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2]

유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다.

“어머니, 욜라가요.... 음, 욜라가....”

선생님은 어떤 말을 하기 전 뜸을 들이고 계신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일까. 안 그래도 요새 욜라가 유치원을 너무 잠자코 다녀서 걱정이었는데 드디어 사고를 친 걸까? 어찌 됐건 사건은 이미 벌어진 것 같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숨을 고르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욜라가 소금쟁이를 잘 잡더라구요. 어머니!”

선생님의 격양된 음성으로 보아 그것은 유치원 한 학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욜라의 여섯 살 인생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일인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유치원이 개미 한 마리에 울고 웃는 곳이긴 하지만 난데없이 소금쟁이라니, 나는 조금 실망했다. 한편 너무 별일이 아니어서 깜짝 놀란 것도 사실이다. 선생님이 하신 ‘욜라가 소금쟁이를 잡았습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 지으면 되려나. 아니, 어쩌면 소금쟁이는 단순한 은유일지 모른다. 오늘의 요리에 앞서 식욕을 돋우기 위해 나오는 에피타이저 같은.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욜라와 소금쟁이’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불의의 사건 사고를 생각해 내려 애썼다. 그리고 반대로 욜라가 소금쟁이를 잡음으로써 받음직한 세간의 호평과 개인적 영광에 대해서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어떤 것과도 딱히 상관없을 거라는 데 썩 믿을 만한 게 못되는 내 직감이 발동하고 있었다. 물론 모기 한 마리에서 태어난 쥬라기 시대의 공룡이 철창을 뜯어 발기고 뛰쳐나와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니는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나 영화 속의 일이니까. 선생님은 그런 내 마음을 훤히 알겠다는 듯 ‘소금쟁이 잡이 욜라’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 왼쪽 검은 옷 입은 아이가 욜라다. ⓒ김혜율

때는 유치원 마당에 실개천이 흐르고 아이들은 물이라면 일단 뛰어들고 보는 여름날의 초입이었다. 소금쟁이가 창궐해 실개천 여기저기 동그란 물결을 만들며 세력 다툼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호기심 강한 몇몇 아이들이 실개천에서 텀벙대다 소금쟁이 떼를 발견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아이들은 곧 물 위에 떠다니는 이 낯선 벌레에 매료되고 만다. 그리하여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벌레를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는 ‘소금쟁이 잡기’ 놀이는 어느덧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놀이로 떠오르게 되는데...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어느 엄마가 단체 카톡방에 올린 ‘실개천에서 놀고 있는 열매반 친구들’ 사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는 실개천에서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딴짓을 하는 욜라를 보았을 뿐이다. 어쨌든 다시 소금쟁이 잡기로 돌아가면 애석하게도 아이들의 손놀림은 소금쟁이가 튀는 속도에 못 미쳤다. 급기야 소금쟁이 잡기에 번번이 실패하는 아이들을 보다 못해 선생님마저 두 팔 걷고 나섰는데, 날이면 날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소금쟁이를 잡는 일은 선생님에게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고.

그렇게 오늘도 선생님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려는 일념으로 소금쟁이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엄마가 그동안 물신을 빨리 안 사 줘서 실개천에 발을 담그지 못했던 욜라가 할머니를 졸라 산 떠돌이 방물장수표 물신을 신고 당당히 실개천에 들어온 날이기도 했다. 욜라는 아이들 가운데에 끼어 소금쟁이를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욜라는 심드렁한 얼굴로 소금쟁이들의 퇴로를 막더니 아무렇지 않게 소금쟁이를 한 손으로 슥슥 잡아 올리는 것이었다. 욜라에게 소금쟁이는 너무나 느린 족속 같았다. 잡는 속도를 볼라 치면 선생님이 한 마리 잡을 때 욜라는 두 마리를 잡는 격이었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으랴.

실로 욜라는 소금쟁이의 천적이었고 순식간에 실개천의 생태계를 뒤흔들어 놓는 무법자였다. 아이들이 욜라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한 것은 당연지사.(이 대목에서 선생님은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하지만 욜라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소금쟁이를 잡는 데만 열중했다. 소금쟁이를 한 마리만 갖게 해 달라는 아이들의 요청이 쇄도했고 욜라는 그에 일일이 응답했음은 물론이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욜라가 그렇게 오늘 열매반의 에이스가 되었습니다’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덧붙여 이번 일은 아이들이 욜라에 대해 새삼 주목하게 된 의미 있는 사건이라 평하셨다. 무엇보다 평소 자신의 능력에 확신이 없어 보이던 욜라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도 하셨다. 아아, 선생님은 소금쟁이 그 너머 공룡만큼 큰 그림을 보고 계셨던 것이다.

▲ 소금쟁이 잡기로 열매반 에이스가 된 욜라. ⓒ김혜율

‘소금쟁이 잡이 욜라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항상 반 박자에서 한 박자 반 정도 행동이나 반응이 느린 편인 욜라가 벌레 잡는 데는 손이 그토록 빨랐다니. 작년 장마 때 수시로 집 안으로 들어오던 청개구리랑 놀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욜라는 소금쟁이를 잡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 녀석은 남 앞에서 좀체 감정을 드러내진 않지만 이번엔 저도 어쩔 수 없이 기쁘지 않았을까? 나는 선생님 말대로 욜라가 그 이후 오랫동안 열매반 에이스로 승승장구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후 욜라는 나뭇잎 아래 숨어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며 잠깐씩 아이들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소금쟁이 때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소금쟁이 잡기에 시들해지게 되면서 욜라의 인기도 하락세에 접어든 것 같다. 아, 한낱 인기 따위, 부질없어라. 그에 따라 유치원에 가는 욜라의 표정이 다시 침통하게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유치원 가는 길. 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씻던 욜라가 말했다.

