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 신앙활동을 함께 했던 덕에,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근심에 쌓였습니다. 성당에서 예비자들을 위한 교리를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어릴 때부터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 왔고 지금껏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뭐 하나 자신 있게 안다고 할 만한 교리지식을 갖지 못했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경험에 비춰 보면 예비자를 위한 교리수업을 준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만, 함께 공부해 나간다는 태도라면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예비 신자들과 시간을 나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이 친구가 수업을 준비하느라 쉽게 읽을 수 있는 교리책을 한 권 구해 놓고 읽으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속풀이도 소재가 있어야 원고 작성에 탄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그 친구는 질문을 보내왔습니다. 그의 첫 물음은 "성령이 언제 오는가?" 였습니다. 의미를 풀어 보자면, 성령은 세례성사 때 오는지 아니면 견진성사를 통해서 오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성령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서 함께 계시다고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해서 그분의 현존을 자주 잊고 있을 뿐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성령에 관한 믿음과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때가 있으니, 바로 세례성사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때 우리는 모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 때문입니다.

▲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이처럼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적으로 좀 뒤에) 견진성사를 통해 성숙한 신앙인이 됩니다. 이때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해 주고 그 열매를 맺게 해 주는 성령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성장에 비추어, 신앙도 성장해야 한다는 단순한 구도로 이해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세례가 하느님 백성으로 탄생하는 사건에 중요성을 부여한다면, 견진은 성령의 능력과 그 능력을 통한 신앙의 성장에 무게를 둡니다. 이렇게 하여 견진성사는 세례성사를 완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견진이 세례성사를 완성시킨다는 말은 세례성사가 불완전한 성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드러난 구원(세례성사)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강림을 통해 그 결실을 내고 거룩해지는 것(견진)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견진 때에는 신앙을 용감하게 증거하며 필요하다면 순교까지도 불사하는 용맹을 성령을 통해 받습니다.

성사를 통해 볼 때, 성령은 우리의 세례 때에도 견진 때에도 오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세례와 견진이 하나의 예절로 집전되었습니다. 그 둘이 분리되어 집전된 경우는 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대에도 정교회에서는 세례와 견진을 하나의 예절에 넣어 행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그 둘이 분리된 성사로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예수님의 세례 사건과 성령강림 사건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가 있습니다.(가톨릭대사전 '견진성사' 항 참조)

예수님의 세례 사건은 당신의 죽음(물에 잠김)과 부활(물에서 나옴)을 예견한 사건인 동시에,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당신의 아들이라고 공적으로 인정하고 선포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고,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임을 인정받게 됩니다. 한편, 성령강림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성령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은총과 그 열매를 통해 교회와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봉사하는 것과 관계를 맺는 사건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례 때 받은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성령의 열매(성령의 은사가 맺어 주는 결실)를 통해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용기 있게 신앙을 증거하고, 불의와 맞서 싸우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등의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하느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어제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오늘 이해하게 되었을 때, 깊은 우울감에서도 희망을 보았을 때, 친구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었을 때,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을 것같은 동료와 기적같이 공존하고 있음을 인정할 때, 내게 잘못한 이를 용서해야겠다는 의지를 느낄 때 등등.... 눈을 감고 잠시만 내 주변의 일들을 돌아본다면, 내가 성령을 체험한 순간은 하루 동안에서 여러 번 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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