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석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 인터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회가 살아남으려면 그에 상응한 교회쇄신이 요구됩니다.”

11월 26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만난 오용석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프란치스코 사베리오, 73)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특히 신자 수 급감을 걱정했다.

한국 천주교가 ‘평신도 희년’을 맞은 가운데, 평협 산하 사회사도직연구소는 희년에 어울리는 나눔 운동, 평신도의 리더십, 그리고 평협의 새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 2018년 50주년을 맞는 평협은 주교회의에 내년을 평신도 희년으로 할 것을 청했고, 주교회의는 지난 추계 총회에서 2017년 11월 19일부터 2018년 11월 11일까지를 평신도 희년으로 지내기로 했다.

2016년 말 교회 통계를 보면 천주교 신자 수는 574만 명이 넘어 총인구의 10.9퍼센트에 이르렀지만, 평균 주일 미사 참여자 수가 약 112만 명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오 소장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는 1/5도 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신자들의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특히 10대 이하 신자가 적은 것을 지적했다.

“신자 고령화에 대비해야 하고, 무엇보다 청소년들을 교회로 불러들이기 위한 교육방법의 쇄신, 빅데이터 활용에 의한 전향적 복음화 방법 개발이 급선무입니다.”

그는 이러한 쇄신을 위해 평신도 전문가들이 교회 업무에 적극 참여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교회의 움직임은 뚜렷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 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부서를 통합 개편하고 평신도 전문가들을 대거 참여시키고 있는 데 비해, 한국 천주교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오용석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 ⓒ강한 기자

“낙태 문제, 한반도 전쟁 위기에 교회가 적극 나서야”
“국가보안법은 폐기해야 할 악법”

오용석 소장은 ‘자비의 희년’(2015년 12월 8일-2016년 11월 20일)에 한국 천주교는 다른 나라 교회와 비교해 실망스러울 만큼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평신도가 먼저 신앙을 받아들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조직화된 평신도 활동이 있는 한국 교회에 걸맞게 전과는 다른 ‘평신도 희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신도 희년이 (예컨대) 청소년, 노인, 노숙자, 다문화 가정을 위한 희년으로 해서 그들을 위한 기도 지향을 갖고 미사를 드리고, 도울 필요가 있을 때는 특별 헌금을 모으는 식으로 의미 있는 희년 행사가 되면 좋겠다고 (평협 지도자들에게) 건의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정말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지요.”

또한 그는 한국 천주교가 사명감을 갖고 뛰어들어야 할 긴박한 문제로 “고령화, 저출산 문제와 맞물린 낙태 문제”, “한반도 전쟁 위기 상황”을 꼽았다.

오 소장은 “1960년대부터 추진됐던 산아제한 정책으로 낙태가 공공연히 이루어짐으로써 이후 그에 대한 금지 법률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정부가 낙태죄 폐지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커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뜻 있는 시민들께서도 낙태죄 폐지 반대에 동참해 주실 것을 간청한다”며, 이 문제를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해법과 함께 풀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경제 전문가로서 경성대학 상경대 교수로 일했던 오 소장은 북한이 미국, 일본과 국교를 맺지 못하고 고립된 것은 “한국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는 천주교가 예언자, 순교자의 정신으로 민주화의 보루가 되었듯, “국가보안법의 서슬에 굴하지 않고”, “그런 반민주적, 반평화적 법의 폐기를 주장하면서 북한과 미국,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여론화하는 데 앞장섰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한국 교회는 민주화의 보루라는 시대적 징표 위에 평화의 보루라는 또 하나의 징표가 되어 국민들의 신뢰는 더 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분명하게 역사, 시대적 상황을 올바로 읽고 예언자적 징표로서의 국민 선도적 역할을 못하는 가운데 정의구현사제단의 진보적 행동은 교회로부터 일탈한 반국가적 행동으로 비춰져 오히려 교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감을 떨어뜨리게 됐습니다.”

오 소장은 이러한 “실망감”을 넘어서려면, 교회가 다시 예언자의 자세로 국민을 선도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며, “지금까지 소홀히 해 온 사회교리 교육의 장을 예비신자,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2년 10월 1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대성당에서 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 주관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강한 기자

연구 기반 부족하지만 한국평협의 싱크탱크 될 것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는 가정 및 사회사도직 등 평신도 사도직의 이론과 실천방안을 연구하고 대안을 내놓고자 2004년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지던 때는 ‘가정, 사회사목연구소’였지만 2007년 서울평협 총회를 거치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가정’이라는 용어가 빠진 것은 평신도의 사회사도직에 대한 가르침에 “당연히 ‘가정’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오 소장은 사회사도직에 관해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평신도 교령’ 13항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신도 교령’ 13항은 “사회 분야의 사도직, 곧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정신, 풍습, 법률, 구조 등을 그리스도 정신으로 충만하게 하는 노력은 결코 다른 사람이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평신도들의 의무이며 책임”이라며, 평신도는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켜 세상의 빛이 됨으로써” 교회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평협 활동이 공의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사회사도직연구소가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오 소장의 생각이다.

