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79]

이미 눈도 내렸다. 마당은 눈의 여왕이라도 내려온 듯한 겨울 왕국이 되었고 사람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부지런한 고양이들이 먼저 동그란 발자국을 찍어 놓았다. 그 애들은 발바닥이 춥지도 않을까. 털부츠까지 신고도 호오호 춥기만 한 나는 작은 동물들의 흔적을 찾아 한데까지 나가 보았다. 동네 떠돌이 개가 왔다가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간 흔적이 보였다. 아기 고양이가 산책을 나가기만 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중인 것도 같았다. 논을 가로질러 짐승이 달음박질을 친 발자국도 있었다. 노루가 산에서 내려온 것일까. 발자국들은 조심스러웠지만 제멋대로 사뿐사뿐 나 있었다. 이렇게 눈이 오면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우리 곁의 작은 동물들이 세상 한 켠의 주인공이 되는 듯한데, 그래서인지 눈으로 덮인 작은 시골 마을이 진정한 겨울 왕국이 되는 느낌이다. 

눈 내린 이른 아침, 동네는 먼데까지 깨끗하다. 산꼭대기에서 두 번째 집에 사는 아저씨가 눈 치우는 차를 타고 등장하시기 전까지 순백의 겨울 왕국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하얀 바탕에 자동차 바퀴 몇 개가 길을 따라 선을 그어 놓기는 한다. 아마도 새벽에 예배 가시는 옆집 할아버지를 태우러 교회 봉고 차가 왔다 갔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새벽 교회를 나가시니까. 또 도시에 크게 생긴 고로케 가게로 일 나가시는 자두나무 집 아주머니 차도 지나갔을 것이다. 엊그저께 밤엔 자두나무 집 아주머니가 가게에서 팔다 남은 고로케를 여섯 개나 갖다 주셨는데 맛이 다 달랐다.

"웅- 웅- 우웅-위이이잉-"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우려나 걱정을 하기도 전에 산꼭대기에서 두 번째에 살고 계시는 아저씨가 눈 치우는 차를 타고 등장하신다. 그러면 예전에 나는 면사무소에서 제설차를 빨리도 보냈구나 하며 우리 동네를 잘 관리해 주는 지방자치단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동네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산꼭대기부터 마을까지 눈을 치우며 내려오셔서는 서비스로 할머니들 집앞길까지 치워 주신다. 작년에도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오셔서는 수도계량기에 옷가지를 좀 넣어야 동파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며 직접 해 보이시길래 난 수도시설과에서 나오셨나 봐요 했는데 또 산꼭대기 두 번째 아저씨란다. 아저씨는 내게 눈깔이 삐었냐 왜 맨날 못 알아보냐고 면박을 주지 않으시고 나 이 동네 사람이여 하시며 머쓱해 돌아가셨다. 

독서 중인 로와 발끝 출현 욜라. ⓒ김혜율

알고 보니 아저씨는 공무원을 하시다 퇴직하고 노후를 보내시는 중이란다. 노후를 보내시며 버섯 농장인가 제법 큰 농장을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나 봐 쯧쯔 하는 동네 어른들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저씨는 망한 사람답지 않게 잘 사시는 것 같다. 일 년에 두어 번 공무원 포스를 풍기시며 수도계량기도 봐 주시고 제설차를 몰고 나타나시니 말이다. 바로 얼마 전엔 친구가 운영한다는 한약방에 죽치고 앉아 난롯불을 쬐며 티브이를 보고 놀고 계시는 걸 본 적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노후를 보내고 계심이 분명하다. 나는 한약방에 어떤 놈팽이 선생이 와 있는가 했는데 남편이 얼른 산꼭대기 두 번째 집 아저씨라고 알려 줘서 재빨리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아저씨 같은데 이 아저씨가 수도계량기 아저씨와 눈 치우는 아저씨와 동일인물이란 말이지. 

그때 집중해서 뵌 이후로 나는 이제 아저씨를 알아보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제설차를 타고 내려오시니 일단 아저씨가 틀림없다. 나는 작년, 재작년, 재재작년 아저씨를 못 알아본 송구함까지 합쳐서 목청껏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네에!”

아저씨는 짧고 굵게 인사를 받아 주시곤 동네를 좀 더 돌며 눈을 치우러 가신다.

이렇게 되면 얼마지 않아 우리 동네에 내린 겨울 왕국은 서서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겨울 햇볕에 보기 좋게 허물어질 것이다. 모든 발자국은 짓밟히고 어떤 눈은 진창 속에 갇혀 질척댈 것이다. ‘나야 나! 내가 좀 녹았기로서니 나를 몰라보지 않겠지!’ 하고 눈이 질척거리면 나는 사랑이 식은 매정한 여인처럼 차 바퀴로 촤악 하고 미련도 없이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래도 한 켠에는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작은 눈 언덕(개미한텐 에베레스트 산이다)을 이루고 있고 시골 마을 논밭은 아직도 희끗희끗하다. 그걸 우리 막내둥이 로도 보았다. 로가 원래 말을 술술 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내가 쓸 데 없이 오사카 여행기를 쓰던 중에 말문이 트이더니 이젠 시를 쓰는 지경이 되었다. (그만큼 육아일기를 안 쓴 지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젠장, 아까운 세월.) 로가 시를 쓰는 현장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

“엄마, 저 눈은 왜 안 사라졌어?” 로가 물었다.
“어디? 어, 그렇네? 저 눈은 왜 아직도 있을까?”

