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팀 버튼, 2016. (이미지 제공 = 이십세기폭스 홈엔터테인먼트 코리아)
생의 한 순간에 머무르고 싶은 적이 있던가. 지금 이 시간이 무한히 계속되어 내가 느끼는 이 충만한 행복감을 영원히 누리고만 싶은.... 현재를 부여잡고 싶은 마음은 공간의 상상력으로 확장되어 지금 나를 둘러싼 공기는 바로 눈앞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단절된 듯한 느낌들....

팀 버튼의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1943년 9월 3일이라는 하루를 무한 반복해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임브린’이라고 불리는 시간조종자 중 한 명인 미스 페레그린은 ‘별종’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러한 시간 루프를 만든다. 매일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늙지 않고 영원히 아이로 살아간다.

‘별종’ 아이들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 헬륨 풍선처럼 둥둥 떠다닐 정도로 몸이 가벼워 무쇠 신발을 신어야 하지만 공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엠마, 손에서 불을 일으킬 수 있는 올리브, 식물을 순식간에 자라게 하는 피오나 등. 어떤 아이들은 천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어떤 아이들은 괴기스러운 모습이다. 고립되고 쓸쓸한 유년 시절의 감성을 그로테스크한 영상으로 보여 온 팀 버튼 감독의 영화답다.

안전하게 유폐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던 아이들은 그러나 시간조종자 ‘임브린’들을 납치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하는 바론 일당과 괴물들로 위험에 처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욕망은 지금까지 수많은 판타지 속 악당들의 욕망이었다. 클리셰라고 하기에도 너무 뻔하지만 끊임없이 영생과 불사의 욕망이 이야기되는 건 바로 그것이 시간 앞에,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 존재와 인간의 고뇌를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모든 종교가 유한한 인간 존재에 관한, 즉 인간의 죽음에 관한 물음의 대답인 것처럼.

실은 ‘별종’ 아이들이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 살며 영원히 아이일 수 있던 것 또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또 하나의 방법 아니었을까. 그러한 영생의 욕망이, 또 다른 욕망과 함께 투영된 것처럼 보인다. 세상살이에 지친 어른으로 살다 보면 문득 평온하고 안전했던 유년기를 그리워하고 유년기로 되돌아가고 싶어지는 욕망 말이다. 가냘프고 외로운 사람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누구에게도 사랑받거나 공감 받지 못한 유년기라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러해서 자꾸 유년기에 집착하게 되는.... 감독 자신이 그러했다고 말하듯이.

하지만 그건 퇴행의 함정을 지닐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별종’ 아이들이 사는 집에서 유일한 어른은 시간조종자인 미스 페레그린이다. 물론 미스 페레그린은 시간을 조종해 괴물이나 전쟁의 폭격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간을 초 단위로 통제하는 미스 페레그린의 지시에 따라 똑같은 시간에 울리는 뻐꾸기 시계마냥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어른에게 보호받을 수 있는 유년기는 어른의 통제와 간섭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팀 버튼, 2016. (이미지 제공 = 이십세기폭스 홈엔터테인먼트 코리아)

미스 페레그린이 바론 일당에게 납치되고 나서야 아이들은 유일하게 괴물을 볼 능력을 지닌 주인공 제이크와 힘을 합쳐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고, 미스 페레그린과 다른 ‘임브린’들을 구한다. 어른의 보호나 도움 없이 어린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엠마는 2016년에서 1943년으로 넘어온 주인공 제이크에게 자신들의 세계에 남아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애원했었다. 하지만 미스 페레그린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승리의 경험을 얻은 뒤에는 “우린 용감해졌으니 우릴 지켜주지 않아도 돼”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미스 페레그린이 만든 시간 루프가 파괴되어 이제 아이들은 여느 인간처럼 늙어야 할 운명일지 모르는 미래를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항해한다.

영화는 유년기를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어른의 마음을 담으면서도 그 마음이 현재를 살아가는 어린이의 성장을 가리지 않게끔 섬세하게 애쓰고 있다. 어른의 ‘동심’과 현실 속 ‘어린이의 마음’은 늘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구분하며 서로 대화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기억해 본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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