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구영주] "네 신부님의 어머니", 이춘선, 바오로딸, 2017

"네 신부님의 어머니", 이춘선, 바오로딸, 2017. (표지 제공 = 바오로딸)

여기 작고 가난한 영혼 하나

온전히 그분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긴 한 영혼의 기도와 시가 내 굳은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내 허약함과 무력’만이 오직 은총이 내려오는 통로임을 고백하는 작고 겸손한 영혼. 한국교회 사상 네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각각 사제와 수도자로 봉헌한 이춘선 마리아 자매의 일기와 편지와 기도시를 묶은 "네 신부님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신앙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이춘선 마리아 자매는 1921년 한국과 러시아 국경지역인 육도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본래 함경도 경원 사람이었으나 일제를 피해 만주로 나와 살고 있었다. 그녀의 외가는 아주 열심한 교우 집안이었고 당시 외인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도 어머니와 혼인하기 위해 신자가 되었다. 이 마리아 자매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세례를 받았고, 1928년 연길교구 설립 이후에 베네딕도회 사제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했다. 어린 시절 신앙은 이 마리아 자매의 삶의 전부였다. 

열여섯이 되던 해 부모의 주선으로 강원도 양양 출신의 오병섭 타대오와 혼인했다. 당시 만주는 이미 공산주의자들이 세력을 넓혀 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교회와 신자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기에 1946년 시댁이 있는 양양으로 남하했다. 공산화된 북녘에서의 삶은 매우 어려웠고 특히 교인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져 신앙을 지키고 자녀들을 올바로 양육하기 위해 결국 시부모님의 허락 하에 월남을 결행한다. 남편과 함께 어린 자녀들을 업고 38선을 통과하는 위태로운 순간에도 오직 성모님께 의지하고자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한 곳이 강릉이었다. 이 마리아 자매는 슬하에 7남 4녀를 두었다. (딸 셋은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

이중 큰아들 오상철(토마스 아퀴노), 3남 오상현(요한 보스코), 6남 오세호(클레멘스), 7남 오세민(루도비코) 이렇게 네 명이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딸 한 명 오진복(젬마 갈가니) 자매가 수녀로 봉헌되었다.

사회적으로 어렵던 시기에 자녀도 많았기에 사는 것은 어렵고 궁핍했으나 늘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자신이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은 신앙밖에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추운 겨울날 손발이 얼어도 미사에 가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다. 영혼은 굶어 죽는데 육신이 배부른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녀의 일기와 편지, 그리고 기도시로 구성된 책을 읽다 보면 참으로 어렵고 곤궁한 사정들이 행간에도 읽히고 많은 자녀들을 키워 내며 고심하고 고민하고 아파했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겠습니다' 라는 부제가 달린 일기들은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하고 당신(하느님)이 아니시면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가장 작고 비천하고 낮은 존재인 자신의 연약함을 그분께 아뢰는 불쌍한 영혼의 일기들이다.

 

1984년 6월 7일

'행여 떨궈 놓고 가실까 봐'


하느님 나는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나이다.
나는 당신께로부터 나왔고,
당신이 보내시는 얼(기운)을 받아 숨을 쉬고 있사옵고,
당신의 영원이 저를 안아 가시는 날엔
내 숨이 당신 안에 잦아들기 때문이외다.

나는 당신을 위해 창조되었고, 당신이 아니시면
내 생명의 희망도 내 존재의 가치도 없나이다.
내 삶의 목표도 당신 향해서만 뚜렷하오니
전들 어찌하오리이까?

저도 이렇게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옵고,
억겁의 옛날부터 하느님의 뜻일 뿐이오이다.

그러하오니 나는 죽어도 살아도 당신의 딸이오니
저는 아버지께서 어디로 가라시든지 따라다닐 판이옵고,
결코 당신을 떨어지지 않을 것이오며,
행여 떨궈 놓고 가실까 봐 당신 발목 붙들고 잠드나이다.

 

자기 존재의 시작이자 마침이며 이유이자 전부이신 하느님께 매달리는 이 애처로운 기도는 혹 자신을 떨구실까 두려워하는 그녀의 아이 같은 영혼의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아이 같은 상태. 천국은 이런 어린아이들의 것이라는 성서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필자는 그녀의 기도시와 일기를 읽는 내내 그녀의 영혼이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녀들 중에서도 가장 낮고 겸손한 어린아이 같은 영혼을 드러냈던 소화 데레사의 모습이 이춘선(마리아) 자매의 모습에서도 느껴진다. 태초의 생명의 근원 앞에 엄숙하고 온전한 무의 상태로 드리는 겸손함의 기도는 자기 존재가 얼마나 당신 없이 존재하기 힘든지를 고백하는 가장 솔직하고 가식 없는 기도인 것이다.

