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현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지난 주말에 접하고, 월요일에 부고를 준비했다.

김군자 할머니의 세례명은 요안나.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2016년 1월 1일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유흥식 주교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위로 방문했을 때, 이옥선 할머니와 함께 특히 주목받았던 분이다.

유 주교의 나눔의 집 방문은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지만 국내외적 비판에 부딪힌 한일 외교장관회담 직후로, 이 회담을 비판하고 상처받은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때 취재했던 나의 취재수첩에 김군자 할머니의 특별한 발언이 남아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로 열심히 살펴봤지만, 아쉽게도 기사에 담기 쉬운 내용은 없었다. 김 할머니가 유 주교에게 자신의 방을 보여 주고, 축복과 안수를 받는 모습은 사진으로 남았다.

이옥선 할머니가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꺼낸 데 비해, 당시 90살로 휠체어에 앉아 계신 김 할머니의 말씀은 짧았고, 알아듣기 어려웠다.

“앉아서 기도하는데.... 사람이 하는 것 같아요. 광(?)은 안 준대요. 너무 이상해서.... 사람이 하는 것처럼, 광을 안 준다고.... 캄캄해.”

거실에서 이뤄진 만남 시간에 김 할머니가 한 말씀이다. 이날 만남을 거들어 준 나눔의 집 관계자는 김 할머니가 매일 기도하는데 무엇인가 보였나 보다며, 할머니가 최근 침울해 했는데 ‘왜 빛이 보이지 않는지’ 묻는 것 같다고 보충 설명을 해 줬다.

내가 잘 몰랐던, 깊이 관심을 갖지 못했던 할머니의 삶을 A4 1장짜리 짧은 부고로 정리하며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이토록 이 시대는 흉악했을까? 그 흉하고 험한 세월에 모든 것을 빼앗긴 할머니는 1945년 해방 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고 떠나셨다. 자신처럼 부모 잃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써 달라며 전 재산을 기부하신 할머니의 모습에 절로 고개를 떨구게 된다.

김군자 할머니는 이제 ‘빛’을 보고 계실까? 그리고, 그분이 남겨 주신 빛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가?

▲ 2016년 1월 1일 김군자 씨(왼쪽 셋째 휠체어에 앉은 이)가 '나눔의 집'에서 함께 살던 동료들, 그리고 이날 위로 방문을 온 천주교 사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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