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어느 동네에 가든지 우리는 쉽사리, 건물로서 성당이나 개신교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회 건축 양식을 보면 일반적으로, 외형상 종탑(종루)처럼 보이는 다른 부분보다 키가 큰 첨탑 부분을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실제로 종이 있을까요? 있다면 종을 사용하긴 하는 것인지를 질문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종교의 맥락에서, 종을 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할 시간"을 일깨워 주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처럼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거나 결혼식과 같은 축제를 알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죽은 이를 위한 '조종'도 있습니다.

종탑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과 시간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수도원 공동체, 교회 공동체, 마을 공동체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으기를 기대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교회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1960-70년대는 있었을지 몰라도 요즘엔 경험상, 사실 그런 곳은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서는 주일 아침에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실제 종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부친의 지인 중에는 시골 공소에서 종지기 역을 하셨다는 분도 계셨던 것 같은데, 그분이 치신 종은 학교 종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종이 크건 작건 간에, 그리스도교 전통이 오래 이어져 온 상황이 아닌 우리의 문화 안에서 교회에 실제로 주조된 종이 걸린 예는 매우 드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종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십중팔구 그것은 타종으로 생기는 실제음이 아니라 녹음된 종소리가 높은 출력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 명동성당같이 고딕 양식 건물에는 종탑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왕기리 기자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같은 종교 안에서도 다양한 종파, 같은 종파 안에서도 각각 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각각 다른 시간에 경쟁적으로 종소리를 냈었나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하여 살아가는 도시에서 특정 종교, 특정 교회의 존재를 알리는 종소리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아졌고, 급기야는 그러느니 모두 소리를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해 볼 수 있겠습니다. 실제 종이든 녹음된 종이든 몇몇 곳을 빼고는 종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오래된 (특히, 고딕 양식의) 교회에는 더 이상 기능을 하지는 않지만, 종탑에 실제로 종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당의 종은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거나 미사 시간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명동성당은 삼종기도 시간에 맞춰 종소리를 들려 줍니다. 그 소리는 녹음된 것을 시간에 맞춰 틀어 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어진 역사가 짧아도 종탑에 종이 있는 성당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기억엔 서울대교구 포이동 성당이 그런 곳입니다. 그 성당에는 본당과 분리되어 종탑이 배치되어 있고, 그 종은 시간에 맞춰 칠 수 있도록 타이머로 조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옛날에는 종지기가 시간에 맞춰서 쳤다면, 알람에 맞춰서 기계적으로 치는 것이 오늘의 양상이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울리는 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교회의 종소리보다 오히려 산중으로부터 저음으로 울려오는 사찰의 범종 소리를 듣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그건 오래된 우리의 문화이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범종 소리가 온 우주를 깨우기도 하고, 잠재우기도 하는 소리라고 설명합니다. 한 해에 한 번이기는 하지만 보신각의 종소리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종소리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보낼 시간과 맞이해야 할 시간을 구분해 주는 소리입니다.

제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종소리가 있습니다. 그리스 파트모스 섬에서 동이 트던 새벽에 들었던 것입니다. 제 세례명의 주인공, 사도 요한은 자기가 환시로 본 내용을 젊은 제자를 시켜 받아 적게 하여 하나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요한 묵시록입니다. 서품 받던 해에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예수회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제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 달레시오 신부님이 강력 추천을 하셔서 가 봤습니다.

8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아테네 항을 오후 두 시 무렵에 떠난 배가 열두 시간의 항해를 거쳐 깊은 밤에 저를 이 섬에 내려 놓았습니다. 홀로 민박에 드는 것도 사치스레 여겨져서 섬의 정상부에 있는 요한 수도원 근처에서 노숙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이 들었었는데, 저를 깨운 것이 수도원에서 새벽기도를 알리는 종소리였습니다. 종소리에 깨었다가 다시 선잠이 들었는데, 그 다음에 저를 깨워 움직이도록 만든 것은 지나가던 양 떼의 목에 걸려 있던 작은 종소리였습니다. 섬에서 맞이한 청량감 넘치는 아침에 하느님의 어린양을 만났던 소리였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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