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월 2회 오두희 씨가 보내오는 강정 마을 이야기를 싣습니다. 강정 마을 파수꾼들의 인터뷰와 마을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강정의 평화운동을 기억하도록 소식을 알려 주시는 오두희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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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작된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올해 10년을 맞이했다. 더불어 강정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도 10년을 맞이했다. 길거리 매일미사가 봉헌된 지 7년째다.

하지만 2016년 3월 공사가 완공되어 제주 해군기지 전단이 창설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끝난 것 아닌가’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창설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엄청난 변화가 왔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군사기지화에 대한 우려, 잠식해 들어오는 군사문화로 인한 마을 공동체의 변화, 유치과정에서 이루어진 탈법, 불법 등에 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 현안이 쌓여 있다.

이전까지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에 대한 투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제주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강정지킴이들은 오늘도 매일 오전 7시 평화 100배, 11시 천막 미사, 12시 인간띠잇기 등 ‘구럼비 기억행동’을 통한 평화 활동과 강정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반평화이고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은 많이 지쳐 있다. 이런 속에서 봉헌되고 있는 ‘강정 생명평화미사’는 강정의 평화를 지키는 큰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점점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 잊히고, ‘다 끝난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촉구하고, 강정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드리기 위해 앞으로 강정 길거리 미사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오두희

▲ 문창우 주교 (사진 제공 = 오두희 씨)
지난 6월 28일 천주교 제주교구 부교구장에 임명된 문창우 주교가 7월 15일 강정 미사 천막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문 주교는 광주가톨릭신학대에 재직할 당시에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수업이 없는 토요일 강정 길거리 미사를 집전했었다. 미사 뒤 지킴이들과 함께 인간띠잇기를 하고, 삼거리 식당에서 공동식사를 하면서 마을 사정을 들으며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주교로 임명된 뒤 강정에서의 첫 미사로, 8월 15일에 있을 제주교구 부교구장 서품식 준비로 바쁜 와중에 강정을 찾은 것이다. 문 주교는 길거리 미사를 통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왔다’고 운을 떼며 주교 임명에 관한 감격과 소회를 나눴다.

문 주교는 강론에서 “하느님이 큰 사고를 쳤다”며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 “온몸이 떨렸지만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에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그때의 감격을 전했다. 그리고 “강정은 나에게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며 “인간의 욕망 때문에 소리 없이 죽어가는 구럼비 바위에서 죽어가는 생명의 울부짖음이 마음으로 생생히 다가왔고, 애쓰시는 분들의 진심을 만나면서 강정마을은 조금씩 제 마음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사제로 살아가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시간이었다”고 강정에 대한 인연을 말했다.

문주교는 차가 씽씽 지나 다니고 매연과 소음이 가득한 길거리에서 초라하게 봉헌되는 미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하는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비록 초라했지만 강정 생명평화미사는 십자가의 제사를 온전히 재현하는 그래서 미사의 본질적 의미를 고스란히 담은 아름답고 거룩한 살아있는 미사였다”고 되새겼다.

이처럼 한 달에 한 번 강정을 찾은 문 주교는 시간이 더해지면서 강정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에 공감하게 되었고, 허름했지만 거룩했던 강정 현장 미사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실천하는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갔다며, 강정마을의 평화를 외치고 하루하루를 일궈 가는 사람들이 던지는 시대적 의미를 깊이 성찰하며 주교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문 주교는 복음에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처럼, 간절한 믿음과 희망을 품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한 하느님의 정의는 이 땅에 실현될 것이라며 강정 거리 미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참된 신앙은 하나의 선택의 연속이다"라고 문 주교가 말했듯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며 교회의 일원이면서 책임자로서 어떻게 실천으로 옮기며 살아갈지 기대해 본다.

