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46]

"우리 집 암탉이 알을 낳았어요!" 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럼 암탉이 알을 낳지 수탉이 낳나?" 하며 시큰둥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거 그림책 제목 아닌가요?" 하고 못 미더운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냐, 이 말 자체가 워낙 현실감 없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달걀이 상품이 된 뒤로 암탉과 달걀을 연결짓는 사고 자체가 붕괴되었으므로.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2주 정도 전부터 우리 집 암탉 한 마리가 알을 낳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알 낳아?" 하고 물어보면 "아니요, 아직...." 하고 꼭 죄인처럼 작아지고는 했는데, "사료 안 멕이믄 달걀 안 낳는당께."라는 말 앞에서 "할 수 없죠, 뭐." 하고 자포자기 심정이 되고는 했는데, 드디어 우리 집 암탉도 알을 낳게 된 것이다.

맨 처음 신랑이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 들고 왔을 때,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고, 나는 기뻐서 아이들처럼 크게 소리까지 질렀다.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놀람과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붙잡고 자랑을 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너무 오래 기다렸고, 중간에 큰 시련까지 있었던 터라 암탉이 알을 낳은 사건은 단연코 올해 최고 빅뉴스였다.

맨 처음 낳은 달걀 세 알. 닭이 알을 여기저기 숨겨 놓는 통에 한꺼번에 세 개를 찾아 잘 삶아 먹었다. ⓒ정청라

그러니까 이쯤해서 가슴 아팠던 시련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9월 초였던가. 한밤중에 큰비가 내려 빗소리가 요란했더랬다. 아침에 비가 그쳤는지 보려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앞집 사냥개가 풀려나 우리 집 마당에 있는 거다. 앞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불러 얼른 데려가시라 말하고 집안에 들어왔는데 잠시 뒤, 닭 밥 주러 닭장에 들어간 신랑의 비명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닭이 다 물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집 사냥개 그 녀석이 간밤에 만행을 저지르고 뻔뻔하게 우리 집 마당을 배회하고 있었다는 것? 너무도 참혹한 현실 앞에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떨려 왔다. 나는 닭장에 들어가는 일일랑 꿈도 못 꾸고 얼른 앞집 할머니부터 불러왔더니 대뜸 그러신다.

"어쩔 것이여. 얼른 나와서 닭 털 뽑아 가꼬 냉장고에 넣어."

그 말을 듣고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아니,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이 상황에서 저 보고 닭을 처리하라고요? 한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사람한테 그런 말이 나와요?"

나는 격하게 소리쳤다. 수탉 세 마리에 암탉 다섯 마리.... 그 닭 여덟 마리가 어디 보통 닭이냐는 말이다. 알에서 깨어난 지 일주일된 병아리들을 데려와서 3주 가까이 한방에서 살았다. 한동안은 밭에 병아리 놀이터까지 만들어 풀어 키우고 신랑이 지극정성으로 돌봐, 아이들이 풀 뜯어다 먹여, 나는 뽕나무 아래 오디 떨어진 거 다 주워다 먹이고.... 아무튼 집짐승 그 이상이었다. 알 낳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온갖 꿈이 산산조각 난 마당에 나한테 뒤처리까지 하라니....

내가 그런 얘기를 다 하니까 앞집 할머니도 미안하다며 변상을 하고 죽은 닭은 본인이 가져가시겠다고 했다. 엎어진 물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도 그쯤해서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고는 신랑과 앞집 할머니가 한 마리, 두 마리.... 세어 가며 시신(?)을 수습하는데 닭장 밖에서 꼬꼬댁 소리가 났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암탉 한 마리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신랑은 얼른 그 한 마리를 붙잡았고 닭장을 수리한 뒤에 다시 닭장에 넣었는데, 암탉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꼼짝도 안 하고 오도카니 앉아서 밥도 먹지 않았으니 말이다. 저러다가 뭔 일 나는 거 아닌가 걱정하며 지켜보다가 새로 들여온 중닭 여섯 마리(사람으로 치면 십대 청소년쯤 되는 수탉 한 마리, 암탉 다섯 마리)를 닭장에 넣었다.

그러자, 암탉이 기운을 되찾고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다울이가 그러는데 어린 수탉을 옆에 꼭 끼고 앉아 다른 어린 암탉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더란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기세등등한 자세로 어린 암탉들에게 상전 노릇이라니.... 그렇게 암탉은 별다른 심리 치료 없이도 새 식구들과의 뒤섞임만으로 기운을 되찾았고 마침내 알까지 낳았다.

맨 처음 낳은 달걀 세 알. 닭이 알을 여기저기 숨겨 놓는 통에 한꺼번에 세 개를 찾아 잘 삶아 먹었다. ⓒ정청라

그러한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맨 처음 발견한 달걀 세 알이 얼마나 애틋하랴.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소중해서 달걀 앞에만 서면 가슴이 벌렁거렸다. 작지만 단단하고, 보석처럼 어여쁜 달걀! 어떻게 먹을까 고민할 것도 없이 삶아서 다울이 다랑이 다나 하나씩 먹이면 되겠다 했는데, 아랫마을에 사는 유민이가 놀러왔다. 해서 다나는 이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다나 몫을 유민이에게 선물했다. 우리가 느낀 감동을 유민이도 느끼길 바라면서, 그렇게 물결처럼 생명을 느끼는 감성이 번져 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닭을 기르고, 그 닭을 통해 달걀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생명의 존엄함이나 가치 같은 것을 따로 배우거나 가르칠 필요가 없을 텐데.... 돈이면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는 걸 절절히 느낄 수가 있을 텐데....

오늘도 우리 집 암탉은 알을 낳았다. 그리고 작고 어여쁜 달걀은 눈부신 빛으로 내게 말을 건다.

"나는 생명이에요. 잊지 마세요." 하고.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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