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답변에 대한 교회 입장, "교황의 '새로운 균형'은 낙태에 대한 의견 아니다"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을 공개하고 “2018년 임신중절 실태를 조사해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 청원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9월 30일부터 한 달간 진행됐으며, 23만 5372명이 서명했다. 청와대는 청원 인원이 20만 명을 넘으면 답변하고 있다.

26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임신중절 논의에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고, 둘 다 지켜야 할 가치”라며, “태아 대 여성, 전면 금지 대 전면 허용이라는 대립 구도를 넘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며, 그 전에 임신중절 현황과 원인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민정수석은 먼저 ‘낙태’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적 함의를 갖고 있어 모자보건법상 용어인 ‘임신중절’을 쓰겠다고 설명하고,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배제되었다”며, “불법 임신중절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침해되는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제한 남성과 헤어진 뒤에 임신을 발견한 경우, 별거 또는 이혼 소송 상태에서 임신을 발견한 경우, 실직이나 투병 등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으로 양육이 어려운 상황에서의 임신” 등 세 가지 경우을 제시하면서, “현재는 임신중절을 하면 범죄가 되는 이 세 가지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조 민정수석은 정부의 2018년 임신중절 현황 실태조사 실시와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 등으로 사회적, 법적 논의가 진행될 것이며,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문제라고 했다.

낙태죄 폐지와 함께 요구한 자연유산유도제(미프진) 합법화 요구에 대해서도, “낙태죄에 대한 논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히고, 임신중절 관련 보완책으로 “청소년 피임교육 강화와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한 전문 상담 실시, 비혼모에 대한 지원 강화, 입양문화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그는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던 발언을 들어 임신중절을 둘러싼 논의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26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 = SBS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교황의 "새로운 균형" 언급, 낙태에 관련한 것 아니다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 구도, 맞지 않아
사회구조와 문화 바꿔야 할 교회의 몫, 현재로선 법 폐지 막는 것이 우선

조국 민정수석의 답변에 대해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대결하는 듯한 현재의 구도는 맞지 않는다”고 동의하면서도, “그러나 그 이유는 낙태가 태아의 생명 파괴를 전제로 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태아의 생명 파괴가 전제가 되는 자유로운 선택(결정)을 생명권과 대결 구도로 두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또 정 신부는, 조 민정수석이 언급한 교황의 “새로운 균형” 발언에 대해서도, “교황이 낙태를 두고 언급한 말이 아니”라고 확인했다.

정 신부에 따르면, 조 민정수석이 언급한 발언은 2013년 9월 이탈리아 잡지 <치빌타 카톨리카>에 실린 것으로 “새로운 균형점”은 가톨릭교회가 교리를 선포할 때 사람들에게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정 신부는 “교회의 입장은 낙태 반대이며, 조 수석의 이번 발언으로 그 의미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불법 임신중절 수술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합법화할 수는 없다며, “현황 조사를 할 필요가 있지만, 불법이 많아지면 합법이 되는 것인가.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도 합법화해서 불법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안전한 낙태 수술은 없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그 자체가 여성의 건강에 심한 타격을 준다. 정말 여성을 위한다면 낙태를 예방해야 한다”고 했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계 등은 이러한 요구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만 피임과 낙태, 출산의 모든 과정에서 그 책임과 죄를 묻는 사회적 구조와 싸우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지키려는 교회의 입장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여성들이 비혼이든 기혼이든 사회경제적, 문화적으로 낙태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교회의 구체적 실천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정재우 신부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고 교회가 원칙의 차원에서는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실천적 부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현재는 낙태죄 폐지를 막는 것에 우선 집중하고 있다. 문화적, 장기적 차원에서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법 규정 역시 국민들의 의식과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약하고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존재(태아)의 생명을 보다 강한 이들이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다른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인식”이라며, “우리는 이미 인간 배아에 대해 그렇게 결정한 바 있다. 그 다음은 태아 나아가 생애 말기 등 상대적으로 더 약한 이들에게 이러한 태도는 확산될 것”이라고 깊이 우려했다.

또 그는 성의 인격성이 없어진다는 것이 우선된 문제라며, “현재는 피임의 책임과 실패의 부담 역시 여성의 몫이다. 성행위에서 욕구보다 인격성이 우선되어야만 남성과 여성의 품위가 모두 유지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의 품위가 손상되고 태아는 목숨을 잃는다”고 덧붙였다.

조국 민정수석이 인용한 "새로운 균형점"은 아래와 같은 교황의 발언 속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낙태, 동성 혼인, 그리고 피임 도구의 사용에 관련된 문제들만 내내 주장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아요. 나는 이런 문제들에 관해 그리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다고 질책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문제들에 발언할 때면, 우리는 그 문제들이 놓인 상황을 보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그런 문제에 관해, 명확하고, 나 자신도 교회의 아들입니다만, 내내 이 문제들만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의 여러 교의적, 도덕적 가르침들은 서로가 모두 동등하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사목적 직무는 교의들을 뒤죽박죽인 채로 왕창 전달하면서 모두 즉시 실행하라고 하는 데에 매여서는 안 됩니다. 선교사적 스타일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본질들, 필요한 것들에 초점을 둡니다. 이는 또한 (사람들을) 더욱 매혹시키고 끌어들이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들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기도 한데, 마치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한 예수를 만난)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도덕적 건물(체계)은 마치 카드로 쌓은 집처럼 무너질 것 같아요. 복음의 신선함과 향기를 잃은 채 말이지요. 복음의 제안은 더 간명하고 더 심오하며 더 (빛을) 발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명제로부터 도덕적 결과들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참조- 교황 인터뷰 영어판 원문, 
https://w2.vatican.va/content/francesco/en/speeches/2013/september/documents/papa-francesco_20130921_intervista-spadar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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