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수도회에 관한 속풀이를 보시다가 궁금증이 생겼는지, 어떤 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어떤 수도회에 입회하여 살다가 자신에게 좀 더 잘 어울리는 생활양식의 수도회를 알게 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는 수도회를 옮길 수 있을까요?

그냥 팔자려니 하고 현재의 수도회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가 답일 듯도 하지만, 소속 수도회를 옮기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사를 가듯이 가볍게 처리될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소속 수도회와 옮겨 갈 수도회의 장상들 양쪽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즉, 현재 수도회에서 퇴회 요청이 받아들여져야 하고, 저쪽 수도회에서 입회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옮겨 가고 싶은 수도회가 요청하는 초기 양성 기간(특히 수련기간)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미 수도생활의 기본 원칙들은 경험했기에 필요 없는 단계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각 수도회는 제각기 다른 영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정신을 배우고 이해하는 기본 기간이 요청됩니다. 그것이 수련기간 동안 이뤄질 것입니다.

초기 양성 기간 동안, 이적해 온 회원은 그 회의 정신이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할 것이고, 그 수도회도 신입 회원이 그 회의 영성에 부합하는 사람인지를 관찰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단계를 거쳐 어떤 수도회의 회원이었던 사람이 다른 수도회의 회원으로 소속이 바뀔 수 있습니다. 수도회를 옮기는 사안들은 그다지 복잡하거나 어렵게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입회시기라는 것이 보통 정해져 있고, 기초 양성 기간을 거쳐야 하기에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오히려, 소속을 옮기는 것이 가능해 보이긴 해도 쉽지 않은 사례는 수도회 소속 사제가 교구로 이적하고자 하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속 수도회에서 퇴회를 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수도회의 대표자와 면담하여 퇴회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그러나, 퇴회하는 자가 단순히 수도자가 아니라 성직을 받은 수도자(수도 사제)인 경우에는 퇴회도 쉽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회 합동 서품식에서 새 사제들이 명동성당에서 안수받는 모습. (지금여기 자료사진)

수도자 사제에게는, 그를 교구에 입적시키거나 적어도 시험 삼아 받아 줄 주교를 찾기 전에는 현재 소속 중인 수도회로부터 퇴회가 허락될 수 없습니다.(교회법 693조 참조) 이것은 “어느 성직자든지 어떤 개별교회나 성직자치단 또는 봉헌생활회나 이 특별 권한을 가지는 단체에 입적하여야 하고 따라서 무소속 즉 떠돌이 성직자는 결코 용인되지 아니한다."(교회법 265조 참조)라는 규정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직자들은 소속된 곳이 있어야 합니다. 이에, 수도회 소속 성직자가 퇴회를 하려거든 옮겨 갈 교구의 교구장(주교)의 허락이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시험 삼아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전제로 퇴회절차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이적하고자 하는 교구의 교구장이 바로 입적을 허가하는 경우겠지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시험기를 거쳐서 입적 여부가 결정납니다. 시험기는 길게는 5년 동안 진행됩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소속된 수도회에서 일종의 제적 대기상태로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옮겨 갈 교구의 교구장 판단이 긍정적이어서 그 교구로 입적이 결정되면 수도회에서도 제적이 확정됩니다. 하지만 교구장의 판단에 의해 입적이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원래의 수도회로 돌아가거나 다른 수도회를 알아보거나 또 다른 교구를 찾거나 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애초에 수도회를 선택할 때 그 수도회의 정신을 잘 살펴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또, 수도회에 입회하면서 사제직을 지망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수도자(수사) 신분만을 유지하며 살 것인지도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사제 신분의 수도자가 되면, 수도서원과 연결된 독신과 사제직에 의한 독신, 이렇게 이중의 독신 의무를 유지해야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그리고 성품성사의 의미가 지속되어야 하기에 소속을 바꾸는 일이 그만큼 까다롭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 수도회나 교구로 입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나,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며 그것도 불확실한 상태로 기다려야 한다는 게 제게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좀 더 잘 맞는 옷을 찾아보려는 이들이 하느님의 이끄심에 더 굳건히 의탁하기를 기도합니다. 

사족: 당연히 교구사제의 신분에서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자 사제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소속 교구의 교구장이 수도회로 입회하는 것을 허락하고, 해당 수도회가 입회를 허락해야 합니다. 그리고 초기 양성 과정(보통 수련기 2년)을 잘 보내면 수도서원을 할 수 있으니.... 겉보기에는 5년보다 이쪽이 더 쉬워 보이긴 합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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