톨릭 교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교회는 뭐라고 대답할까?

11월 22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사랑의 기쁨”을 바탕으로 교회의 가정사목이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정기세미나로 조규만 주교(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위원장)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사랑의 기쁨”은 2014, 2015년 두 번에 걸쳐 열렸던 가정에 관한 주교 시노드의 결과를 반영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권고로, 올 4월에 나왔다. 한국어 번역본도 나와 있다.

▲ 11월 22일 서울대교구청에서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정기세미나가 "사랑의 기쁨"을 주제로 열렸다. ⓒ배선영 기자

교황, 오늘날 가정의 위기에 교회도 일조했다 반성
“어떤 가정도 교회로부터 분리돼서는 안 돼”

발제자로 나선 박은미 교수(여성소위 총무)는 “사랑의 기쁨”에 나온 가정사목의 방향 특히 "irregular"한(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소개하고, 이를 한국 상황에 맞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우선 교황이 가정을 대하는 교회의 방식이 오늘날의 가정이 처한 위기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인정하고, 교회가 반성할 점을 제시했다며 이 내용을 소개했다.

교황은 교회가 혼인에 대해 유독 자녀 출산의 의무만을 강조한 점, 혼인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신학적 이상의 모습으로 제안한 점, 교리와 생명윤리, 도덕적 주제만 강조한 점, 혼인을 개인의 성장이 아닌 평생 짊어질 짐으로 제시한 점 등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황은 사목적 도움이 이해심과 친근감이 없으며 비현실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사목적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도움의 자세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교황은 이혼하고 새로운 결합을 맺은 이들이 파문당한 것처럼 느끼게 해서는 안 되며, 혼인 무효소송이 더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절차를 간소화했다고 소개한다. 더불어 성소수자가 있는 가정과 외부모 가정에 대해서도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혼인성사가 아닌 사회혼이나 동거 등도 각자 처한 상황을 고려해,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혼인과 가정의 여정을 따르도록 점진적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박은미 교수는 이런 교황의 권고를 “다양한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대해 사목자와 교회 공동체가 가져야 할 태도는 자비와 통합”이라고 정리하며, “사목자는 개별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판단이 아니라 배려와 식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가정도 교회 공동체로부터 영원히 분리시키거나 파문되어서는 안 되므로, 혼인과 가정에 대한 사목은 이들의 여정에 동반하고 각 상황을 식별함으로써 통합으로 향하도록 도와야 한다.”

박 교수는 교황이 이혼하고 사회적으로 재혼한 이들의 영성체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식별과 동반에 기초한 통합의 측면으로 보면 교황이 이 문제에도 열린 태도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박은미 교수(주교회의 여성소위 총무) ⓒ배선영 기자

irregular = 비정상? 용어 선택에도 차별 문제 고민해야
“사랑의 기쁨”을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한편, 박 교수는 사회적 혼인 계약을 맺은 이들,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 동거하는 이들 등의 상황을 교황이 irregular라고 지칭했는데, 한글판에 이를 "비정상적"이라고 번역한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irregular한 가정의 상황을 비정상으로 부르는 것이 온당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며, 최근에는 가족구조에 대해 정상/비정상 등의 차별적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번역한 측에도 직접 문제제기 했고, 기존의 번역을 따랐다는 답을 들었다. 박 교수 자신은 irregular를 ‘불완전한’이라고 번역했는데, 질의응답 때 한 참석자가 불완전이라는 표현도 결핍이나 모자람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일반적이지 않은’이라고 쓸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교회 안에서 용어 하나를 선택할 때도 어느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고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박 교수는 교황의 권고를 한국에 맞게 적용하기 위한 과제로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전환, 교회 안에 상담소 설치, 가정 관련 사목자 양성 등을 들었다.

그는 불완전한 가정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인 가정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성 불평등과 왜곡된 성 고정관념에서 생기는 사회 문제라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하며, 지구별 상담소 설치를 주장했다.

상담소 설치는 여성소위에서 이미 제안한 바 있는데, 박 교수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가정사목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다는 면에서 가정사목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무엇을 할지 교회 관계자 모두 반성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교수는 신학교 교과과정에 여성학, 여성신학, 심리학 등이 들어가야 하고, 더 많은 여성이 교수로 활동해야 한다고 했다. 또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등 빠르게 변하는 가족의 형태에 교회도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박정우 신부(가톨릭대)는 “사랑의 기쁨”에 나타난 혼인과 사랑의 의미를 발표했는데, 가정에 관한 이전 문헌들이 교리적 설명에 충실하고 부부의 소명과 책임을 강조했다면, “사랑의 기쁨”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긍정적 가치관과 어려움에 처한 가정을 도와줄 사목적 배려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질의응답 때 과거 교회 문헌에서 자녀출산이 혼인의 1차 목적이었다가 점차 우선순위가 달라진 맥락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이에 조규만 주교는 “과거 교회는 혼인의 1차 목적을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위한 출산, 2차 목적을 부부애로 강조했다가 “사목헌장”(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하나)에서는 우선순위가 없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1차가 부부애고, 2차가 출산하면 다행이고 없으면 할 수 없다는 흐름으로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하느님보다 지아비를 더 섬겨야 하냐는 질문에 조규만 주교는 “사랑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고 답했다. 평등한 관계에서 사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자의 불손함과 폭력에 대한 걱정에 박은미 교수는 개인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고, 사회나 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며, 교회 등 기관에 도움을 청하길 조언했다.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데 출산하지 않으려는 부부에게 뭐라고 해야 하냐는 질문에 남인숙 교수(대구대교구 여성위원회)는 아들을 낳기 위해 출산해야 한다는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질문자의 말대로 옛날에는 죄였지만, 지금은 죄가 아니라고 말했다. 박정우 신부도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것이 죄라고 덧붙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