▲ 제주교구 부교구장에 임명된 문창우 주교가 7월 15일 강정 천막 미사를 집전했다. (사진 제공 = 오두희)

<문창우 주교 강론 원문>

찬미 예수 정말로 반갑습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제가 주교로 임명되어 이곳 강정을 찾게 되어 함께 계신 문정현 신부님과 예수회 신부님들, 그리고 평화활동가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이 참으로 오묘하고도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제 인생에 정말 큰 사고를 치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능력과 열정이 많은 다른 신부님들이 있는데도 너무나 부족하고 결점투성이인 저를 교구의 부교구장 주교로 선택하셨습니다. 저는 지난 21일 교황청 대사관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 다음 날 아침까지 올라오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통보의 상황이 2-3개월 전부터 교구장님의 겸손한 요청으로 비밀리에 두 차례 새 주교를 뽑으려는 사전조사가 있었고 나름대로 좀 더 면밀한 조사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사관에 도착하는 순간, 교황대사님이 직접 읽어 주시는 교종 프란치스코가 제게 보내 주신 편지글을 들으며 감격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함께 소성당으로 이동하여 제게 교종 프란치스코가 전해 주신 주교의 새로운 직무에 대해 정말 동의하는지를 물었고 다시 제 머리 위에 대사님의 손을 얹어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저를 정성껏 안수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제 앞에 펼쳐진 엄청난 상황에서 생긴 일에 대한 감격과 함께 계속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온몸이 전율 되면서 저는 끊임없는 찬미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이어 저에 대한 개인 서류들에 대한 확인과 다시금 대사님이 당부하시는 교종 프란치스코가 당부하는 겸손한 주교로서의 직무에 있어 필요한 사항들을 열거하시다가 갑자기 다시 대사님은 강우일 주교님께 전화를 걸어 이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다시금 축하와 함께 제주교구에 부교구장 주교가 난 것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핸드폰으로 제게 휴대폰이 건네어 졌습니다. 너무나 떨리고 엄청난 상황이라 말이 나오지 않았고 “제가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울먹이자 주교님은 괜찮아,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하며 자네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격려하셨습니다. 이어진 시간, 대사님과 비서인 몬시뇰과 함께하기로 한 점심을 앞두고 저는 남은 시간을 내어 다시 소성당으로 가서 성체 조배를 하였습니다. 정말 계속해서 내게 일어난 일이 가능한 일인가? 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어진 점심 식사는 어디로 음식이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사님께서는 편안하게 저를 계속 다독거리시며 앞으로 강우일 주교님과 함께 제주교구의 미래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기 위해 축복하고 계시니 제게 진심 어린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후 저는 대사관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오는 내내, 엄청난 사건이 제게 닥친 것을 느끼며 어떻게? 어떻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묵상하며 보내고 있던 당시 6월 생활말씀인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말씀을 음미하며 말씀의 강한 힘이 다시금 느껴졌습니다.

이제 여기 계신 분들에게 정말 기도 중에 부족한 저를 많이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론 누군가에게 이렇게 새로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닥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나의 뜻에 매몰되는 삶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구체적으로 선택하며 사는 삶에서 더욱 충만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의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속적인 가치들, 가령 물질적 욕망과 이기적 탐욕을 이끌어내는 재산, 명예, 건강 등에 매달린다 해도 인간은 한 번은 자신이 믿던 그런 가치들로 인해 받게 될 고난을 넘어서는 영적인 결단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영적 공허감을 느끼고, 자기 삶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깨달을 때 신앙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됩니다.

