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이혼한 비신자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려면? (이미지 출처 = Pxhere)

비신자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는 데 이렇다 할 어려움은 없습니다. 사회법상 이혼을 했다는 것이 요즘 세상에 대단한 흠결도 아니고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교회는 신자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관면 혼배를 하도록 교회법 차원에서 조건을 걸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 사이의 결혼이기를 기대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비신자 배우자가 신자인 배우자의 신앙을 존중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도록 동의를 받은 후 혼인성사를 거행하는 것을 관면혼배라고 합니다.

따라서 엄연히 성사로서 그 품위를 가지게 됩니다. 그 의미는 혼인성사로 묶인 관계인 부부는 하나(단일성)이며 그 관계가 풀릴 수 없다(불가해소성)는 것입니다(교회법 제1056조 참조).

이와 같은 배경에서, 신자들 사이의 혼배든, 신자와 비신자 사이의 관면혼배든 혼배성사를 통해 부부가 된 이들은 신자, 비신자 모두 혼인의 고유한 의미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부로서 함께 살다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헤어지게 된 이들이 다시 결혼을 하고자 할 경우, 먼저 거행된 혼인성사의 기본정신에 따른 실제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혼인성사의 의미인 불가해소성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풀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비신자인 길동 씨는 관면혼배를 통해 신자인 마리아 씨와 부부가 되어 서너 해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사회법으로 말해서 “이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홀로 살던 길동 씨에게 다시 사랑의 마음을 일깨운 사람이 생겼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아녜스 씨랑 사귀게 되었고 길동 씨는 아녜스 씨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아녜스 씨를 위해서 다시 한번 관면혼배를 받아야 할 상황입니다. 

다시 한번 (관면)혼배성사를 받아도 될까요? 

언뜻, 길동 씨는 신자가 아니므로 교회법으로부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먼저 결혼이 관면을 통해서 이루어진 엄연히 “성사”였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제약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만에 하나, 앞선 결혼에 대해 알리지 않은 채 혼배가 이뤄진다면, 길동 씨와 결혼할 아녜스 씨는 유부남과 결혼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길동 씨의 결혼상태를 단순히 별거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이 부분에 관해 다뤘듯이, 교회에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신자가 민법상 이혼을 하면 조당(혼인장애)에 걸려 성사생활을 못 하나요?”를 참고하세요). 혼인의 불가해소성 때문입니다. 이혼이라는 단어는 없고, 아예 결혼을 없던 것으로 하는 “혼인무효”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류로 인해 애초에 결혼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판정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길동 씨는 교회법원에 전에 했던 결혼에 대해 “혼인무효소송”을 내서 혼인무효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그 판결 이후에, 아녜스 씨랑 혼인이 가능한 것입니다.

혹여, 길동 씨가 이번에는 아예 세례를 받고 결혼하면 과거에 있던 오류는 자동으로 씻겨지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혼인과 별거(민법상으로는 이혼이지만, 교회에서는 별거로 봅니다)가 죄로 간주될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그런 상태를 말할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길동 씨가 세례를 받는다고 해도 그는 현재 여전히 별거 중인 결혼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 상태로는 바로 혼인할 수 없으며, 우선 혼인무효소송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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