“엄마, 나는 우리 반 미미(가명, 6세 여아)랑 친구가 되고 싶어.”

나는 이럴 때 호들갑을 떨면 본전도 못 찾는걸 알기에 최대한 무심하게 대꾸했다. 열린 창 밖으로 말들이 날아가 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어어, 그래. 차 덜컹거린다. 중심 잘 잡아. 아 그리고.... 선물을 해 보지 그러니. 예를 들면.... 소금쟁이라든가.”
“....”

욜라는 말이 없었다. 백미러로 보이는 욜라의 얼굴은 좀체 납득이 되지 않는 표정이다.
아차차, 언제적 소금쟁이냐. 내가 너무했네. 얼른 다른 좋은 방도를 제시하는 것으로 수습해야 했다. 욜라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싶기도 했고. 이번에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 소리에 말을 섞었다.

“저기 덤프트럭 온다.... 후웁! 욜라야, 창문 닫아! 음.... 아니면 색종이를 접어 주는 건 어떨까. 너 저번에 보니까 지갑 잘 접더라? 누나도 지갑 좋아했잖아.... 그 애도 좋아할 거 같은데....”

욜라의 얼굴에 약간의 동요가 느껴지지만 얼굴이 썩 밝지는 않다. 종이접기로는 어림도 없는가 보다. 흐음, 안 되겠다. 그럼 이쯤에서 아들에게 전수하는 엄마의 조언이 들어가야겠네. 조언의 부제는 ‘매력적인 남자 친구가 되는 법’이다.

▲ 아이들이 소금쟁이 잡기에 시들해지면서 욜라의 인기도 하락세에 접어든 것 같다. ⓒ김혜율
“욜라야, 잘 들어.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가만 있으면 안 돼. 먼저 ‘안녕?’하고 인사를 해야 하는 거야. ‘안녕? oo아.’하고 이름을 불러. 너도 친구가 네 이름 부르면서 크게 인사하면 기분 좋아 안 좋아? (욜라: 좋아.) 거 봐! 그 다음엔 평소에 친구를 잘 관찰해야 돼. 친구가 뭘 좋아하는지. 그래, 그 미미란 아이는 무얼 좋아하는 것 같아? (욜라: 엄마아빠 놀이.) 아하! 그럼 너도 엄마아빠 놀이를 해. 아마 그 아이가 가짜 요리를 만들어서 먹어 보라고 하겠지? 그럼 맛있게 먹어야 돼. ‘얌얌얌, 우와 맛있어요. 또 주세요.’하고. 욜라야, 방금 엄마가 말한 거 따라해 봐. (욜라: 싫어.) 음, 알았어! 여튼 그렇게 하면 친구가 기분이 좋겠지? 그리고 어느 날 그 애가 울 때! 욜라야, 그 애 우는 거 봤어? (욜라: 아니.) 음, 그래도 언젠간 울 날이 있을 거야. 그럼 그때 그냥 보고만 있음 안 된다. 가서 달래 줘! ‘뭐 속상한 일 있어? 울지 마~ 괜찮아.’ 하는 거지. 훗,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욜라야? 욜라야! 엄마 말 듣고 있니?”

욜라는 어느새 딴 세상. 카 시트에 앉아 있는 로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장난을 치다 성난 로한테 응징을 당하고 있다. 두 아이의 몸싸움에 안 그래도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리느라 힘든 차가 더 심하게 흔들리는 것 같다.

“그만, 그만해! 둘 다 그만하라고! 아니면 여기서 내려 걸어가!”
“싫어! 안 걸어가!”
“길 따라가다 보면 유치원 나올 건데 뭐가 문제야? 갑자기 멧돼지가 나타날 수는 있겠지만....”
“싫어, 나 안 걸어가. 엉엉엉.”

옥신각신하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다 되었다.

“아이구, 욜라야. 다 왔다. 이제 그만 유치원 들어가라. 방금 친구들 들어가더라.”

욜라가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서 간다. 그런데 똑바로 가도 긴 거리를 갈지자로 걸어간다.

“욜라야, 뛰어가. ....뛰어! 뭐 하니? 뛰라니까. ”

욜라는 말을 안 듣는다. 타박타박 걸어가며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땅 한 번 굴러 보고, 길가에 꽃나무도 건드렸다가 줄지어 가는 벌레를 따라간다.
와, 끝까지 안 뛰고 걸어가는 것 좀 봐. 저 유치원 지각생 녀석. 저 봄날의 아기 곰같은 녀석! 나는 유치원 건물 안으로 사라져 가는 욜라를 사랑 듬뿍 담은 눈길로 째려봐 주었다.

▲ 끝까지 안 뛰고 걸어가는 욜라. ⓒ김혜율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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