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구영주] "성탄의 빛", 안셀름 그륀, 바오로딸, 2017

"성탄의 빛", 안셀름 그륀, (임정희), 바오로딸, 2017. (표지 제공 = 바오로딸)

누군가를 오랫동안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온 마음을 다해, 시간과 온 영혼을 다해. 우리는 언제, 어떻게 누군가를 왜 그토록 기다렸던가. 젖먹이 아기는 엄마를, 사랑하는 연인은 자신의 연인을, 부모는 사랑스런 자녀를, 우리 서로가 서로의 친구들을. 우리는 모두 삶에서 길게 혹은 짧게 기다림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 사랑스런 기다림의 이유는 그 존재가 나에게 기쁨이고 희망이며 복음 자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 아기 예수님의 재림을 고요히 기다리는 우리들이 있다. 대림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며 우리는 예수님이 마음속에 재림하시기를 기다린다. 옛날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을 준비하는 특별한 시기로 대림절을 기념해 왔으며 가정에서 특별한 모습으로 대림절을 지내 왔다. 책의 저자인 안젤름 그륀 신부는 이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한 대림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저자는 매일 메시지의 한 관점을 고찰하는 짤막한 텍스트와 함께 실천한 과제를 주었고 네 번의 대림 주일 메시지도 포함했다.

대림 주일에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 대림 제1주일에는 종말이 다가오니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권고하는 계시적 복음을 읽게 된다. 대림 제2주일과 제3주일 복음에는 메시아가 곧 오신다고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이 중심에 있다. 대림 제4주일에는 오시기로 약속된 구세주를 잉태하신 마리아에 관해 살펴본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오시며 또 우리 안에서도 태어나시게 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대림적 인물이다.

오늘날 대림절은 성탄절을 미리 앞당겨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상점에서는 대림절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 대고 화려한 불빛들로 성탄의 설렘만을 강조한다. 이렇게 미리 앞당겨 지내는 성탄절 때문에 우리는 성탄을 성탄다운 축제로 지내지 못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대림의 원래 의미인 고요, 기다림, 깨어 있는 시간임을 자각하고 대림이 주는 치유의 효과를 새로이 경험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대림 제1주일

'오소서, 주님'

마태오를 비롯한 마르코와 루카는 종말을 전해 준다. 종말은 대림 제1주일의 복음 내용이다.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세상을 갈망하고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복음 내용을 담고 있다. 성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때에 이루어지며 우리는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문지기가 되어야 함을 예고한다. 우리는 오직 내 마음안의 주인에게만 문을 여는 문지기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에 앞서 과연 내 마음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내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 내면의 집이 우리를 짓누르고 규정짓는 상처와 불안, 분노와 인간적 실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 나의 내면에 그분이 오실 자리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그분은 이미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며 내적 산만이 모두 잠재워지고 비워졌을 때 드러나는 분이시다. 그러니 사실상 대림은 내 안에 이미 와 계신 그분의 존재를 마음으로부터 깨어 인식하는 시기라 말할 수 있겠다.


대림 제2주일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대림 제2주일은 메시아가 오신다고 알리는 세례자 요한이 중심에 있다. 세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한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루카 3,4 ; 마태 3,3 ; 마르 1,3)

세례자요한은 회개를 선포한다. 메타노이아라는 말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이 아닌 하느님의 시각으로 본다는 뜻이다. 또한 대림은 회개와 더불어 용서의 시간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용서는 회개와 함께 내 안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중요한 행위다. 이는 일종의 자기 청소다. 용서는 상대방의 위력에서 그 사람의 구속에서 내가 해방되는 일이며 내 안에 생겼던 부정적 에너지에서 해방되는 일이다. 우리는 회개와 용서로써 주님이 오시는 마음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


대림 제3주일

'기쁨'

대림 제3주일 복음에 세례자 요한은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보다 기쁨을 호소하는 메시지가 중심을 이룬다. 대림 3주 입당송은 가우데테(gaudete)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기뻐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림 제3주일을 기쁨의 주일이라고도 부른다. 이날 사제는 장밋빛 제의를 입는데 가까이 다가오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기쁨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다. 가까이 오시는 주님, 아니 더 나아가 내 안에 이미 와 계신 주님을 느끼는 것은 이미 기쁨으로 충만한 일이며 그것 외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대림 제4주일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대림 제4주일에는 마리아의 모습이 드러난다. 마태오는 요셉의 관점에서 예수 탄생의 상황을 전한다. 요셉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꿈의 도움을 받은 요셉은 마리아에게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되고 이로써 인류의 구원은 시작된다. 우리 안에서도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탄생이 우리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려면 우리에게도 마리아와 요셉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하느님 말씀이 육화하실 수 있는 마리아의 모태가 필요하다. 마리아처럼 믿음 속에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야만 우리 안에서 말씀이 육화될 수 있다. 요셉은 마리아에게 즉, 수태를 보호해주는 보호의 공간으로서 존재성을 갖는다. 우리 안에 하느님 말씀이 육화되어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요셉과도 같은 남성적 추진력과 묵묵함이 요구되기도 한다.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성령으로의 잉태를 알렸을 때, 마리아는 대답한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자존감 넘치는 대답이다. 마리아는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스스로 작아지지 않는다. 마리아는 모든 일에 그저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대신해 하느님께 응답하며, 불가능하게 들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신뢰한다. 대림 4주는 마리아의 이런 응답과 기다림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이 가능해지는 준비시간이다.

교회력의 모든 시기는 치유의 시간이다. 특히 대림과 성탄시기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것은 빛과 기다림, 그리고 회개로 이루어진다.

빛은 이미 내 안에 있고 그 빛이 내 안에서 밝아질 수 있도록, 자신의 존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분의 질서 안에 놓여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 안에서 밝혀질 수 있다. 사실상 그분은 이미 우리 안에 오셨고 이미 살아 계시나 우리는 늘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내면 속에 그분을 의식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대림은 특별히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존재, 즉 빛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그 빛이 나의 내면뿐 아니라 나아가 다른 이의 삶까지도 비춰 줄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의지를 허락하는 가장 겸손한 마음자세일 것이다.

이제 곧 성탄을 앞둔 우리는 자신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대는, 자신 안에 탄생하실 예수님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준비된 마음에 아기 예수님은 탄생하실 것이다. 모든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구영주(세레나)
11살, 세례 받고 예수님에게 반함. 뼛속까지 예술인의 피를 무시하고 공대 입학. 돌고 돌아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피는 절대 속여서는 안 됨을 스스로 증명.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화가로, 아동미술치료사로 성장.
칼럼과 서평 쓰기가 특기며, <가톨릭 다이제스트> 외 여러 잡지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남편과 7살 아들, 두 남자와 달콤 살벌한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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