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4]

소풍 가방을 직접 꾸리는 코흘리개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어째 소풍 당일보다 그 전날이 더 신난다는 사실을.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주말보다 금요일이, 결혼보다 결혼 전 연애가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날’이 있기 때문에 ‘그 전날’도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아주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대여섯 살밖에 안 된 나는 밥은 잘 안 먹으면서도 생선회를 무척 좋아했다. 나는 어른들 술상에 놓인 회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무슨 회가 되었든, 뾰족한 생선뼈가 내 안쪽 볼살을 찔러도 아랑곳 않고 회를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반쯤 말린 대구 살을 찢어 먹는 내 모습을 본 어른들은 ‘어린아이가 회를 먹을 줄 안다’며 앞다투어 감탄했다.

어른들의 인정을 받은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부심도 얼마지 않아 위기를 맞는다. 외갓집에 친척들이 모인 어느 날, 회를 초장에 듬뿍 찍어 먹는 나를 두고 내 어머니를 비롯해서 이모부, 외삼촌 등 어른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이다. 그들은 ‘이제 보니 혜율이는 회를 초장 맛으로 먹는구나. 그럼 그렇지, 애가 회 맛을 알 리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 당시 나는 정말로 회보다는 초장이 확실히 더 좋았기 때문에 애가 초장에 환장한 거 같다는 세간의 평에 아무런 항변을 하지 못했다. 나는 입안의 회를 우물대다 목구멍으로 넘기며 이젠 회 잘 먹어 칭찬받는 좋은 시절도 다 끝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나의 아버지가 모두를 향해 말씀하셨다.

“아니다. 혜율이가 비록 초장 맛으로 회를 먹는 것 같아도 어쨌든 회를 먹는 거 아니냐. 회가 있으니 초장도 먹는 거지, 회 없이 초장만 먹으라면 이렇게는 못 먹을 거다. 그렇지? 혜율아? (나: 으응.... 초장만 먹으라면 못 먹을 거 같아.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거 봐라. 그러니 혜율이는 분명히 회를 잘 먹는 게 맞다.” 아버지의 말에 식구들은 모두 ‘아, 그런가. 듣고 보니 그렇네.’ 하면서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나는 누가 뭐래도 생선회를 잘 먹는 소녀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삼삼하고 고소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회 고유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를 변호해 주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회를 앞에 두고도 ‘나같이 비천한 입맛이 어떻게 회 맛을 알겠어!’ 하며 고개를 숙이는 삶을 살고 있지도 모를 일이다.

▲ 로, 너도 여행이 설레니? ⓒ김혜율

그러니 내가 이번 일본 여행을 앞두고 여행의 설렘은커녕 피로감만 느꼈다고 해도 그건 그대로 괜찮은 일이다. 사전의 설렘이든 피로든 그것은 결코 여행의 본질을 훼손하지 못하며, 여행에 대한 회의감 또한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초장과 회’를 통해 익히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자신만만하게 만사 귀찮고 피곤한 기분으로 여행 당일을 맞았다. 우리 집에서 며칠 있다 간 동생과 밤늦게까지 논다고 잠을 잘 못 잔 탓으로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평소 별로 건강하지 못한 이미지였던 동생은 알고 보니 밤늦도록 노는 데엔 철인이었다. 하지만 밤늦도록 열과 성을 다해 놀고 난 동생은 아침엔 어김없이 병자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날씨는 덥고 갈 길은 멀다.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터라 국제여객터미널이 있는 부산으로 가야 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서둘러 기차를 탔다. 기차가 지나가는 길은 낭만적이다. 그 길 내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을 벌린 채 가끔 열차 창문에 머리를 박으며 가는 이들에게는 낭만이란 것도 꿈속에서나 펼쳐지겠지만.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여행 가방들 사이에서 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배가 오고 가는 시간표를 알려 주는 전광판을 바라보자 그제야 나도 어디론가 떠난다는 현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 몇 시간의 여유, 커다란 트렁크를 세워 둔 시간 가운데서 떠나는 자의 설렘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누가 뭐래도 여행은 이렇게 기다리는 맛이지. 그런 맛을 느끼는 가운데 우리는 출국 수속을 마치고 오사카행 배에 오르는 줄을 섰다. 우리가 타는 배는 분명히 크루즈라고 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나는 영화에서 본 호화로운 선실 내부를 떠올렸다. 고급스러운 저택같이 꾸며진 선상 파티장에 실내악단이 끊임없이 음악을 연주하고 웨이터들이 술과 음식을 나른다. 나는 그저 드레스 자락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옆자리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런 나를 눈여겨보던 눈 나쁜 부잣집 도령이 나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하지만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만다. 남편이 옆에서 자꾸 크루즈여객선을 깎아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는 배 ooo은 자신들이 크루즈라고 계속 우기고 있지만 본격 크루즈 업계측에는 발도 못 붙이고 문 앞에서 면박을 당하는 실정이라는 크루즈 업계의 속사정까지 전해 주면서. 전에 배를 타 본 남편은 내가 배에 기대는 기대가 커서 혹여 실망을 하게 되고 전체 여행일정에도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나는 이 배가 크루즈 흉내를 낸 낡은 여객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어. 괜찮아. 난 이미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다고." 그때 승선 줄 앞쪽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줄을 서지 않고 앞자리 쪽으로 끼어들기를 한 할머니 무리와 출입국관리소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할머니들은 소싯적 좀 놀아본 분들 같았다.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화려한 믹스매치 의상과 주름살이 도드라지지 않게 한 짙은 화장, 출국장이 자신의 안방인 양 휘젓고 다니는 당당한 애티튜드가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힘도 좋으신지 저마다 수레 한가득 짐을 쌓아 가는 할머니들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육십은 넘었겠지만 칠십까지는 안 돼 보였다.

