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어느 비신자분이 질문을 해 오셨습니다. 가톨릭 사제가 독신을 고수하는 것이 궁금하셨나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톨릭 사제들이 독신으로 사는 이유에 대해 이렇다 할 답변은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질문이 들어 온 김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듯합니다. 저야 수도회 소속 사제이고, 수도회 공동체는 아무래도 공동 생활이라는 맥락에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건조한 의견을 밝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구에서 활동하는 사제들은 보통, 개별적으로 생활하는 성격이 강하기에 좀 더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으리라 어림합니다.

아주 간단히, 독신으로 사는 것이 좀 더 투명하고 이권에 치우침 없이 사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이유를 들 수도 있습니다. 신자든 비신자든 적잖은 분들도 그런 면이 좋다고 사제 독신제를 긍정적으로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즉, 친인척 비리를 저지르거나 여러 가지 일들을 사리사욕을 챙기는 쪽으로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직자, 수도자의 독신제에는 좀 더 근본적인 정신적 유산이 배경에 있습니다. 그것은 절제 혹은 금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 19장 12절에는 ‘하늘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이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일생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취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남녀에게 독신제는 수도생활의 초기부터 수도자가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하는 의무로 여겨졌던 것입니다.(가톨릭 대사전 “독신제” 항 참조)

하지만 예수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독신에 관한 문화적 배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신제도는 제사를 지내기에 앞서, 혹은 전투에 나서기에 앞서 성행위가 부정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렇게 뭔가 매우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성행위를 멀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육과 영을 구별하여 육적인 것이 영적인 것에 비해 하등하다는 그리스적 사고방식과도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거룩한 일을 수행하는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독신이라는 자연스런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았던 시기에는 사제가 결혼한 상태로 제사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주일에 모여 드리는 제사만 챙기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니까요. 말하자면 주일 하루 이틀 전에 아내와 관계를 갖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313)으로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서 인정받고 더 나아가 권장됨으로써 양상은 달라졌습니다. 드러내 놓고 미사 봉헌을 할 수 있었으며, 급기야는 주일미사만이 아니라 점차 평일에도 미사가 봉헌되었던 것입니다. 사제가 아내와 잠자리를 멀리해야 할 일정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박해시대에는 ‘순교’가 지고의 가치였는데, 더 이상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열정을 드러내 보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막으로 옮겨 와 가난과 고행과 극기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은둔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이 나중에 좀 더 조직화되는 수도생활의 선조가 됩니다. 그들은 금욕을 통해 그리스도의 삶에 일치하고자 함으로써 순교로 향한 열정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다양한 금욕행위 중에 중요한 한 가지가 성을 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제 독신은 금욕적 수행 의미도 있지만 온전한 봉사라는 사목적 목적도 담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천주교 전주교구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그리스도교 안에서 성직자들의 독신 전통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교회법에 명시된 것은 1139년 제2차 라테라노공의회에서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이런 법규가 없었음에도 독신이 사제에게 좀 더 어울리는 생활양식이라는 분위기가 있었고, 법적 구속을 받지 않고 선택되었던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제이면서 결혼 상태에 있는 이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들에게마저도 독신을 강하게 권했습니다. 그게 제대로 수용되지 않자 급기야는 결혼한 자는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을 정하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제 독신은 이처럼, 우선 금욕적인 동기를 통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하늘나라를 위하여 지키는 동정이나 독신"이라는 표현을 통해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을 섬기는 일에 더욱 전적으로 투신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사제생활교령 16 참조)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제 독신은 금욕과 관련된 종교적 수행의 의미도 있지만, 온전한 봉사라는 사목적 목적도 담고 있다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강력히 요구되는 사제 독신이지만 다른 교파나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은 아닙니다. 정교회와 개신교의 여러 교파, 이웃 종교에서 성직자의 결혼이 허용되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 그들의 활동에 장애를 일으키고 있지도 않습니다.

현대에 와서 가톨릭 안의 사제독신제에 대한 회의적 의견이 적잖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떤 논의로 발전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회법에 수정을 가하든 말든, 수도생활이 유지하는 정결의 생활양식은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정결"은 독신과는 또 다른 차원의 주제라 하겠습니다. 결국, 독신이 바람직하다 아니다의 논의는 교구 사제들의 삶과 관련해서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사제 독신에 관한 독자분들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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