밭에 떨어진 눈은 흙 사이사이에서 아직도 생존 중이었다. 이미 얼었던 몸이었으니까 꽁꽁 얼어 죽은 것 같진 않다.

“눈이 땅이랑 만났어. 그러면 땅이 눈을 꼭 안아 줘. ‘녹지 마. 내가 꼭 안아 줄게’ 하면서.”

설마.... 로가 이 정도까지 재치 있지는 않다. 물론 이건 내가 한 말이다. 로의 시는 그 다음에 나온다. 사색하는 표정의 로는 무언가를 음미하는 듯한 깊은 눈을 하고선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또 물었다.

“다른 눈은 다 어디 갔어?”

로는 사라진 눈의 행방을 물었다. 나는 가슴이 조금 아팠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라졌지! 다 녹아 버렸어! 차가 눈 위로 지나가고 해가 떠서 눈을 녹이고 눈이 제 스스로 녹기도 하고 말야. 그래도 또 눈이 올 거야. 또 눈이 올 거니까 괜찮아.”

그랬더니 로는 ‘다 사라졌단 말이지. 왜 다 사라져. 눈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하는 의미심장한 얼굴이 되었다. 로는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더니 갑자기 얼굴이 밝아지면서 외치듯 물었다.

“엄마! 눈이 하늘로 올라간 거야?!”

응, 맞아. 그 말이 맞긴 한데.... 로가 한 말은 눈이 녹아 물이 되고 대기 중의 물방울로 변해 구름을 형성했냐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한 번도 지구과학의 기상편이나 물리의 물질의 변화에 대해 가르친 적이 없으니까. 로의 눈은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응달의 눈더미를 향했다. 눈더미가 꼭 구름 모양이었고 구름이 눈더미 모양이었다. 그랬다. 로는 작은 눈 언덕이 통째로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냐 싶었던 거다. 

내가 오사카 여행기를 쓰던 중에 로는 말문이 트이더니 이젠 시를 쓰는 지경이 되었다. ⓒ김혜율

로의 말을 듣고 하늘을 보니 눈이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네 말이 맞다고, 사라졌다던 눈이 하늘의 구름이 되어 떠 가고 있는 거라고 말해 주었다. 무엇이든 사라지고 죽어 없어지지만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걸 우선 가르쳐 준들 틀린 건 아니니까. 나는 로가 눈과 하늘을 번갈아 보면서 그 둘의 관계에 대해 묻고 답한 말을 최초의 시로 인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잠깐 시를 감상해 보자.
 

제목: 엄마, 눈이 어디로 갔어?

눈이 사라졌네.
믿을 수 없어.

엄마, 눈이 어디로 갔어?

엄마는 눈이 녹아 다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엄마, 그런데 저기! 저기!
하늘에 하얀 눈구름!
엄마도 눈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다.
아하.
사라진 눈은 하늘의 구름이 되었구나.

로에 대해 내가 너무 호의적인 것 같다고 느꼈다면 정확한 지적이다. 나는 로에게 빠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욜라에 이어 로도 게놈(개놈 아님. 한 생물이 가지는 모든 유전정보)의 습격에 굴복당해 매우 말 안 듣고 고집 센 유년기를 보내고 있지만 유전자에서 비롯된 게놈 성격을 상대하는 것이 이번이 나도 세 번째가 아닌가. 결코 같은 세 번째는 아니지만 로는 귀여워서 많이 봐 주고 있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는데 원래 안 그런 것 같은 사람이 더한 법이다. 예전에 동생이 고양이 키운다고 했을 때 탐탁잖아하며 반대했던 내가 애묘인이 될 줄 나도 몰랐던 걸 보면 매번 그런 식인 것도 같고.

시를 짓고 피곤해진 로는 잠이 들었어요. ⓒ김혜율

하지만 인생은 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같이 준비하는 법이다. 내가 로와 욜라, 메리를 통해 느끼는 행복한 날만큼 오만상 찌푸리며 괴로워하는 날도 그만큼 많이 있으니. 그동안 힘들었던 건 엄살로 여겨질 만큼 올해는 최고였다. 얼마나 삶이 피폐해졌냐면 로가 한 살, 두 살 때에도 꾸몄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올해는 꺼내지도 못했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반짝이 장식 대신에 먼지를! 그런데 내년엔 먼지에 거미줄까지 칠지도 모른다. 아아, 매해 경신하는 빡센 삶이여! 이렇게 바쁜 마음이 들수록 천천히 하나씩 해 나가야 하는데. 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잘 커 주고 있는 아이들에게 고맙고 또 나에게도 고맙다. (뜬금 없이 고마워한다.) 어쨌든 12월이고 일 년을 또 보냈으니까. 창밖엔 한파가 기승을 부려도 각자의 마음속에는 훈훈한 열대 바람이 불기를 이제 와서 바란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지는 않겠지!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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