▲ 잘 모르겠어, 엄마. ⓒ김혜율

할머니들은 점차 강경하게 목소리를 높여 앞줄에 끼워 빨리 보내 달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국 담당 남자 직원은 할머니들은 맨 뒷줄로 가야 하며 절대로 앞줄에 끼워 주지 않을 거라고, 계속 이러면 오늘 배 못 타는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 직원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는지 할머니들을 막아서는 내내 한숨을 푹 쉬고 바지춤에서 손수건을 꺼내 연신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면서도 입을 앙 다문 채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구불구불하게 잘 접힌 동물의 창자 모양으로 얌전히 줄을 서 있는 여행객들은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직원과 할머니들 간의 승부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지켜보았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새치기를 한 할머니들이 잘못은 했지만 그렇게 잘잘못을 따져 물어 눈앞의 정의를 바로 잡는 것이 어떤 실효를 거둘지는 미심쩍었다. 상대는 한때 놀아 본 칠십 살 노인들이고, 말 안 통하는 어르신들을 훈육하기에 이곳 출국게이트는 적절한 장소가 아닌 것 같았다.

남편이 내게 이 할머니들이 한일 양국을 오가며 소호무역을 하는 보따리 상인들이라고 넌지시 일러 주었다. 역시 대단하신 어르신들이다. 각개전투를 펼치던 할머니들이 어느새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줄만 안 섰다 뿐이지, 먼저 짐을 부려 놓고 자리를 찜했으니 그냥 들여보내 달라고 기세가 등등하다. 할머니들은 왜 오늘따라 팍팍하게 나오냐며 남자 직원을 나무라기까지 했다. 하지만 남자 직원도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닌지 오늘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에 차 보인다. 직원은 할머니들에게 어린 학생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냐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듯한 의견이 튀어나왔고, 기다리는 데 슬쩍 짜증이 나기 시작한 사람들의 볼멘소리까지 더해져 분위기는 어떡하든 결판을 내지 않고는 안 되는 지경이 되었다. 젊은 사람들을 들먹이자 별로 할 말이 없어진 할머니들은 더는 버티기 민망하신지 엉거주춤 머뭇거리셨고 남자 직원은 이때다 싶어 할머니들을 줄 밖으로 밀어냈다.

결국 할머니들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몇십 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물건을 팔아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보따리 무역상의 역사적 얼굴과의 첫 만남은 꽤나 강렬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나는 배 안에 마련된 목욕탕에서 이들 할머니의 면모를 더욱 더 자세히 알게 되는데....!

(오사카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으니 오사카 방랑 여행기 계속됩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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