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가톨릭에는 전통적으로 베네딕도회(한자를 차용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분도회라고도 불립니다)를 시작으로 그 계열의 수도회(베네딕도회, 카르투시오회, 시토회 등)들과 다양한 영성, 그 생활양식에 따른 여러 종류의 수도회가 있습니다. 이 수도회들은 언뜻, 비슷한 듯하지만 약간씩 형태나 색이 다른 수도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네딕도회 계열의 수도회에서는 고깔(cowl 혹은 hood)이 달린 기본 수도복에 스카풀라(scapular)를 입습니다. 스카풀라는 양어깨에 걸쳐서 배와 등을 가리는 천입니다. 보통 무릎 높이까지 가리며, 배와 등에 같은 길이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천의 한가운데에 머리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습니다. 양어깨를 덮는 기능과 앞치마 용도에서 발전한 의상이라고 합니다. 여자 수도회의 수도복도 비슷한 형식에서 유래합니다. 고깔 대신에 머리를 가리는 베일을 씁니다. 스카풀라 착용 여부는 수도회마다 다릅니다. (수도복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분들은 베네딕도회에서 실시하는 피정에 참가하여 수도복 체험을 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가톨릭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각 수도회가 제각기 유니폼으로서 수도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창설된 수도회들 중에는 특정 수도복을 규정하지 않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그런 예로, 제 소속 수도회인 예수회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초기 예수회원들이 입었던 복장은 검정색 수단(cassock)인데, 교구 사제들이 입는, 단추가 많은 형태의 수단이 아니라 목 부분만 단추로 채우고, 나머지 부분은 포개어 허리띠로 묶는 형태였습니다. 유래는 파리대학교 학생들이 입었던 교복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 고깔 달린 수도복을 입은 수사들의 모습. (이미지 출처 = 재속프란치스코회 75주년 대축제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다른 수도회는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예수회원으로 살면서 검정 수단을 일상적으로 입었던 때는 두 해 동안 수련원에서 지낸 기간이었습니다. 입회하고 한 열흘간은 사복으로 전례에 참여하면서 내가 입회를 하긴 한 건가....? 하는 어리둥절함을 느끼며 지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그 수단을 착복하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옷이 뭐라고.... 아무튼 착복식을 하고 나니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원을 하고는 수단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수련원 시기 이후에는, 행사를 위해 수단을 빌려 입은 경우를 빼고는 남들과 같이 사복을 입거나 로만 칼라를 하고 지낼 뿐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 복장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역적 풍토에 맞춰 입기도 하고 안 입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회의 제 27대 총원장이셨던 페드로 아루페 신부님이나 28대 총원장이셨던 피터-한스 콜벤바흐 신부님은 줄곧 예수회원들이 입었던 검정 수단을 입고 세계를 누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전통적인 수도사의 복장이 수도자다움을 보여 준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부제품을 앞두고 프랑스 서북부의 유서 깊은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성삼일 피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피정의 클라이맥스였던 부활성야미사에 참석했을 때, 베네딕도회 소속이 아니더라도 수도자라면 고깔이 달린 수도복을 입고 수도자석에 앉을 수 있도록 그곳의 수사님들이 배려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고깔이 달린 수도복을 입어 볼 수 있었고, 그때 마음에 일었던 감격을 기억합니다.

어쩌면, 제게는 전통적 수도복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복장을 일상적으로 입고 살아가는 수도자들은 더욱 많은 의미를 새기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후드가 달린 수도복은, 우선 세속과 선을 긋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추우면 머리를 가리는 용도가 아니라 세상으로 돌리는 시선을 차단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더불어 요즘에는 노동을 할 때, 편안한 작업복을 입지만 옛날에는 수도복(혹은 그에 준한 작업복)을 하고 단순 노동을 했습니다. 즉, 삶과 기도가 하나임을 일상에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수도회의 생활방식은 봉쇄(cloister)의 삶과 단순한 삶을 지향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런 수도회에서 사는 수도자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수도승'(monk, 여성 수도승은 nun)이라 칭합니다. 이분들의 생활양식에는 기본적으로 은둔자의 분위기가 깔려 있습니다.

▲ 봉쇄 수도회인 트라피스트 수녀원 수녀들이 바깥으로 나와 경남 창원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지금여기 자료사진)

반면에, 여러분이 경험하시듯이 세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보통 수녀(sister), 수사(brother)라고 불리며, 일반적으로 수도자(religious, 수도승도 수도자의 범주에 들지만 세속 수도자들을 수도승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이들의 생활방식은 세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신앙을 함께 나누며,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여자 수도회원들은 보통 소속 수도회의 유니폼을 입고 활동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자 수도회원들은 특정 복장이 아예 없거나, 수도원 공동체 안에서 전례 때에만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복장으로 활동합니다.

수도복은 수도생활을 하는 이에게 자신의 신원을 알려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이라면 착복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수련원 시기를 벗어난 예수회원들은 수도복(단추 없는 검정 수단) 대신에, 활동하는 사목 영역에서 성직자들이 착용하는 복장을 정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수도회의 공식적인 행사 때는 검정색 상, 하의에 로만 칼라가 정복이 되는 셈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여자 수도회들도 세속에서 활동하면서 수도복을 입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 다양한 고민들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수도회는 과감하게 수도복을 포기하고 일상복을 택하였고, 어떤 수도회는 활동하는 나라의 현실을 토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결정을 열어 놓았고, 어떤 수도회는 수도복을 입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여겼습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생명이 존중받고, 누구도 함부로 존엄함이 위협받지 않으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이 그 본질을 유린당하지 않도록 힘을 모으고 있는 많은 이들 중에 수도자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현장에 이들이 보여 주는 수도복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 여러분과 다를 바 없는 복장으로 함께 하는 수도자들과, 같은 현장에는 없을지라도 기도 안에서 마음을 모으고 있는 수도승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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