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한 신자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고 있다. ⓒ왕기리 기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무척 열심히 바치는 신자분이 계십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흔히 사순기간에 집중하여 바치는 기도이며, 예수님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원래는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지에서 예수님이 걸으셨던 고통의 길을 따라가면서 바쳤던 전례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일이 그곳의 평화롭지 못한 분위기 때문에 점점 어려워지자, 서서히 오늘날 우리가 바치듯이 14처와 묵상자료 및 기도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기도를 연중시기에도 바치는 것은 주님의 고통을 늘 기억하고자 하고 그럼으로써 고통 속에 홀로 버려진 예수님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느끼실 수 있도록 해 드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날마다 바치는 기도이니만큼 부활팔부축제(부활절부터 시작해서 8일 동안 진행되는 축일, 부활대축일을 8일 동안 지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간에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싶으셨던가 봅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꼭 하시겠다면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기도에도 어울리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시간경이라고도 부르는 성무일도의 내용이 해당 전례시기마다 다르다는 걸 감안한다면, 여타 다른 기도들도 그 전례시기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부활의 의미가 부각되는 시기에는 전례상으로도 장례미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지침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무 축일, 성목요일, 파스카 성삼일 및 대림 시기의 주일, 사순시기의 주일, 부활시기의 주일이 그런 날입니다.(“미사총지침”, 380항 참조)

이 날들은 무엇보다도 부활과 그 축일이 지닌 축제의 의미가 신자들의 마음에 제대로 살아날 필요가 있어서 지정된 것입니다. (참고로, 그런 이유로 발인날에 장례미사를 할 수 없다면, 미사를 하루 전날 미리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안들도 함께 감안해 보면, 십자가의 길 기도가 어찌하여 사순기간과 성금요일에 잘 어울리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다음의 구절도 기억해 보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마르 2,19)

그렇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해야 할 때 여전히 그분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오히려 더 슬프게 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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