무엇보다 선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살이에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모순들을 생각하면, 신앙은 그런 가운데 참된 삶의 가치란 세속적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 있는 참된 기쁨임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 복음의 빛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시는 것처럼 지난 10여 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곳 강정은 딱히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제주도의 한 마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주 신학교에서 듣게 된 강정의 현실은 점점 더 저를 이곳으로 이끌어왔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어 강정마을에 들러 강정의 아름다움을 만나면서 또 인간의 욕망때문에 소리 없이 죽어가는 구럼비 바위에서 죽어가는 생명의 울부짖음들이 마음으로 생생히 다가왔습니다. 또 그 소중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켜 내기 위해 한마음이 되어 애쓰시는 분들의 진심을 만나면서 강정 마을은 조금씩 제 마음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저는 이곳 강정에 매달 한 번씩 가능한 한 들렀는데 그때마다 강정은 내 마음에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우리는 강정 마을 미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뜻밖의 저에게 찾아온 주교임명은 너무나 무거운 짐임을 생각하면서도 주님께서 저에게 보내시는 소명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동안 강정을 찾아 온전히 동참하지 못한 미안함,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이 세대의 논리를 막는 데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 등 사제로 살아가는 시간에서 강정을 향한 걸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사를 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현수막들, 이 강정 마을에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하는 마음 깊이 다가오는 모든 성찰, 왜 이곳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지 함축적인 언어로 전달해주고 있었습니다.

늘 미사에 참여하면서 자리를 잡았을 때 매번 많은 분이 건네는 연대의 힘과 옆에서 마이크를 들고 성가를 불러 주시던 수녀님과 선교사님과 자매님들, 차가 늘 씽씽 지나다니고 매연과 소음이 가득한 그래서 거룩한 분위기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함께 모여 미사를 드리는 가운데 다가오는 뜨거움은 마음 안에 담긴 우리 모두의 염원들인 이 미사를 살아있는 미사로, 가장 거룩한 제사로 만들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매번 초라하게 바쳐지는 미사였지만 이 미사는 십자가의 제사를 온전히 재현하는 그래서 미사의 본질적인 의미를 고스란히 담은 아름답고 거룩한 미사였습니다. 한때 철조망에 꽂혀 있던 “강정마을에 평화의 바람을”이란 문구 그리고 누군가 꽂아 놓은 여러 조화.... 그렇게 철조망으로 상징되던 강정의 현실, 평화를 염원하며 바치는 매일의 정성스러운 봉헌 미사, 그 희망의 염원들이 만들어 낸 희망의 꽃 한 송이!! 이러한 강정의 풍경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상징적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매번 미사가 끝나면 공사현장을 향해 그리고 해군기지를 향해 강정의 평화를 빌며 바치는 묵주기도를 인도하는 분들, 미사와 함께 자세를 흩트리지 않은 채 마음 안에 담긴 간절함을 지켜볼 때, 보는 사람마저 숙연함을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강정 마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마을 중 하나라고 봅니다. 언제나 희망을 품고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강정 마을에 모여 매일의 미사와 더불어 기도하며 하느님의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함께 노력하고 있기에 분명 하느님의 정의는 이 땅에서 실현되리라 믿습니다.

주님 안에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박해받을 때를 대비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격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에 하느님의 힘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겪은 고통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위협과 반대는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는 육신을 잃는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하고 마카베오기 하권 7장 14절은 전해 주고 있으며, 수많은 순교자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이유는, 우리 삶을 계획하시고 보살피시는 아버지 하느님이 분명히 우리를 지켜 주시고, 당신 메시지를 전하는 데 필요한 은총과 용기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리며, 주님의 메시지를 기꺼이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됨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교황청 매스컴위원회 위원이었던 매클루언(M. McLuhan)은 "미디어 이해"라는 책을 통해 유명해졌는데, 그 원리가 어렵지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쓰는 모든 도구는 인간의 ‘확장’입니다. 자동차는 인간의 다리가 확장된 것이고, 굴착기는 인간의 팔이,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가, 마이크는 인간의 입이 확장된 것입니다. 그와 함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원리를 받아들인다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미디어이고, 예수님의 확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우리는 밝고 넓은 데서 말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을 지붕 위에서 외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그 삶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메시지를 의미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 입은 예수님의 손과 발, 입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앞서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삶으로 옮겼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나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이 하루 동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성찰해 봄도 하루를 사는 데 유익할 것입니다. 끝으로, 이 시대에 주님의 메시지를 두려움 없이 전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시 한 편 들려 드립니다.

러시아 시인 , 푸쉬킨(1799-1837)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오두희
(강정 지킴이, 평화바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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