연구소 홈페이지에 따르면 연구진으로는 변진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김남희 가톨릭대 교수, 이윤식 서울대 교수, 정찬남 한국여성생활연구원장, 조중근 가천대 교수,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박순석, 이화우 씨가 참여하고 있다.

오 소장은 이들 연구위원들이 각자 자기 생업을 하며 ‘봉사’ 차원에서 사회사도직연구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 즉 상임 연구자가 없다는 점에서 특히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연구소는 2015년 논문집 <평신도연구> 창간호를 펴냈지만, 그 뒤 논문집을 더 내지 못한 채 발간을 보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 소장은 “<평신도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학술지가 아니고 게재 논문에 대한 연구비가 전혀 없는 등 인센티브가 없어 게재 가능한 논문을 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평협의 새 정체성, 나눔 운동 적극 고민

이처럼 어려운 여건이지만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와 공동 세미나를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던 것, 평신도 신앙 실태 설문조사를 통해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중요성을 알린 것은 연구소의 성과다.

또한 연구소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교구를 모범으로 한국 교회에 맞는 신자교육편람 연구에 나선 바 있고, “한국평협 40주년 백서”, “한국 가톨릭신자 국회의원 의정 활동에 대한 사회교리적 분석과 평가” 발간을 이끌었다.

‘평사연 포럼’은 24회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데, 11월 30일 올해 일정을 마치고 2018년 3월 다시 시작된다. 오 소장은 “포럼을 통해 평신도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나 바람을 교계에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사연 포럼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전인적 인간발전’, ‘세계시민으로서의 평신도, 그 리더십과 양성’ 등을 주제로 다뤘다.

오용석 소장은 내년까지 이어지는 평신도 희년에는 “평협 100년을 향한 평협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과 발전 방향 모색을 위한 연구”, “한국 평신도 희년 나눔 운동을 위한 실행 방안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 겨울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리 더 나은 세상' 평신도 회원들. (사진 출처 = '더 나은 세상' 홈페이지)

사회 참여는 평신도의 의무, 소홀히 해서는 안 돼

한편, 그는 평신도 사회사도직이라는 관점에서 교회의 사회참여를 어떻게 봐야 할지 묻자, “한국 사회문제의 대응은 한국 신자공동체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교회 안팎에서는 사회 중요문제에 교회가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에 반발하는 이들이 있고, 심지어 “좌파”로 매도하기까지 하지만, "한 나라에서 정치공동체와의 관계에서 교회가 수행해야 하는 소임은 그 나라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올바른 식별“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식별의 주체는 교황이나 보편교회가 아니라, 바오로 6세 교황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명확히 말했듯 ”각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것이다.(‘80주년’, 4항, 바오로 6세)

오 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에 방한했을 때도 세월호 참사 등을 보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에 말씀을 아낀 것도 (교회가 구체 사안에 발언을 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분권화의 맥락에서 그것이 한국교회 신자공동체, 평신도에게 맡겨진 사회사도직의 소임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오 소장은 또한 “정교분리”를 내세워 평신도 지도자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적극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으며, 물론 정교분리는 ‘사목헌장’(76항)이나 ‘간추린 사회교리’(50항) 등에서 보듯 교회가 천명한 원칙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정치만큼 인간 생명을 비롯한 기본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기에, 교회는 세상의 정치상황에 침묵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으라고 가르치며, 이는 정교분리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정교분리 원칙은 지키되 그것이 결코 국가에 대한 침묵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쳤다고 예를 들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교회는 이성적 토론방법으로 그러한 투쟁에 들어서야 한다”고 했으며,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정당한 몫을 받는 정의로운 사회 질서와 국가 질서의 건설”은 “인간의 가장 중대한” “정치적 임무”라고 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베네딕토 16세)

그는 ‘평신도 그리스도인’(15항)에서는 이를 평신도의 일상적 임무, “곧 정치, 경제, 행정” 같은 “세속적 성격의 의무”로 가르치고 있는데, 그간 “한국평협 지도자들은 이 가르침에 소홀해왔지 않나 생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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