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군복과 로만 칼라는 모순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군인 주일에 이 칼럼을 쓴다. 나는 이미 한국 천주교회의 군종 제도에 관하여 지난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교회 안팎의 언론매체에 내 생각을 피력했는데 일언반구의 반응을 보지 못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판단에서였을까? 진부함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서 한번 더 짚는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1968년에 군인 주일을 제정하고 신자들에게 군의 복음화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것을 권고했다.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지는 사회의 어느 한 분야라도 교회는 사목적 배려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군도 예외일 수 없다. 당연한 처사다. 그럼에도 내가 누차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까닭은 효율적인 선교와 사목을 위해서 사제가 꼭 군복을 입은 현역군인이 되어야 하느냐는 의혹 때문이다. 의혹은 그동안 많은 선후배 군종사제들을 만나고 그들의 갈등과 고민을 들으면서 생겼다. 현행 군종 제도는 한국전쟁 와중에 가톨릭과 개신교 성직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적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군인과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사제는 암만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군복과 로만 칼라는 모순이다. 한쪽에 충실하려면 필히 다른 쪽을 포기해야 한다. 어느 쪽이 정도이고 먼저인지 고민해야 하는 군종사제는 오늘도 괴롭다.

1989년에 군종교구가 설립되었다. 나름 절실한 필요에 의해서 취해진 조처였을 터다. 현 교구장인 유수일 주교는 역대 교구장들이 그랬듯 민간인 신분으로 장교 계급장을 단 군종사제들을 보살피고 다스린다. 군종교구의 최고책임자가 현역군인이 아닌데도 무리 없이 군사목을 수행하고 있다면 이미 군복무를 마친 사제가 굳이 다시 군복을 입어야 하는 필연적 이유란 무엇인가?

혹자는 일반사회와 격리된 군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사복보다 군복과 계급장이 더 자유롭고 편리한 활동을 보장하지 않겠냐고 변론할 수 있겠으나 신분에 걸맞은 제복에서 오는 이율배반이 평생 예수의 삶을 본받으려는 사제에게는 엄청난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 얼룩무늬 제대복을 입고 예비군 훈련장에 나가 본 사람은 누구든지 예비군복만 입으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상식 밖의 언행들을 몇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미 일선을 떠난 말단 사제의 바람이 철옹성 같은 현행 군종제도를 없애거나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군종제도에 대한 재고를 제안하는 것 자체를 철딱서니 없다거나 사상이 불순하다고 보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열린 교회를 지향한다면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놓은 상태에서 자유롭고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질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볼 때 결정권을 쥐고 있는 주교와 사제들이 외면하면 여론 조성조차 불가능하다. 개혁과 쇄신에 대한 안간힘은 찾아볼 수 없고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교구장 주교가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사제단은 글쎄, 겉으로는 일치단결처럼 보일지 모르나 예수의 하느님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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