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약전 : 짧은, 그리고 영원한", 경기도교육청 약전작가단, 경기도교육청, 굿플러스북, 2016.

서각을 하고 글을 쓰는 지인이 시집을 냈다. '우는 시간'이라는 시에는 평소 작은 일에도 부끄럽다 말하던 그의 성정이 행간마다 담겨져 있었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에,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곳에서, 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그의 고백이 내 마음 같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삶의 곳곳에서 다가오는 부끄러움은 시간이 가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한 해를 마감하나 싶던 차에 “416 단원고 약전 : 짧은, 그리고 영원한”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 "단원고 약전 : 짧은, 그리고 영원한", 경기도교육청 약전작가단, 경기도교육청, 굿플러스북, 2016. (이미지 제공 = 굿플러스북)
세월호 관련 책은 이미 천 권에 육박할 정도로 출간되었다. 이런 문단의 노력이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서고, 그 사실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후대에 전달하려는 글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딘가에서 펜을 잡고 기억 투쟁을 하고 있는 일면식도 없는 작가들에게 무작정 고마웠다. “416 단원고 약전 : 짧은, 그리고 영원한”에는 무려 13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소설가, 동화 작가, 시인, 르포 작가 등으로 구성된 작가단은 지난 2015년 1월 약전 집필을 위해 '416참사 단원고 희생자 약전 발간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후 1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유가족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모아 글로 엮는 작업을 해 온 것이다. 유시춘 약전발간위원장은 “환하게 웃으며 수학여행을 떠난 그들이 어떤 꿈과 희망을 부여안고 어떤 난관과 절망에 부딪치며 살았는지 있는 그대로 되살려 내고자 했다.”라고 416 단원고 약전의 취지를 설명했다.

약전 작가단인 안재성 소설가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위해 안산으로 승용차가 들어서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그가 취재한 부모 중 누구도 자식과의 이별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글을 통해 유가족들에게도 인터뷰 자체가 지난한 과정이긴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작업에 앞서 유가족들과 작가단은 떠난 이들을 기록한다는 자체가 슬픈 작업임을 먼저 인정해야 했다.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유가족들은 글로나마 아이들의 흔적을 남겨 주려는 작가들에게 고마웠다. 달리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인터뷰를 하러 온 작가에게 수제비를 끓여 주기도 했고, 직접 뜨개질을 해서 가방과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자신들을 믿어 주고 다독여 주는 유가족의 마음 씀이 작가단에게도 버티는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유가족들과 작가단은 글을 쓰는 과정 내내 위로와 기록의 과정을 넘나들었고,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경계를 허물며, 1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서야 원고지 40매가 모여 1만 매가 되는 길고 고단한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지난 연말 책을 접하고 펼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집필 과정 자체가 아팠기에 문장마다 슬픔의 언어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지는 않을까 짐작하기도 했다. 약전을 통해 그동안 슬픔의 언어라 여겼던 모든 전제들이 허물어졌다. 분노와 좌절, 눈물과 통곡보다 소소하고 평범한 삶의 흔적이 실은 가장 아픈 언어였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학원에 다니겠다며 스스로 학원비를 모으고, 수학여행 비용으로 받은 돈 가운데 만 원을 봉투에 넣어 엄마, 아빠에게 돌려드리고, 학원 앞에서 자신을 무작정 기다리는 엄마 걱정에 문자 보내는 방법을 알려 드리고, 친구들과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문구점에서 파는 반지를 사서 나눠 끼고, 아빠의 양팔을 엄마와 나눠 베고 티브이를 보고, 새 옷을 먼저 꺼내 입은 언니와 다투고도 돌아서서 금방 화해하고, 수학여행 당일 날 일찍 출근하던 아빠에게 계란말이를 해 달라고 조르고.... 희생자들의 순수한 삶의 자리를 함께 거닐며 웃었다가, 여느 10대들과 다르지 않던 모습에 흐뭇했다가, 그들만의 오늘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란 생각이 들면 책을 덮고 울었다.

책을 다시 펼치면 평범했던 오늘이 다시 올 수 없음에 무너지기 일쑤였지만 이내 다시 보고 싶었다.

“416 단원고 약전 : 짧은, 그리고 영원한”은 출간되고 가장 먼저 416가족협의회 유가족들과 합동분향소 희생자 영전에 헌정되었다. 유가족들의 육성을 기록한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원고 희생자 전원의 삶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유일무이한 작업으로 남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별처럼 빛나던 이들의 “오늘”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을 보내고도 남겨진 이들은 1000일 가까운 시간을 더 살았다. 이미 실컷 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던 것은 아닐까. 이제 남은 오늘은 덜 부끄러웠으면 하고, 다시 책을 펼친다.

 
 
홍서정
아이들이 좋아 다시 시작한 공부는 서른이 돼서야 끝났지만 꿈이라 여겼던 일을 타고난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금방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에 살아서 번동댁으로 불리며 또 다시 꿈을 그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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