그녀의 신심 중 특별히 눈여겨 보였던 것은 성모 어머니께 대한 신심이다. 그녀도 7남 4녀를 키운 어머니로서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랐겠는가. 그때마다 성모님께 대한 절실한 간구와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은 애잔하다. 한 가정의 아내, 어머니, 여자로서의 삶의 고통을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내로 견뎌 내는 그녀의 모습은 매 순간 성모님을 닮길 원하며 성모님께 대한 헤아릴 길 없는 고통에의 합치로 자기 삶을 온전히 합치기를 원한다.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모두 겪어 내신 성모님께 대한 온전한 의탁과 신뢰가 느껴지는 기도들에 마음이 머문다.

 

1985년 9월 10일

'남편도 애들도 하느님도 잘해 주길 바라고'


오늘도 무척 피곤하구나.
남편은 자기에게 잘해 주기를 바라고 애들은 또 자기들에게 잘해 주기를 바라고,
하느님도 당신을 극진히 사랑해 드리기를 기다리고 계시겠지.

성모님은 저를 애처롭게 바라보시겠지. 
여러 가지 일과 정신적인 피로에 젖어 있는 나를 바라보고 계시겠지.
내가 “어머니 도와주십시오. 엄마!” 하고 부르면 성모님은 급히 나를 도와주시겠지.

성모님, 제 마음에는 한없는 갈등과 피로와 권태가 밀려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아니시면 저는 벌써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이 생활을 잘 참고 잘 마치게 해 주소서.

그리고 엄마 품에 안겨 가게 해 주소서....

 

남편도 자식도 때로는 하느님마저도 자신에게만 사랑을 요구해 올 때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는 엄마로서의 삶 그 끝에는 늘 성모님이 계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엄마인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돌보아 주실 분은 오직 나의 엄마, 어머니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그녀의 마음. 이런 아이 같은 순수하고 격식 없는 매달림을 그 누가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오직 헤아릴 길 없는 사랑으로 넘치는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님이시라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얼마나 애타는 부정과 모정이 그녀에게 쏟아졌을까. 얼마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서약들이 그녀 삶에 빼곡했겠는가. 그것이 사제 넷과 수녀 하나로 봉헌된 자식들의 삶으로 열매 맺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녀 스스로도 “나같은 주제에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집안에서 신부를 몇이나 낸다는 건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말이다. 

한 가정에 사제나 수도자가 나오는 것은 결코 인간적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도 익히 알고 있다. 결혼의 성소도 그렇지만 사제나 수도 성소는 하느님의 특별하신 부르심과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한둘도 아닌 자녀 다섯이 하느님의 제단에 봉헌된다는 것은 그녀의 삶에 얼마나 많은 눈물의 기도와 간절한 매달림이 있었는지를 가늠케 한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그녀의 기도가 현대의 기복적 신앙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녀는 늘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자녀였다.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을 먼저 느끼고 헤아리고 그에 합당한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구하는 자녀는 그분의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분의 뜻을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일 속에 당신의 뜻은 무엇인지, 뜻이 있다면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신의 미약을 매 순간 인정하며 먼지와도 같은 자기 존재의 허무를 고백하는 그녀의 기도는 성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신앙의 자세다. 

그 옛날 자신의 고백처럼 못 배우고 보잘것없는 그녀의 삶 속에서 드러난 신앙의 놀라운 덕망은 오로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자기 존재의 근원이 오직 당신 안에서만 시작됨을 뼛속 깊이 알고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옛 우리 선조들의 순교성인들의 정신과도 같은 이 두려움 없는 신앙은 삶의 진창 같은 어둠을 헤매어도 그분께서 자신을 꼭 데려가 줄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만이 전부였기에 그 어려운 시대를 잘 통과해 많은 신앙의 열매를 맺은 게 아니었을까. 기도와 일기들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필자는 마음이 너무나 숙연해지고 그 애절함에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기도는 헤아릴 길 없는 그녀의 신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고 참 신앙의 자세와 전형으로 가득했다.

 

'피곤하고 슬퍼서 눈물 나는 날'


어머니, 어머니
아, 마리아여!
나는 당신의 작은 딸입니다.

굽어보소서.
이 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손길로 치료해 주시지 않으시면
이 작은 딸은 죽습니다.
살아나지 못합니다.

어머니, 나를 안아 가소서.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신부님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129쪽. ⓒ구영주

막내아들 오세민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첫 부임지로 떠나던 날, 이춘선은 아기 때 입던 옷을 편지와 함께 선물로 주었단다. 그 편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신부님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 일화는 그녀가 얼마나 겸손한 영혼으로 살기를 희망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겸손! 이것은 사제뿐 아니라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신앙의 첫 번째 덕목이 아니겠는가. 필자 역시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한 사람의 아내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많지만 이춘선 마리아와 같은 하느님께 대한 열망과 성모님께 대한 온전한 의탁이 일상 안에서 얼마나 필요한지를 동시에 부족했었는지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왜 더 인내하지 못하고 고집스러워지는가. 왜 마음 안에 그분이 머무실 자리가 점점 더 사라져 가는가. 내 자신의 연약함으로 아프고 힘든 가을을 보내고 있던 필자에게 그녀의 기도들은 촉촉한 단비가 내린 것 같은 은혜로운 만남이었다.

어머니, 이 가을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인내하게 하소서.... 아멘.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7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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